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정혁씨(27)와 김찬휘씨(26)가 서울 홍대 앞에서 처음으로 마주쳤다. 각각 진해와 광주에서 서울로 놀러온 참이었다. 정씨가 김씨의 휴대전화 번호를 물었다. 알려주었는데 연락이 안 왔다. 김씨가 먼저 연락했다. 이후 하루에 서너 시간씩 통화하고 채팅을 했다. 김씨가 보기에 정혁씨에게는 반전 매력이 있었다. 어딘지 불량스러워 보였는데 순수한 면이 있달까. 두 사람은 자라온 환경도 비슷했다. 김씨는 대학 근처에서 자취 중이었고 정씨는 직업군인이었다. 두 시간 반 거리였다. 주말에 광주에서 데이트를 했다. 정씨가 전역을 하고 본가인 인천으로 돌아갈 상황이 되었다. 더 멀어져야 했다. 떨어져 살 필요가 없어서 합치게 되었다. 지난해 5월부터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했다. ‘같이 사는 사이’가 되었다.

ⓒ시사IN 신선영‘같이 사는 사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김찬휘씨(왼쪽)와 정혁씨.


같이 살기 1년 전부터 저축을 했다. 지금 사는 방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만원짜리다. 가구와 집기 등을 구입했고 생활비 통장을 함께 쓴다. 같이 사니 항상 붙어 있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정혁씨의 경우 동거 후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생겼다. 음식을 잘하는 여자친구 덕에 잘 챙겨 먹는다. 둘 다 살이 붙었다. 둘은 아직 ‘방귀를 못 텄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는 기호에 따라 음악을 크게 켤 때도, 물을 틀 때도 있다.

SNS 콘텐츠 다루는 일을 하던 김씨가 둘의 일상을 유튜브로 남기자고 제안했다. 동거라는 이름으로 검색해보니 채널이 별로 없었다. 소소한 일상을 보여주는 채널이 없어 ‘동거 브이로그(비디오+블로그)’ 형태를 택했다. 동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 ‘같이 사는 사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지난해 10월 시작해 현재 구독자가 2만여 명이다.

주로 새로운 가족 형태에 관심이 있는 젊은 여성들이 두 사람의 일상을 지켜본다. 특별한 내용은 아니다. ‘같이 사는 커플의 봄 준비 일상 브이로그’ ‘집순이와 집돌이가 같이 살면 생기는 일’처럼 함께 음식을 해 먹거나 나들이 가는 영상을 올린다. 김씨는 “가족의 형태가 법이나 제도의 테두리에서 형성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서류로 이어지지 않은 가족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동거에 대해 안 좋은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시비를 걸러 들어오기도 한다. 성적으로 문란하게 보는 이도 있고 동거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동거하며 생기는 현실적 어려움도 공유

동거하는 일상을 공개하기까지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가까운 지인들도 응원해주었고 양쪽 집안 모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처음엔 그저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자고 생각했는데 점점 동거 가족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모순적일 수도 있지만 동거할 때 발생하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공유하려 한다. 나이가 적거나 사회 경험이 적은 친구들이 동거 생활을 보고 막연한 환상을 가지지 않도록 신경 쓰는 편이다. 동거를 앞두고 있거나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도 경험자로서 도움을 주고 싶다.

김찬휘씨가 보기에 동거는 한국식 가부장제나 고정된 성역할을 탈피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다. 개인과 개인의 결합을 존중하는 형태여서다. 두 사람은 결혼을 먼저 생각한 뒤 동거를 결심했지만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동거 자체가 하나의 가족 형태로 인정받기를 바란다. 얼마 전에는 예비 신혼부부 자격으로 행복주택에 당첨되었다. 실제로 입주하려면 혼인 관계를 증명해야 한다. 예비 신혼부부에게도 길을 열어놓은 건 나아진 풍경이지만 제약은 여전하다.

4월29일 두 사람이 서울 나들이를 했다. 유튜브에서 주최한 ‘크리에이터와의 대화’ 행사에 초청을 받았다. 이날의 주제는 ‘함께 사는 이야기, 가족 크리에이터’였다. 다문화 가정, 전업주부 아빠, 입양 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유튜브 채널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이날 참석하기로 했다가 아이가 아파서 오지 못한 이슬씨는 두 아이와 함께 한부모 가정의 일상을 보여준다(하늬TV). 지리산 산골에서 나고 자란 권순홍씨와 시드니 출신인 니콜라 사라 권 씨는 다문화 가족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어 채널을 만들었다(MKH). 남자친구, 고양이 네 마리와 사는 김철수씨 역시 자신과 같은 성소수자들을 응원한다(채널 김철수). 이날 김씨와 정씨 커플도 동거 가족의 고민과 일상을 공유했다.

두 사람 모두 조부모 손에 자랐다. 정혁씨는 가족에 대한 갈구함이 없었다. 오히려 공허함 같은 걸 느꼈다. 김씨를 만나고 달라졌다. 빈자리가 채워졌다. 가족의 의미를 알아가는 중이다. 김찬휘씨 역시 정형화된 가족 형태를 경험하지 못했다. 같이 살면서 가족의 또 다른 의미를 정립하고 있다. 동거 이후 양가가 두 사람을 가족 행사에 부르는 일이 종종 있다. 전보다 가족적인 느낌이 든다. 동거든 결혼이든 ‘같이 사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한동안 계속된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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