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7일 개봉하는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이하 〈항거〉)는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실에서 2차 만세운동이 시작됐다’라는 기록에서 출발한다.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8호실에 수감된 여성들은 3·1운동 1주년을 맞은 1920년 3월1일을 기해 감옥에서 독립을 외친다. 영화에는 실제 유 열사의 이화학당 선배인 권애라 지사를 비롯해 여러 실존 인물이 등장한다. 영화 〈항거〉는 유관순 한 사람의 이야기이자,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야기이기도 한 셈이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3·1운동은 여성 독립운동사에서도 중요한 분기점이다. 여성 의병과 국채보상운동으로 싹트기 시작한 여성 독립운동은 3·1운동을 계기로 더욱 성숙해지고 정교해졌다.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기까지는 여성의 공로가 컸다. 신식 교육을 받은 여학교 학생과 교사·종교인·간호사는 물론이고 기생과 주모도 만세운동을 벌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후 대한민국애국부인회· 대한애국부인회 등 1920년대 항일 비밀 여성단체의 토대가 된 것도 3·1운동이다. 이들 여성단체는 ‘대한민국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헌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했다.
그러나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은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오늘날까지도 제대로 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여성 독립운동가인 유 열사조차도 해방 직후 쏟아진 영화와 전기 속에서 ‘순국처녀’로 표상화되거나, 얼마나 참혹한 고문을 당했는지 정도가 집중적으로 다뤄졌을 뿐이다. 대부분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체계적인 기록을 찾기가 어렵다. 여성의 사회참여를 저평가하는 당시의 인식 탓이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독립운동가에게 의식주를 제공하거나, 자금을 모으거나, 문서를 전달하는 일은 모두 중요한 독립운동의 한 축이었다. 하지만 그 주체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저 아내·딸·며느리로서 마땅히 해야 할 ‘뒷바라지’로 가려지고 말았다.
2018년 12월 기준으로 전체 독립유공자 1만5180명 중 여성은 357명으로 약 2.4%에 불과하다. 그나마 지난해 서훈 기준이 다양해지면서 여성 독립운동가 60명이 대거 포함된 수치다. 이은숙 여사는 국내외를 오가며 남편 우당 이회영 선생과 독립운동을 한 공로로 지난해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남편과 비교하면 꼬박 56년이 더 걸렸다.
독립유공자 가운데 여성은 2.4%
마침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다양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앞서 언급한 영화 〈항거〉가 2월27일 개봉을 앞두고 있고, 일본에서는 아나키스트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부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박열〉이 혐한 우익세력의 반대 시위에도 개봉 첫날(2월16일) 매진을 기록했다. 3월15일에는 여성 독립운동가 4인(안경신·김마리아· 권기옥·박차정)의 모습을 담은 기념우표가 나올 예정이다. 경기도 고양시에 자리한 국립여성사전시관에서는 3월7일부터 ‘여성 독립운동가, 미래를 여는 100년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특별기획전이 열린다.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이 쓴 신간 〈나는 여성이고, 독립운동가입니다〉(우리학교)를 통해서도 가려진 역사를 돌아볼 수 있다.
영화 〈항거〉에서 유 열사를 연기한 배우 고아성씨는 “(유 열사가) 죽음보다 삶으로 기억되는 인물로 남았으면 한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그의 소망대로 야만의 시대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여성들의 용기가 시간과 국경을 넘어 전해지는 100번째 3·1절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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