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방 사장’은 누구인가. 2018년 7월부터 장자연 리스트 본조사를 시작한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이하 검찰 과거사위)가 밝혀야 할 핵심 질문이다. 〈시사IN〉 취재 결과, 검찰 과거사위가 조선일보 사주 일가 중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과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와 관련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2009년 3월7일 배우 장자연씨는 스물아홉 살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숨지기 일주일 전, 성접대 등을 강요받았다는 문건(이하 ‘장자연 문건’)을 남겼다. “2008년 9월경 조선일보 방 사장이라는 사람과 룸싸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사장님이 방 사장님이 잠자리 요구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후 몇 개월 후 김성훈 사장(기획사 대표)이 조선일보 방 사장님 아들인 스포츠조선 사장님과 술자리를 만들어 저에게 룸싸롱에서 술접대를 시켰습니다. … 저는 술집 접대부와 같은 일을 하고 수없이 술접대와 잠자리를 강요받아야 했습니다.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2009. 2. 28 장자연(‘장자연 문건’ 원문 그대로 표기).”

 

 

장씨가 숨진 지 엿새 후 문건이 언론에 공개되자,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정리될 뻔한 사건의 본질이 바뀌었다. 잠자리 접대 요구를 한 ‘조선일보 방 사장’과 술자리 접대를 받은 ‘조선일보 방 사장님 아들인 스포츠조선 사장님’이 누군지에 대한 수사도 이뤄졌다. 일명 ‘장자연 리스트’. 성접대·술접대 강요, 폭행 등이 명시된 문건은 연예계의 어두운 면을 들춰냈다. 배우의 꿈을 미끼 삼아 장씨에게 성접대와 술접대를 강요한 행위 등은 범죄다.

2009년 8월 검찰은 장자연 리스트 사건 관련해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을 포함한 피의자 14명 중 딱 두 사람만 기소했다. 장자연 소속사 대표였던 김종승씨(김성훈의 본명)와 매니저였던 유장호씨였다. 검찰이 재판에 넘긴 이들의 혐의는 성접대 강요 등과 관련이 없었다. 김종승씨는 장자연에 대한 폭행 및 협박, 유장호씨는 김종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였다. 검찰은 나머지 피의자의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했다.

당시 수사가 부실했다는 비판을 사며 ‘조선일보 방 사장’과 ‘조선일보 방 사장님 아들인 스포츠조선 사장님’이 누군지는 미궁에 빠진 채 사건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대부분 언론도 장자연 문건에 나온 조선일보를 기사화하지 못했다. ‘언론계 유력 인사’ ‘특정 신문사 고위 관계자’와 같이 에둘러 보도했다. 이종걸 민주당 의원이 2009년 4월6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장자연 리스트에 조선일보 방 사장이 포함돼 있다”라는 취지로 공개 발언을 했지만, 이조차도 ‘일보  사장’이라고 기사화됐다.
 

 


조선일보는 2009년 자사 관계자 이름이 거론되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소송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강효상 당시 조선일보 경영기획실장(현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의원) 명의의 입장문을 냈다. 다른 언론사에도 “향후 본건과 관련, 본사와 임직원의 명예를 손상하는 행위가 발생하는 경우, 본사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엄중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비실명 보도는 성접대 의혹 등 장자연 사건의 본질을 가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9년 넘게 수면 아래 있던 의혹이 2018년 다시 떠올랐다(위 표 참조). 검찰 과거사위가 지난해 4월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조사 대상에 올렸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23만명이 서명하는 등 9년이 지났지만 관심은 식지 않았다.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본조사에서 검찰 과거사위는 다수의 의미 있는 진술을 확보했다. 지난해 12월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과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를 각각 조사했다. 두 사람이 각각 2007년과 2008년 장자연씨를 만난 적이 있다는 증언이 여럿 나왔다. 방용훈 사장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동생이고, 방정오 전 대표는 방상훈 사장의 아들이다(아래 인포그래픽 참조). 특히 방용훈 사장이 장자연 사건으로 조사를 받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밤의 조선일보 사장은 방용훈”

〈시사IN〉은 장자연 리스트 사건과 관계된 이들과 과거사위에 출석한 관계자 다수를 취재했다. 검찰 과거사위는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을 ‘조선일보 방 사장’이라고 불렀다”라는 복수의 증언을 확보했다. 검찰 과거사위는 또한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의 이름이 장자연 다이어리에 여러 번 나왔다. ‘방정오 시 미팅’과 같이 쓰인 메모가 있었다”라는 장자연씨 측근의 진술을 받았다. 장자연 문건과 관련해 지금까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증언이다.

