‘미투’ 열풍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일반 사람의 인식이 많이 달라진 만큼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판단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일었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씁쓸함이 남는다. ‘지금’은 범죄가 성립되지만, 예전에는 무혐의 결정이나 무죄판결을 받아야 했던 사건들이 떠올랐다. 그때 그 피해 당사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피해를 당하고도 그것을 인정받지 못한, 납득할 수 없는 결과를 받아들고 떠난 의뢰인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형사사건에서 무혐의 결정이나 무죄판결이 났지만 재론의 여지가 큰 사건 몇 개를 최근 손해배상으로 다투기 시작한 건 그 때문이다. 그중 한 사건이 최근 강제 화해권고 결정으로 변론이 종결됐다. 피해자는 수년 전에 당한 성폭행 피해를 고소했고 이후 법정에서 범죄 여부를 치열하게 다퉜다. 사건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피해자의 저항이 소극적이라 피고인이 몰랐다는 주장을 완벽하게 배척하기 어렵다’라는 취지로 당시 무죄가 선고됐다.

정액 묻은 치마가 자발적 성관계의 증거라고 주장

ⓒ정켈


수사 기록을 살펴보면 피해자의 동의하에 있었던 성관계로 보기 어려웠다. 사건 발생 전후로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딱히 호감을 가졌다고 볼 만한 아무런 정황이 없었다. 피고인은 띠동갑이 넘는 나이의 유부남이었다. 사건 당일, 체격이 작은 피해자가 인적이 끊긴 심야의 주차장에서 기껏 할 수 있었던 저항이라고는 비명을 지르고 밀어내면서 발버둥 치는 것뿐이었다. 판결문에 적힌 판단 이유가 전부 다 틀린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피고인이 정말 피해자가 저항하고 있는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것인지 몰랐을까?

피고인은 당시 회식을 핑계로 피해자를 불러냈다. 조수석으로 넘어와 피해자의 치마를 올리니 피해자가 스스로 속옷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형사재판 도중 법정에서 돌발적인 주장도 많았다. 피해자는 당시 일이 많아 주말에만 집에 가면서 연구실에서 먹고 자는 일이 다반사였다. 피고인이 제멋대로 사정해서 정액이 묻었던 피해자의 치마가 증거로 제출되자, 정액 묻은 치마가 자발적 성관계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피해자는 다리를 벌리거나 눌리게 되면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기왕증이 있었다. 피고인이 법정에서 한 해괴한 말들은 피해자가 저항하는 걸 몰랐다는 주장의 판단에 감안되지 않았다.

형사재판의 피고인은 이후 민사소송의 피고가 되었다. 고소를 당하자 그도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고는 민사 법정에 직접 나왔다. 그러면서 고소를 당한 것도, 재판을 받은 것도 억울하다고 말했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비단 이 사건에서뿐 아니라 비슷한 생각을 하는 피의자들이나 피고인들, 피고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자주 접하게 된다. 강간으로 기소가 안 되면, 그리고 유죄판결이 안 나면 잘못한 게 아니라는 발상과 믿음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재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는데 피고가 벤츠 차량 조수석에 앉아 있는 자신의 ‘전관’ 변호인을 향해 “수고하셨다”라며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나는 그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택시를 기다렸다. 재판에 동행한 변호사 후배가 물었다. “저 사람은 뭐가 그렇게 억울할까요?” 나는 동문서답을 했다. “저런 차 타고 저런 사람에게 인사받는 것보다는 그냥 택시가 낫지?” 갈 길은 멀지만, 가야 할 길을 가는 봄날이 또 하루 그렇게 갔다.

기자명 이은의 (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