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본 역사

하나다 마사시 외 지음
조용헌·정순일 옮김 
민음사 펴냄

“오늘날의 동아시아 세계는 바다에서 만들어졌다.”
획기적이다. 그리고 충격적이다. 그런데 설득력이 있다. 바다를 중심에 놓고 동아시아 역사를 다시 검토하자는 주장이다. 국적이라는 꼬리표는 무시하고 바다의 논리로 동아시아를 보자고 한다. 접근 방법이 신선하다. 바다를 모르는 당시의 육지 위정자들이 어떤 오류를 범했는지 한·중·일의 기록을 대조하며 잡아낸다.
바다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총 28명의 일본 학자가 동원되었다. 지중해 문명처럼 동아시아 해역을 하나의 문명권으로 보고, 바다를 통한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1250~1350년, 1500~1600년, 1700~1800년 이 300년 동안의 동아시아 해역을 살핀다. 동아시아 3국 모두 바다에 대해 해금정책을 폈지만 해역의 주인공들에게 그런 규제 따위는 장벽이 되지 않았다. 
유머니즘

김찬호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우리, 잘 웃고 있습니까?”
‘슬픔은 무겁고 웃음은 가볍다’라고 많이 생각한다. 그러나 웃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전작에서 ‘모멸감’에 대해 사유했던 저자가 이번에 붙든 화두는 유머다. 유머 안에 권력관계가 있고 유머 안에 불평등이 있으며 유머 안에 사회 모순이 있다는 일종의 ‘유머 사회학’이다. ‘유머니즘’은 유머와 휴머니즘을 결합한 말이다.
울음은 감정적인 것이지만 웃음은 관계적인 것이다. 혼자 있을 때 우는 경우는 있지만 웃는 경우는 별로 없다(텔레비전을 앞에 둔 경우는 제외). 웃음은 관계의 산물이다. 그래서 누가 웃기고 누가 웃기는 소재가 되느냐는 사회학적 주제다. 저자는 웃음 권하는 사회에서 함께 웃지 못하는 웃음은 폭력이라고 지적하며 웃음이 폭력이 되는 여러 상황을 설명한다.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마사 누스바움 외 지음 
안진이 옮김
어크로스 펴냄

“우정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문제를 이해하도록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접하도록 합니다.”
노년기에 접어들고 있는 두 저자는 ‘나이 듦’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철학적·법률적· 경제적 사고가 요구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노년기에 마주치는 복잡한 질문 여덟 개를 놓고 이를 각자가 요리조리 뜯어본 후 글을 썼다. 나이 들어가는 몸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과거를 회고하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 중년 이후의 연애 그리고 노년의 빈곤과 불평등에 관한 질문은 “끝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생의 지속에 관한 질문”이었다.
나로 시작해 결국 타인과 공동체를 향하는 지적인 여정은 성격이 다르고 학문적 접근법도 다른 두 사람의 개성과 사려 깊은 통찰로 빛난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모두 늙는다. 그 여정을 함께할 충만한 참고서 하나가 생겼다.
나를 뺀 세상의 전부
김소연 지음, 마음의숲 펴냄
“나는 할머니 덕분에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이렇게 쉬운 걸 이제야 알게 됐다.”
공항에서 우연히 낯선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외국에 정착해 사는 딸이 보고 싶어서 ‘나 홀로 해외여행’을 난생처음 감행했다고 했다. 한국 사람이 반가워서 잠깐 말을 걸었겠거니 싶었는데, 할머니는 자꾸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를 해왔다. 딱히 싫지는 않아서 고개를 주억거리다 생각했다. 타인에게 엄청 다정한 모녀지간처럼 보일 수도 있겠구나. 그러다 이북 출신의 화끈한 엄마를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국에 도착해 할머니를 KTX에 태워드렸다. 할머니가 김소연 시인의 손을 잡았다. “참말 좋은 사람이야.”
시인의 이번 산문집은 자신이 직접 만났거나 직접 겪었던 일만 글로 써보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했다. 차곡차곡 쌓인 사소한 하루가 드러내는 삶의 단면에 자꾸만 코끝이 찡하다.
파노라마섬 기담/인간 의자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단비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그 기괴하기 짝이 없는 망상을 실제로 행해보자고 마음먹은 겁니다.”
일본 추리문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에도가와 란포의 걸작 중단편 두 편을 엮은 책이다. ‘란포 월드’에서는 전형적 인물(세상의 윤리·도덕을 초월해서 자신의 ‘망상적 욕망’을 기괴한 형태로 실현하는 남성)들이 각 소설의 주인공. 한 남자는 무인도에 자신만의 ‘미의 나라’를 창조해서 신으로 군림하며(〈지옥의 묵시록〉의 커츠 대령처럼), 다른 남자는 의자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미리 경고하건대, 소설 자체가 굉장히 기괴하고 반(反)사회적이며 불순하게 에로틱하지만, 한번 펼치면 끝까지 읽어낼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은 꿈, 밤에 꾸는 꿈이야말로 진실”이 좌우명이었던 작가의 역량 때문인가? 1920년대 소설이지만 매우 ‘현대적’으로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마취의 시대

로랑 드 쉬테르 지음
김성희 옮김, 루아크 펴냄
“결국 모든 것은 화학의 문제다.”
1846년, 미국 보스턴의 특허청에 발명특허 하나가 등록되었다. 수술 환자에게 증기를 흡입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기술이었다. 신경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에테르의 성질을 이용해 환자가 고통 없이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역사상 최초의 마취제였다. 벨기에 출신 법학박사인 저자가 육체적인 마취를 넘어 인간 정신의 마취에 이르기까지 마취의 역사를 들려준다. 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 치료제로 쓰였던 클로랄 하이드레이트, 국소마취제로 쓰인 코카인 등이 어느 시기에, 어떻게 등장했는지 알 수 있다. 마취 기술이 발전할수록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고통’도 늘었다. 증세의 호전이 아니라 잠시 동안의 억제제로 기능하게 된 것. 마취의 역사는 통제의 역사이기도 하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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