먼저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을 잘 아는 스포츠조선 전 사장 ㄱ씨는 “조선일보에는 사장이 둘이라는 건 유명한 얘기다”라고 말했다. “낮과 밤의 ‘조선일보 방 사장’이 다르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낮의 조선일보 방 사장으로, (사옥이 위치한) 광화문에 있다. 밤의 조선일보 방 사장은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이다. 우리도 방용훈 사장과 밥 먹을 때면 ‘조선일보 방 사장’이라고 불렀다.”

방용훈 사장의 집사 구실을 한다고 알려진 한씨가 ‘코리아나호텔 방 사장을 안다고 하지 않고 조선일보 방 사장을 안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얘기가 방용훈 사장 귀에까지 들어갈 정도였다. 또 한씨가 김종승 대표의 가족에게도 자신을 ‘조선일보 방 사장 친구’라고 소개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한씨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방용훈 사장은 2009년 장자연 리스트 사건 수사 때 혐의 선상에도 오르지 않았다. 경찰은 방용훈 사장이 장자연씨를 만났다는 진술을 확보했지만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당시 경찰은 2007년 10월 중순 서울 청담동 중식당 이닝에서 방용훈·장자연 등과 동석한 스포츠조선 전 사장 ㄱ씨의 증언을 이미 확보한 상태였다. 김종승 대표 또한 경찰에서 “(방용훈 사장과 방정오 전 대표를 각각 만나는 자리에) 장자연씨가 있었다”라고 시인했다. 심지어 당시 수사 검사도 ‘밤의 조선일보 사장은 방용훈’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파고들지 않았다. 수사기관은 방용훈 사장에 대한 휴대전화 통화 내역이나 기지국 분석 등을 실시하지 않았다.

2007년 10월 중순 식사 자리에는 방용훈 사장의 집사 역할로 지목된 한씨를 비롯해 당시 주한 미국 대사관 공사, CNN 한국지사장, 또 다른 여배우 등이 있었다고 복수의 참석자가 진술했다. 장자연씨는 2007년 10월6일 김종승 대표의 기획사와 계약한 ‘신인 배우’로 김 대표와 함께 이 식사 자리에 참석했다. 방용훈 사장은 검찰 과거사위에 출석해 장자연씨가 동석했는지 모르겠다고 진술했다.

방용훈 사장이 장자연씨를 2007년 10월 중순 식사 자리 외에도 더 만났다는 추가 증언도 있다. 장자연 문건에 명시된 2008년 9월쯤이다. 스포츠조선 전 사장 ㄱ씨는 “나중에 집사 한에게 2008년 9월 방용훈이 장자연을 만났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그 이야기를 몇몇 기자들에게 해줬다가 한이 방용훈의 눈 밖에 나서 한동안 쫓겨나 있었다. 그러다 요새 다시 관계를 회복했다”라고 말했다. 2008년 9월 이 모임에는 검찰 출신 권재진 전 법무부 장관이 동석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권 전 장관은 방용훈 사장을 만난 시점은 2008년 1월이고 장자연씨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방용훈 사장 또한 장자연씨는 없었다고 검찰 과거사위에 진술했다.

ⓒ시사IN 포토2009년 4월 장자연씨 죽음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조선일보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방용훈 사장과 삼촌-조카 사이인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도 장자연씨와 술자리에서 동석한 적이 있다. 2008년 10월28일 서울 청담동 룸살롱 라나이에 김종승 대표가 장자연씨와 함께 나타났다. 장자연씨 어머니의 제삿날이었다. 장씨의 로드매니저 김씨는 2009년 경찰 수사 때 “장자연이 차 안에서 누군가와 통화했고 어머니 기일이라고 하면서 울다가 다시 주점으로 내려갔던 것을 기억한다”라고 증언한 바 있다.

그날 회사 법인카드로 술값 200만원을 계산한 김종승 대표는 술자리가 끝난 직후인 10월29일 새벽 1시22분 장자연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직원들 앞에서 말조심해.” 여러 정황상 장자연 문건 속 “2008년 9월, 그 후 몇 개월 후 김성훈(개명 전 김종승) 사장이 조선일보 방 사장님 아들인 스포츠조선 사장님과 술자리를 만들어 저에게 룸싸롱에서 술접대를 시켰습니다”라는 부분을 떠올리게 하는 만남이라는 의혹은 2009년 수사 때도 불거졌다.

