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겪는데도 유난히 낯설게 느껴지는 장면이 있다. 최근 택시 미터기 대란이 그 사례다. 지난 2월16일 서울 택시요금이 인상되었다. 한동안 많은 택시가 ‘요금조견표’란 낯선 이름의 표를 달고 다녔다. 인상된 택시요금이 미터기에 반영되지 않으니, 미터기에 표시된 금액에 인상분을 더한 요금을 알려주는 안내가 그 표에 담겨 있었다. 미터기 수리에 시간이 걸려 이런 조견표를 달고 다닌다.

거의 2주 가까이 서울 택시 7만1829대(2018년 11월 기준,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추산)가 마포 월드컵공원, 과천 서울대공원 등 수도권 4곳에서 오른 요금에 맞게 미터기를 수리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그 기간 미터기를 수리하는 곳에 1000대 이상의 택시가 주차된 상태로 반나절을 기다리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됐다. 이런 풍경은 택시요금이 인상될 때마다 4~5년 간격으로 재현된다. 그런데도 이번 장면을 유난히 낯설게 느끼는 이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여럿 목격됐다. 왜 그럴까.

ⓒ연합뉴스택시 미터기 수리(사진)에 들어가는 비용이 서울에서만 40억원이나 된다.
1897년 미터기 내장된 자동차 처음 출시

결론부터 얘기하면 택시를 둘러싼 기술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다. 택시 미터기를 뜯어내 내부의 칩을 꺼낸 뒤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고서 다시 칩을 장착하는 작업은 최근 기술 흐름에 비춰보면 전근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선통신으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는 방식이 이미 대다수고, 그게 아니더라도 업데이트를 위해 기계를 뜯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

이 작업에 들어가는 비용도 상당하다. 미터기 수리 작업을 담당하는 업체들은 처음에 대당 7만원의 수리비를 요구했다. 택시 미터기는 기계 조작으로 인한 부정요금 부과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어, 택시와 마찬가지로 허가된 업체만이 제작 및 수리 등의 영업을 할 수 있다(자동차관리법 제47조). 택시기사 처지에서는 규제산업의 공급자에서 수요자로 바뀐 드문 경험을 했다. 7만원을 제시한 미터기 업체에 택시업계는 대당 4만원으로 맞섰지만, 더 늦출 수 없었기에 5만5000원으로 합의를 보았다. 이 금액을 적용하면 택시요금 인상으로 미터기 수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서울에서만 40억원이고, 전국적으로 요금이 인상되면 140억원에 달한다.

택시 미터기는 택시산업의 발전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준 기술적 성취였다. 택시업의 핵심은 합리적 요금부과 체계다. 운수업은 대개 시간과 거리를 측정해 요금이 부과된다(물론 편의성, 부가서비스 등도 요금에 반영된다). 시간을 측정하기는 쉽지만, 정해진 노선을 운행하지 않는 택시의 운행거리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한 이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구스타프 브룬이다. 그는 1891년 자동차의 바퀴 회전수를 측정하는 택시 미터기를 처음 발명했다. 이 기술을 적용해 미터기가 내장된 자동차를 독일 다임러 사가 1897년 처음 내놓았다. 당시에는 미터기가 그야말로 최첨단 기술이었다.

이제는 그 미터기 기술의 필요성이 없어졌다. 바로 우버 때문이다. 차량 호출 앱의 시초인 우버의 창업자 개릿 캠프는 2009년 우버 앱을 처음 만들 때 아이폰에 위치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GPS칩, 가속도와 방향 등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가속도계(Accelerometer)와 자이로스코프(Gyroscope)가 내장된 것에 주목했다. 원래 가속도계와 자이로스코프는 항공기·잠수함·미사일·우주선 등에 사용되던 장비로 애플은 2007년 1월에 출시된 최초의 아이폰부터 이들 센서를 장착했다. 우버의 창업 스토리가 담긴 책 〈우버 인사이드〉를 보면, 개릿 캠프는 탑승객의 아이폰에 내장된 이 센서들을 이용해 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버 앱에서 자동으로 요금이 청구되는 시스템을 설계했다.

