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는 참 부지런한 도시인갑소.” 새벽녘 수산물의 경매가 이루어지는 중앙선어시장의 분주함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여객선터미널 건너편 교동시장 역시 아침 여섯 시가 채 되기 전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열고 손님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섬으로 가는 백패커들은 굳이 배낭에 식재료를 채워 내려올 필요가 없다. 목포는 항동시장, 통영은 서호시장 그리고 여수는 교동시장. 여객선에 오르기 전싱싱한 해산물이며 채소 그리고 고기까지, 원하는 재료는 무엇이든 구입할 수 있으니 스스로 꾸며가는 섬 밥상이라 한들 어디 하나 모자람이 있겠는가?

여수항에서 오전 7시40분 출항한 쾌속선은 외나로도를 지나 한 시간이면 손죽도에 닿는다. 고흥반도와 거문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손죽도는 면적이 채 3㎢도 되지 않는데 대부분이 산지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을 병풍처럼 감싼 깃대봉(242m)을 중심으로 능선이 이어지고 바다는 깊게 만입되어 U자 형태를 이루니 더할 수 없이 오붓하고 아늑한 느낌이 든다.

ⓒ김민수손죽도의 해안 풍경

손죽도의 둘레길은 선착장 옆 마제봉을 기점으로 마을 뒤편의 봉화산과 깃대봉, 남쪽 끝 삼각산을 돌아 쌍봉전망대까지 연결된다. 둘레길은 나무계단으로 시작이 되고 머지않아 섬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방목 염소 무리가 유유히 비켜서면 아랫어미 너머 무인도 반초섬이 반갑고 마제봉전망대에서는 소거문도가 지척이다. 봉화산에서 바라본 섬마을은 참으로 평화롭다.

손죽도의 주민 수는 150명 정도인데 대부분 노인 가구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약속이나 한 듯 골목과 집집마다 꽃을 심고 가꾸어 크고 작은 정원을 만들어냈다. 오색의 꽃들이 만개하고 흐드러지게 피어오르면 섬은 커다란 화원으로 변모한다.

과거 육지에서의 술 반입을 엄두도 내지 못하던 시절, 대부분의 섬 막걸리는 제사에도 쓰고 마을 사람들이 나눠 마시기 위해 자생적으로 생겨났다. 이제는 소주며 맥주며 좋은 술들도 배편으로 쉽게 들어오게 되었지만 유통기간이 짧은 막걸리는 아직도 몇몇 섬에서 그 명맥이 전해진다. 82세의 박근례 할머니가 만들어내는 손죽도 막걸리는 약초향과 걸쭉한 단맛이 조화를 이뤄  일단 병을 열면 결국 탁탁 털어 비우게 되는 마력이 있다.

섬에서 꼭 지나치지 말아야 할 곳이 김영란씨가 운영하는 한옥민박이다. 담도암 환자였던 김영란씨는 남편과 함께 고향 섬을 찾아 풀밥상과 해조류 그리고 풍욕 등을 통해 암을 완치했다. 그의 이야기가 텔레비전을 통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손죽도를 찾았고, 부부는 이들에게 건강한 밥상과 더불어 밝은 삶에 대한 희망을 건네며 살아가고 있다.

손죽도 주민들에게 걱정이 생겼다. 둘레길이 생겨나자 섬을 찾는 관광객 중 야영객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전망대에는 무분별하게 텐트가 설치되고 오물과 휴지조각이 나부끼게 되었으며 급기야 화기 사용으로 데크가 불에 타는 일도 발생했다. 처음에는 좋은 뜻에서 전망 데크에서의 야영을 묵인해왔지만 점차 이용객이 많아지다 보니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한동안 풍도에서 야영이 금지되고 굴업도가 논란의 대상이 되는 까닭에 대해 한 번쯤은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김민수김영란씨 한옥민박의 밥상
정성이 차고 넘치는 민박집 밥상

마을 주민들에게 선착장과 각 전망대에서 야영을 전면 금지한다는 팻말을 세워둘 것과 사람들이 많이 찾는 주말에는 초등학교가 비어 있으니 운동장에서 야영을 하도록 배려해주십사 하는 제안을 했다. 화장실과 수도를 이용하도록 하는 대신 마을에서 소정의 야영비를 받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멋진 경관을 앞에 두고 야영을 즐기는 일이야 백패커의 로망이라 하겠지만 길고 힘든 여정을 거쳐 섬을 찾았다면 그것 말고도 얻고 느껴야 할 것들이 훨씬 많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옥민박의 밥상을 마주했다. 언뜻 보아도 김영란씨의 정성이 차고 넘친다. 두툼한 삼치구이와 죽염으로 간을 한 나물과 무침들은 어찌나 맛이 있던지, 놋그릇에 푸짐히 담긴 밥 한 사발을 남김없이 비워버렸다. “말기암 환자와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해요.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치유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가족의 사랑인 것 같아요.”

손죽도선착장에서 주변 섬 소거문도, 평도, 광도를 오가는 섬사랑호(낙도 보조선)는 하루 두 차례 운항된다. 오후 3시가 되었다. 섬사랑호의 선원이 물었다. “어디 가려고?” “평도요.” “거기 볼 거 뭐 있다고. 아무튼 섬으로 가는 주민이 없으면 배는 안 움직이니까 알아서 하드라고.” 배가 출항했다. 소거문도로 가는 주민 몇 분이 승선한 까닭이다.

평도로 가는 바다는 무척이나 험하고 거칠어서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뒤뚱이는 배를 견디다 못해 결국 객실 바닥에 눕게 되었다. “이 바다는 완전히 다른 바다야. 파도도 세고 높아서 배가 못 다닐 때도 많지. 내일은 아침에 한 번만 운항하니까 전화하도록 해. 전화 없으면 안 오는 수가 있어.”

평도는 기대했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낙도의 옛 모습이 남아 있을 거라는 상상과는 달리, 최근에 지어진 반듯한 가옥들이 한 집 건너 터를 잡고 있었다. 외지에 살던 사람들이 노후를 보내기 위해 집을 짓고 들어와 살거나 육지 생활을 병행하며 지내는 주민들이 생겨난 까닭이라 한다.

날이 어두워지자 마을에 하나뿐인 길을 따라 뒷바다로 내려갔다. 이 섬에서 가져갈 수 있는 보람이란 바다 위를 수놓은 찬란한 별빛이 고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파도 소리를 음악 삼아, 바닷가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

기자명 김민수 (섬 여행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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