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떤 위험을 예비할 수 있다고 하자. 그 위험에 대해 사랑하는 이에게 시급하게 알려주어야 하는데 말을 잃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그렇게 말이 사라진 자리에 놓인 것이 시라는 생각을 한다. 말로 표현되어 있지만 전혀 다른 배열을 가지고 있기에 통상적인 규율 아래의 소통이 불가능해진 것이고 다만 언어를 구축할 뿐이라고. 말 이외의 모든 것, 곧 이미지·소리·촉각·온도·질량감·부피·이동성 등을 성취해내 전달한다고. 그리고 강성은의 시가 그런 말 없는 가운데 말하는 시의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책 제목인 ‘Lo-fi’(로파이)는 우리말로 바꾼다면 ‘저음질’이 될 수 있을 그의 세 번째 시집을 아주 예민한 기척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때는 그의 시가 간절한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라고 여겼지만 지금은 나의 간절함이 그런 독법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나는 광장의 침묵 속에 한참 서 있다가 광장을 가로질러 작은 샛길로 들어갔다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들과 처마를 지나 불 켜진 창을 지나 교회와 상점들을 지나자 또다시 광장이 나타났다 (…) 어둠 속에 시체들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그들은 내 가족과 친구들과 꿈속에서 보았던 사람들,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이었다 죽어 있는 것은 나였다 우리 모두가 이곳에서 부르던 노래가 떠올랐다 이 광장을 벗어날 수가 없구나 이 노래는 끝나지 않는구나 매일 밤 모든 길은 광장으로 이어졌다 -‘밤의 광장’

강성은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우리가 광장으로 나갔던 시간들은 이제 각자의 자리로 흩어져 더 이상 그것을 명확하게 헤아리거나 어떤 구호들로 요약할 수가 없다. 고요하게 타오르는 촛불의 화점을 특정할 수 없듯 광장에 있었던 우리 역시 이 일상의 망점 안에서는 쉽게 식별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말이 멈춘 사이 어떤 위험들이 흘러간다. 어쩌면 지금이 바로 시의 방식으로 서로를 감각해야 할 때가 아닐까. 〈Lo-fi〉를 읽는 독법이란 그 아름다움만큼 여러 가지겠지만 나는 이것이 우리가 겪어낸 2014년 4월 이후 시간들에 대한 증언과 당부라 생각하며 읽었다. “광장의 침묵” 속에 각자 흩어져 이제 “미로처럼 얽힌” 일상을 유지해나가야 하는 우리, 아직 광장의 노래가 끝나지 않았음을 예민하게 감각해야 하는 우리. 올겨울 역시 “온통 희고 차고 끝나지 않을” 것들로 가득한 시간이 될 터이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들려주려는 이 간절한 로파이의 신호도 만만치는 않아서 우리는 쉽게 끝내지 않고 여전히 뜨거울 것이다. 마치 눈처럼. 모든 풍경들을 쓰다듬듯이 와락 내려 세상을 동일하게 덮는 눈처럼, 그 눈의 낮고 희미한 기척처럼. 

※ 글의 제목은 수록작 ‘ghost’에서 가져왔다.


기자명 김금희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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