요금을 산정하는 미터기를 모바일 기기에 탑재한 이 사건은 여러 가능성을 제시한다. 최근 미터기 대란으로 인해 ‘앱 미터기’의 규제 샌드박스 적용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것을 넘어선 거대한 가능성이 있다. 규제를 일정 기간 유예하는 샌드박스에 신청된 앱 미터기는 교통카드 전문업체인 한국스마트카드가 개발 중인 소프트웨어다. 거의 모든 택시에 카드 결제를 위한 스마트카드 단말기가 장착돼 있는데, 여기에 앱 미터기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기 위해 자동차관리법 제47조(택시 미터의 검정 등)를 면제해달라는 것이 최근의 규제 샌드박스 논의다. 앱 미터기의 진정한 가능성은 수요자와 공급자에게 가격 선택의 자유도를 높이는 데에 있다.

대한민국 택시요금 저렴한 편

ⓒAP Photo우버(위)는 미터기 기술이 필요 없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택시요금은 정부·지자체가 엄격히 규제한다. 택시요금을 규제하는 이유는 선택권이 제한된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기존 택시업에선 소비자는 가까운 곳에 있는 택시를 잡아탔다. 요금 규제가 없다면 소비자는 자신이 잡은 택시가 어떤 요금을 책정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시민들의 이동권, 이동 시 안전도 중요한 권리이기 때문에 정부는 여객운송사업자의 운임을 비롯해 여러 요건들을 정하며 규제한다.

그런데 택시를 둘러싼 환경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택시가 여객 수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 때문에 요금 규제의 필요성이 컸다. 배규식 현 한국노동연구원장이 2001년에 발표한 보고서 〈택시업종의 바람직한 임금제도 연구〉에 “급격한 경제성장과 임금인상은 급격한 교통수요 증가를 가져왔고 이를 수용할 만한 대중교통 수단이 완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택시는 형식적으로는 고급 교통수단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대중교통 수단화되었다. 이리하여 택시요금의 인상이 가져올 시민의 불만과 물가인상 요인 때문에 택시요금이 억제되었다”라고 적었다. 이로 인해 한국의 택시요금은 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한 여러 통계가 있는데, 여행정보 사이트 ‘프라이스 오브 트래블’이 2017년 6월 기준 세계 주요 도시의 3㎞ 거리 택시비용을 달러로 환산한 결과 서울은 2.76~5.35달러였다. 미국 보스턴(8.20~13.00달러), 일본 도쿄(9.08~11.80달러), 독일 베를린(10.11~13.48달러) 등은 물론이고 레바논 베이루트(5.31~7.97달러), 그리스 아테네(5.62~7.87달러) 보다도 저렴하다. 서울과 요금이 비슷한 도시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칠레의 산티아고 정도다.

그동안 택시의 수송 분담률이 낮아지고,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졌는데도 택시요금 인상이 지지부진한 데에는 낮은 서비스 만족도와 관련이 깊다. 정부와 지자체가 일률적으로 전체 택시의 요금을 결정하기에 택시의 승객이자 유권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택시 서비스의 낮은 만족도는 오래된 문제다. 앞서 언급한 〈택시업종의 바람직한 임금제도 연구〉 보고서에도 “서울 택시의 불친절은 지난 수십 년간 사회문제가 되어왔으며, 택시 불친절을 바로잡기 위한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이 없으면 특히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을 찾을 수많은 외국인에게 택시의 불친절 행위가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을 그르칠 가능성이 높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택시의 불친절 행위를 바로잡기 위해서 택시기사에 대한 교육·감시·처벌보다 택시의 고용관계와 임금구조를 봐야 한다며 정부의 역할과 도입할 만한 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이 지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택시 서비스의 낮은 만족도와 관련이 깊다.

택시 둘러싼 기술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연합뉴스2월18일 미터기 수리와 주행검사를 위해 서울대공원 주차장에서 대기하는 택시들.

