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는 언제나 그저 이효리였다. ‘내 이름은 이효리, 거꾸로 해도 이효리’라는 말장난 같은 노랫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 정도로, 미디어에 비춰지는 그의 모습은 언제나 고집스러울 정도로 이효리였다. 대중과 팬들의 환상을 충족시키기 위해 철저히 통제된 삶을 살기 일쑤인 아이돌 시절에도, 사랑하는 반려견들과 생의 동반자와 함께 살고 있는 지금도 이효리는 언제나 넘칠 만큼 당당한 이효리 자신이었다.

한국 아이돌 1세대를 대표하는 그룹 핑클 시절을 떠올려보자. 이효리는 그룹의 리더였지만 그는 우리가 아이돌 리더에게 무의식적으로 기대하는 성실·통솔·절제 같은 가치들의 정반대에 선 인물이었다. 지겨우면 지겨운 대로, 피곤하면 피곤한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이 독특한 ‘요정’의 잠재력은 예능에서 꽃을 피웠다. 유재석·신동엽 등,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한국 예능을 대표하는 중년 남성들 사이에서 이효리는 언제나처럼 할 말을 했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핑클 해체 이후 2003년 발매한 첫 솔로 앨범 〈STYLISH...E hyOlee〉는 그 자체로 혁명이었다. 타이틀 곡 ‘텐미닛(10 Minutes)’은 당시만 해도 걸그룹 출신 멤버가 부를 거라곤 예상하기 힘든 올드 스쿨 힙합을 베이스로 한 곡이었고, 이는 핑클 멤버로 발탁되기 전 힙합 그룹 데뷔를 준비했던 이효리의 본질에 가까운 결과였다. 노랫말은 또 어땠나. ‘유고걸(U-Go-Girl, 2008)’ ‘배드걸(Bad Girls, 2013)’ ‘미스코리아(2013)’ ‘블랙(2017)’ 등 그의 노래에 담긴 메시지는 대상화 천국인 연예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이 주체적으로 낼 수 있는 최대치의 목소리를 꾸준히 담아낸 것들이었다.

ⓒ시사IN 양한모

이효리의 정면 돌파는 한동안 음악계 복귀를 꾀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에게 큰 타격을 입혔던 4집 〈H- Logic〉(2010)의 표절 논란도 끝내 넘어설 수 있게 했다. 이후 발표한 새 앨범들은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는 믿음직한 인디 음악가들과의 협력과 자작곡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완성되었고, 이는 대중적 성공과 상관없이 음악가로서 그의 생명을 자연스레 연장시켰다. 2010년대 들어 이어진 채식주의, 유기동물 보호, 상업광고 모델 제안 거절 등 삶의 방향성에 대한 깊은 성찰이 느껴지는 대외 활동도 힘을 보탰다.

2017년, 그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거리에서 만난 초등학생에게 건넨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라는 조언은 타고난 그대로 평생을 직진해온, 그렇게 살아남은 한 사람의 담백한 심경 토로였다. 생각한 대로 살아온, 꼼수 없이 정면 돌파로 맞서온, 이 드물고 소중한 아이콘이 지금껏 살아온 모습 그대로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기를 마음 깊이 바란다. 그것은 그 자체로, 사는 대로 생각해온, 정면승부를 외면해온 수많은 이들에게 의미 있는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기자명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