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좌관을 시작했을 때 국가안전기획부 차장을 역임한, 이른바 ‘공안 검찰’ 출신 국회의원이 같은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이었다. 나는 사회운동을 하다 진보 정당 보좌관으로 일하게 된 터라 솔직히 말하자면, 상임위에서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분노와 적개심이 샘솟았다. 그러나 당시 우리는 제1야당이었던 그 의원이 소속된 보수 정당과 협력하여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해야 했다. 나중엔 ‘협력관계’가 깨졌지만, 필요하다면 분노를 접고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충격적인 정치의 시작이었다.
나는 그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역시 시민들이 선출한 정치인이다. 그가 아니라 그를 지지하는 시민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중요한 것은 주장이 아니라 실질적 변화다. 이를 위해 협상과 양보·타협은 필수다. 저자의 말처럼 정치에서 후퇴는 피할 수 없고, 승리도 언제나 부분적이다. 법안은 갖은 노력을 해도 통과되지 않을 수 있고, 심사 과정에서 수정되기 일쑤다. 정치에서 대부분의 노력은 의견이 같은 사람과 의기투합하는 게 아니라, 의견이 다른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할애된다. 

저자는 민주주의의 핵심 규범으로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꼽고 있다. ‘상호 관용’은 정치 경쟁자가 헌법을 존중하는 한 그들이 존재하고, 권력을 놓고 서로 경쟁을 벌이며, 사회를 통치할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개념이다. ‘제도적 자제’는 주어진 권력을 신중하게 절제해서 사용하는 태도를 뜻한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에서 켜진 민주주의 경고등은 우리에게도 큰 시사점을 준다. 민주주의는 스스로 발전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시민들의 손에 운명이 달려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라는 안전장치가 휘청거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어크로스 펴냄


저자가 알려주는 ‘꿀팁’을 전한다. 잠재적 독재자를 감별할 수 있는 경고신호 네 가지다. 말과 행동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고, 경쟁자의 존재를 부인하며, 폭력을 용인하거나 조장하고, 언론의 자유를 포함하여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정치인이다.

포퓰리스트를 알아채는 방법도 있다. 권력을 ‘국민’에게 되돌려주겠다고 약속한다면 일단 경계해야 한다. 자신이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며 기존 정당 체계의 가치를 부정하면서, 기성 정치인들을 비민주적이고 비애국적인 자들로 매도한다면 거의 틀림없이 포퓰리스트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 〈자만의 덫에 빠진 민주주의〉 〈청와대 정부〉가 있다. 

기자명 박선민 (국회의원 보좌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