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소녀가 있다. 아이팟 하나에 이어폰을 나눠 꽂고 숲속에 드러누워 음악을 듣고 있다. 대화는 시시콜콜한 잡담이다. 비디오 평점 별점에 아무 영화에다 별 다섯 개를 주었다거나 게임 〈심즈〉를 할 때 치트키(속임수의 일종)를 쓴다거나, 아이팟 셔플(MP3 플레이어)을 선물로 받았는데 다음 곡이 뭐가 나올지 모르니 너무 스트레스였다는 등.

그 모습에 눈을 뗄 수 없다. 아름다운 배경 위에 소녀들의 모습이 비정상적으로 거대하기 때문이다. 높은 산, 드넓은 숲에 드러누운 아이들의 몸이 산보다 더 크다. 도시에서 아이들은 빌딩보다 크고, 공장에서 서로 기댄 모습이 굴뚝만 하다.

일상적인 장면도 대상의 크기가 변하면 느낌이 달라진다. 거대한 산을 베개처럼 베고 누워 있는 두 소녀의 모습을 보면, 꼭 아이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럽고 번잡해도, 세상이 아무리 크고 넓어도, 내 세상에는 오직 너와 나 둘뿐이라고. 서로의 마음을 열고,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건 우리 둘뿐이라고.

그림 한 장 한 장에 빼앗기는 마음

〈아이 러브 디스 파트〉 틸리 월든 지음, 이예원 옮김, 미디어창비 펴냄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비밀이 있다. 둘은 그저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아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한다. 우정이나 인간애를 넘어선 사랑. 둘은 서로를 안고 입을 맞춘다. 어느 바람 부는 언덕에서 머리를 맞대고 속삭인다. “영영 우리 사이를 알리지 못하는 걸까?”

비밀을 간직한 삶이란 버겁다. 하물며 어린 소녀들이라면. 결국 한 명이 울면서 이별을 선언한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너무 힘들다고.

무엇이 어떻게 이들을 힘들게 했을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아이 러브 디스 파트〉는 지극히 서정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독자에게 두 사람에 관해 별다른 정보를 주지 않는다. 그저 두 소녀의 사랑과 이별을 수십 페이지에 걸쳐 보여줄 뿐이다. 짧은 몇 컷으로 둘 사이를 짐작할 뿐이다.

만화가 수신지는 추천사에 이렇게 썼다. 자기는 게으른 독자라 원인과 결과를 시간 순서에 따라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좋다고. 그러나 이 작품은 정반대 스타일이지만 푹 빠져버렸다고 고백한다.

대부분의 그래픽노블이 서사 구조 안에서 이야기를 전달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서정성을 극대화했다. 이야기의 앞뒤가 뚜렷하지 않다. 흥미진진한 전개에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빨리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작품이 아니라, 그림 한 장 한 장에 마음을 빼앗겨 눈이 머무르게 되는 작품이다.

노래를 들으며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공유하고, 이별에 눈물짓던 두 아이는 어떻게 자랄까?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 사랑하게 될까? 떨어져 지내다가 훗날 만나 추억을 공유하는 사이가 될까? 아니면 조금씩 멀어져 영영 헤어지게 될까? 덮고 나서도 몇 번이나 한 장 한 장 되돌아보게 되는, 아름다운 단편소설을 읽은 듯한 그래픽노블이다.

기자명 박성표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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