하지만 방정오 전 대표에 대해서도 당시 적극적인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사기관은 방정오 전 대표의 통화 내역을 2008년 10월28일 술자리 당일부터 이튿날인 10월29일까지 이틀치만 조사했다. 통화 내역 조회 결과 10월29일 새벽과 오전에 김종승-방정오 간의 연락이 3차례 확인됐다. 이틀치에서는 이게 전부였다. 대신 김종승 대표의 통화 내역 조사에서 2008년 11월4일 저녁 김종승과 방정오가 세 차례 연락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수사기관은 더 움직이지 않았다. 방정오 전 대표의 통화 내역 범위를 확대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검사는 “장자연·김종승의 통화 내역을 이미 조회했기 때문에 원래 이중 압수는 하면 안 된다. 다만 당시 방정오의 위치를 보기 위해서 이틀치만 추가로 조사했다”라고 말했다.

방정오 전 대표는 2009년 수사 때 경찰 조사를 받았다. ‘장자연을 본 기억이 없고, 뒤늦게 합석한 자리에 오래 있지 않고 일찍 들어갔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휴대전화 기지국 기록상 방정오 전 대표는 10월28일 밤 11시59분까지, 장자연씨는 10월29일 새벽 1시6분까지, 김종승씨는 10월29일 새벽 0시55분까지 청담동에 머문 것으로 나타난다. 방정오 전 대표는 2009년 참고인 신분으로 55분 동안 조선일보 사주 일가가 소유한 코리아나호텔에서 조사를 받았다. 검찰 조사를 받지는 않고, 사건은 종결됐다.

장자연씨 측근의 새로운 증언

이번 검찰 과거사위 본조사에서 방정오-장자연 관계와 관련된 새로운 진술도 확보됐다. 장자연씨의 측근 이씨의 증언이다. 2008년 10월 이후부터 장자연씨가 이씨의 집을 일주일에 2~3번씩 갈 정도로 가까웠던 인사다. “장자연 유품인 다이어리에서 방정오의 이름이 여러 번 나왔다. ‘방정오 시 미팅’이라고 쓰여 있었다. 장자연에게 방정오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다이어리에 쓰인 내용이) 그때라고 생각했다.” 다만 이후 다이어리를 소각해 내용 확인은 불가능하다. 이씨는 고인(장자연)에게 피해가 갈 것을 걱정해 다이어리를 소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는 2009년 참고인 신분으로 코리아나호텔에서 55분간 경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 조사 없이 사건은 종결됐다.


이씨가 2009년 경찰 조사 당시에는 하지 못했던 진술이다. 그는 조선일보와 관련해서는 경찰이 수사에 소극적이라고 느껴 진술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2011년 10월10일 이종걸 의원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조선일보와 관련한 진술을 했다. 이 의원은 ‘조선일보 방 사장’ 발언으로 뒤늦게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장자연이 자살한 후 시끄러울 무렵에 같은 번호로 일곱 번이나 전화가 왔다. 받지 않자 실명을 밝히며 문자가 왔다. ‘조선일보 기자입니다. 분명 저희 쪽 도움이 필요할 날이 있으실 텐데 이러시면 곤란하죠. 전화를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피하지 마십시오.’ 분당경찰서에서 이런 내용을 진술했는데 진술조서에는 빠졌다.”

스포츠조선 전 사장 ㄱ씨 또한 방정오-장자연 사이와 관련해 전해들은 이야기를 검찰 과거사위에 진술했다. “사건 당시 법조 담당 조선일보 후배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다. 장자연-방정오 통화 기록이 나와서 그걸 빼려고 노력을 했다고 했다.” ‘사건 당시 법조 담당 조선일보 후배’는 이런 말 자체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다. 현재 이 인사는 조선일보 간부다.

 

 

ⓒ연합뉴스장자연씨 자살 이후 경찰이 소속사 전 대표 소유의 서울 삼성동 건물을 압수수색했다.

TV조선 측 “사실 아냐, 법적 대응할 것”

현재 진술과 증언으로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진실을 규명해줄 단서였던 2009년 수사기관이 조회한 장자연·김종승·유장호의 1년치 통화 내역이 사라졌다. 검찰 과거사위가 확인한 장자연 사건 수사 기록에 편철되어 있지 않았다. 현재 새롭게 영장을 청구해 구할 수도 없다. 보존 기간이 지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진 다음, 당시 수사 검사가 개인적으로 가진 장자연 1년치 통화 기록을 검찰 과거사위에 냈지만 원본이 아니었다. 수정한 흔적이 있었다.

〈시사IN〉은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과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 측에 공식 입장을 물었다. TV조선 홍보팀은 “방정오 TV조선 전 대표가 고 장자연씨를 여러 차례 만났다거나 장씨와 직접 통화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관련 보도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할 방침이다”라고 답했다. 코리아나호텔 사장 비서실은 “방용훈 사장님이 출장 중이셔서 연결이 어렵다. 변호사에게 전달도 해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오는 3월까지 활동 시한이 연장된 검찰 과거사위는 이와 같은 사실을 종합해 장자연 리스트 사건 조사 결과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기자명 김은지·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