택시는 과잉 공급된 상태에서 요금 규제를 받았고, 모든 시장 참여자들이 법정 최저임금 이상의 소득을 얻기 힘든 구조가 유지됐다. 정부는 공급을 줄이기 위한 감차정책에도, 요금 인상에도 미온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택시기사들은 최대한 짧은 시간에 긴 거리를 운행하며 소득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 전략에 불가피하게 따라오는 것이 ‘승차거부(장거리 승객만 골라 받기)’와 ‘난폭운전’이다. 특히 법인택시 기사들은 회사가 손해를 보지 않는 수준으로 정해진 ‘사납금’을 채우며 개인 소득을 얻기 위해 극단적인 수익추구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는 기사가 같은 승객을 다시 만나기 어렵고, 서비스가 좋은 택시를 골라 탈 수 없는 구조적 환경도 영향을 미쳤다. 결국 택시의 서비스 품질과 노사관계, 임금체계도 지금까지 누적된 경로에 따른 결과물이다. 이를 거꾸로 보면 택시를 둘러싼 기술 환경이 달라지면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도 변화가 올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가정을 하나 해보자. 만일 지금까지 택시가 거쳐온 경로의존성을 고려하지 않고, 이 시점에서 자가용 유상 영업의 시스템을 새로 설계한다면 현재의 택시요금 부과체계, 사납금 제도가 여전히 존재할까. 이미 택시 수요자에게는 탑승시각과 소요시간이 실시간으로 조회되면서도 택시보다 저렴한 버스와 지하철이라는 대안이 있다. 다른 교통수단이라는 대안이 있고, 공급이 충분한 택시 시장에서 가격과 서비스가 각기 다른 택시를 소비자가 앱으로 조회해 골라 탈 수 있고, 소비자의 평가가 택시 영업에 실시간으로 영향을 준다면 지금보다 요금 규제를 완화해도 되지 않을까. 물론 아직은 소비자에게 그런 선택의 자유가 없는 상황이라 이런 가정이 무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이 보여준 가능성을 서비스로 만들 수 있는 미래에는 의미 있는 가정이다.

변칙적으로 이름만 살짝 바꿔가며 택시업계에 고질적으로 남아 있는 사납금 제도 역시 기술 환경의 변화가 영향을 줄 수 있다. 사납금 제도가 유지되는 근본 이유는 택시가 다른 노사관계와는 달리 사업주의 통제력이 노동자에게 미치지 않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노사 간의 불균형한 힘의 우위로 인해 공급자 중에서도 회사는 다소 이익을 내면서도 기사들은 저임금에 시달리는 결과를 낳았다. 앱 미터기로 요금이 부과되고, 수요와 공급이 플랫폼에서 매칭되는 디지털 경제에서는 오히려 사업주의 과도한 통제력이 경계 대상이다. 다시 말해 사업주가 통신과 디지털 기술을 적용해 적절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면 사납금 제도를 유지할 이유가 없어지는 셈이다.

현재 논란이 큰 카풀, 승차 공유, 차량호출 사업과 택시산업의 갈등을 푸는 일은 쉽지 않다. 택시산업에 누적된 문제와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면서도 기존 산업 이해관계자의 불만을 잠재우는 일은 불가능한 미션에 가깝다. 그렇다면 일단 현실인식부터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 분명한 현실은 택시를 둘러싼 기술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기술 환경은 새로운 산업과도 관련이 깊다.

다시 100여 년 전 택시 미터기가 준 교훈을 되새겨볼 필요도 있다. 택시 미터기가 택시산업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이유는 소비자에게 가격(택시요금)에 대한 신뢰를 주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는 시장 참여자 간의 신뢰가 확충된 영역에서 제대로 작동한다. 교통을 비롯해 금융·의료 등 정부가 규제하던 영역에서 수급자 간 정보 격차를 완화하고 양쪽에 더 다양한 선택지를 주는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면 그것을 막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기자명 윤형중 (LAB2050 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