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스티븐스(릴리 레이브)는 선생님이다. 학생 세 명이 연극대회에 참가하고 싶어 하기에, 주말 사흘 동안 인솔 교사가 되어주기로 했다. 마고(릴리 라이하트)는 똑 부러지는 모범생. 매사에 젠체하는 학생이지만, 그 잘난 척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다. 샘(앤서니 퀸틀)은 귀여운 수다쟁이. 연극대회 준비에도 열심이면서, 참가자들 가운데 괜찮은 짝을 찾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 마지막으로 빌리(티모시 샬라메). 천부적인 연기 재능을 갖고 있지만 최근 “약물치료가 필요한 행동장애”를 보이는 요주의 인물이라고, 교장 선생님이 스티븐스에게 귀띔해주었다.

그래서 빌리를 따로 불러 물어본다. “같이 얘기 나누는 사람은 있니?” 빌리가 대답한다. “얘기할 사람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런 빌리가 스티븐스에게만은 마음을 열고 싶어 한다. 선생님 마음속 텅 빈 자리를 빌리가 용케 알아챈 덕분이다. 속 깊은 얘기를 나누면서 딴에는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마고와 샘 앞에서 선생님을 ‘레이철’이라고 부를 때, 그는 정색하며 말한다. “그렇게 부르지 마. ‘미스 스티븐스’라고 불러. 난 너의 선생님이야.”

영화 〈미스 스티븐스〉의 시나리오를 쓰고 직접 연출한 줄리아 하트는 자신이 선생님으로 일한 8년의 경험을 살려 이 대사를 썼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고등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할 때 나이가 스물다섯 살. 고작 예닐곱 살 차이 나는 아이들 앞에 설 때마다, “선생님다운 모습이란 어떤 건지 확신이 서지 않던 나이”였다. 영화에서 봐온 캐릭터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좋은 선생님” 아니면 “나쁜 선생님”뿐이니까. “어떨 땐 훌륭하다가 어떨 땐 형편없는 아주 보통의 선생님”, 그중에서도 자신처럼 “결점 많고 불완전한 아주 보통의 여성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어서 직접 쓴 시나리오였다. 충분히 레이철로 불려도 좋을 만큼 빌리에게 곁을 내주었다가, 남들 앞에선 별안간 미스 스티븐스로 선을 긋는 주인공은 그렇게 탄생했다.외로움과 외로움이 부대끼는 2박3일

빌리는 혼란스럽다. 레이철, 아니 스티븐스 선생님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위태로운 2박3일이 지나간다. 하나의 외로움이 다른 하나의 외로움과 부대끼고 부딪치며 부둥켜안는 주말이었다. 예리하게 순간순간을 포착해내는 감독의 비상한 재능이, 이상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영화 한 편을 빚어냈다.

더 세고, 빠르고, 선명하고, 드라마틱한 전개를 바라는 이에겐 ‘미지근한 영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체온과 비슷한 물의 온도를 미지근하다고 느끼는 게 인간이란 사실을 떠올리면서 나는, 우리의 실제 삶에 바투 다가선 이 영화의 온도를 감히 ‘진실의 온도’라고 부르고 싶다. 연일 뜨거운 영화에 몸을 담그고 때를 불리다 지친 어느 날, 이 영화의 기분 좋은 미지근함으로 충일해지던 그날 오후가, 나는 벌써 그립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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