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뱃돈을 받은 어린이만 마냥 행복할 가능성이 높은 ‘우리 우리 설날’이 다가왔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끼리 안 친해서 묻는 게 뻔한 진부한 인사가 오가는 철이다. “취직 안 하냐” “결혼 안 하냐” “아이 안 낳냐” 따위. 친분을 가장한 상처주기가 갑자기 훅 들어올 땐, 긴급 처방으로 이 칼럼을 읽자. 김영민 교수의 ‘추석이란 무엇인가’는 이번 설에 읽어도 좋다.
표제작이랄 수 있는 이 칼럼을 비롯해 김 교수의 에세이·영화평론이 묶인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그런 점에서 귀성길 챙겨 가기 좋은 책이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이자 동아시아 정치사상사·비교정치사상사를 연구한 이의 글이라면 등을 펴고 바른 자세로 읽어야 할 것 같은 편견에 빠질 수 있다.
처음 몇 장만 넘기면 깊은 오해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의 엉뚱하면서도 진지하고 또 발랄한 글이 총 다섯 부로 나뉘어 실렸다. 어느새 킥킥거리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특히 2부 ‘희미한 희망 속에서-학교에서’ 중 유학생 선언을 읽다 급기야 카페에서 소리 내 웃었다.
인생의 길을 몇 걸음 더 걸어간 선배의 따스한 조언은 프롤로그에서부터 읽힌다. 아침부터 죽음을 ‘대비’하라는 자기계발적 메시지가 아니다. 저자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라고 적었다. 인생과 세상을 관조하는 동시에 사랑하는 자가 가질 수 있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각각의 글과 함께 곁들인 사진이나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이 많다. 신문, 잡지 등에 실린 서로 다른 글이라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보고 싶은 글을 그때그때 골라 읽고 곱씹는 맛도 있다. 이번 설 귀성길 동반자로 꽤 괜찮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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