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이 지나면 밤이 된다. 썰물 뒤에는 밀물이 온다. 고생 끝에 낙이 오고, 오르막 다음에는 내리막이다. 만나자 이별이다. 태어나는 모든 것은 죽기 마련이다. 세상 만물의 이치, 인간 삶의 경로이다. 그러니 우리는 낮에 일하고 밤에 쉬어야 한다. 썰물에 조개를 잡고 밀물이 오기 전에 뭍으로 나와야 한다. 낙이 올 것을 믿으며 고생을 견뎌야 하고, 내리막은 없을 것처럼 정상에서 득의양양할 일이 아니다. 절대로 이별하지 않을 것처럼 SNS에 만남을 까발릴 일도 아니다. 태어나는 것은 기쁘게 맞으며, 죽음 앞에서는 연민과 감사와 경의를 표하면 된다. 그러면서 나의 밤과 이별과, 내리막과 죽음을 준비하면 된다. 인생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이 이치를 이 시대의 우리는 삶에서 배우기가 힘들다. 특히 아이들은. 실패가 허락되지 않고 고통과 좌절이 제거된 완고한 울타리 속에서 아이들은 그것을 겪으며 이겨내는 훈련을 받지 못한다. 그러니 울타리 밖으로 나가면 무너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멋진 대책이 있다. 삶이 가 닿지 못하는 곳을 위해 책이 있지 않은가. 〈강이〉 같은 책이다. 학대받다 구조되고, 마당 있는 집을 찾아 전전하다 입양된 개, ‘강이’ 이야기는 작가의 실화라고 한다. 어린 남매 바다와 산이는 그 새카만 개에게 이름을 붙여준다. 나는 산, 얘는 바다, 윗집 개들은 번개와 천둥, 할아버지 집 고양이는 구름이니까 너는 강이라고. 하늘과 땅, 물과 뭍을 아우르는 이 아이와 동물들 이름에서 자연의 기운이 흘러나오는 듯하다.

〈강이〉 이수지 지음, 비룡소 펴냄


작가가 직접 겪은 ‘강이’ 이야기

아이들은 옴짝달싹 못하는 철창에 갇힌 채 목마르고 배고팠던 강이에게 밥과 물을 주고 함께 뛰논다. 꽃밭과 눈밭을 뒹구는 아이들과 개는 검은 오일파스텔의 흑백 그림 속에서도 한껏 화려해 보인다. 화려한 시간도 잠시, 가족들은 강이를 할아버지에게 맡겨놓고 한동안 떠나 있게 된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 다짐했지만,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았지만, 그리움이 너무 컸던 탓일까, 병이 든 강이는 아이들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눈을 감는다.

엄마의 책상 위에 쌓여가는 그림을 보며 많이 울었다는 산과 바다. 아이들은 만남과 이별을, 함께하는 기쁨과 떠나보내는 슬픔을 몸과 마음으로 깊이 겪고 새겼을 터이다. 그런 새김은 아이들이 앞으로 세상을 이겨내고 품어 들이는 데 남다른 눈과 힘을 부여하리라.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이를 나누어가질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작가 엄마가 덧붙인 앞 이야기와 뒷이야기도 힘을 더한다. 학대받는 개에게 눈길을 돌리고 손길을 내미는 연민의 힘, 아픈 현실을 딛고 일어서게 만드는 상상의 힘을. 펄펄 내리는 파란 눈을 맞으며 뛰어 일어난 강이가 파란 산과 바다와 얼싸안고 어우러지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와락 콧등이 시큰해진다. 그런 뒤 작가의 머리말을 다시 읽으면 마음이 먹먹하면서도 든든해진다. 책이 완성되자, “이젠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라고 했다는 아이들의 말. 전심을 다한 이야기로 만든 책이 아이들을 어떻게 성장시키는지를 이 말이 증명해준다.

 

기자명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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