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불암산 자락의 한 빌라에서 구순 노모를 모시고 사는 김세걸씨는 국립현충원에 묻힌 가짜 독립유공자를 찾아내는 데 20여 년을 바쳤다. 그동안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가짜 독립유공자 5명을 밝혀내 줄기차게 서훈 취소와 묘 이전을 요구했다. 또 국가보훈처가 가짜 독립유공자 유족에게 수십 년 동안 지급한 연금을 국고로 환수하라고 촉구해왔다.

김세걸씨는 2018년 10월15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가짜 독립운동가 포상은 일생을 조국 광복에 헌신한 애국선열에 대한 모독이요, 명백한 범죄행위입니다. 대체 어떤 연유에서 우리나라에 이런 부정과 비리가 생겨났는지 밝혀내고 이제라도 바로잡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이에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서훈자 전수조사를 청원합니다.”

2018년 10월16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도 이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을 상대로 “가짜 독립유공자 문제는 브로커와 보훈처 내부 조력자의 합작품으로 보인다. 전수조사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피우진 처장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계획을 세워 전수조사하겠다. 우선 1970년 이전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에 한해서 단계적으로 공적을 재조사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김세걸씨가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아버지 김진성 선생의 묘를 찾았다. 1998년 가짜 김진성의 묘가 파묘되고 그 자리에 부친의 유해가 이장되었다.

누군가 아버지 공적 가로채 훈장·연금 받아 

김세걸씨의 투쟁이 빛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고 말한다. 김씨는 어떤 사연이 있기에 가짜 독립유공자 색출이라는 숙제를 떠맡고 나섰을까? 또 피우진 처장이 약속한 독립유공자 서훈 전수조사의 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거라고 우려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김세걸씨는 1932년부터 임시정부 계열인 국민부 제2중대에서 참사로 독립운동에 앞장선 김진성 선생의 장남이다. 김진성 선생은 1934년 일제 밀정 김용환을 처단한 혐의로 체포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고, 1945년 출옥했다. 출소 뒤 부모를 찾아 만주로 갔다가 분단으로 중국 선양에 발이 묶였다.
그는 일제의 고문 후유증으로 병마에 시달리다 부인과 어린 자녀를 둔 채 1961년 눈을 감았다. 김진성 선생은 임종 전 아들에게 두 가지 유언을 남겼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대에 진학해 의사의 길을 걸으라는 것과 중국에서 살기 힘들면 언제든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아들 세걸씨는 둘 다 지켰다. 베이징 대학 의대를 졸업해 의사가 되었고, 1997년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한국으로 영구 귀화했다.

재중 동포였던 김세걸씨가 국립현충원에 묻힌 남한의 가짜 독립유공자를 찾아내는 일에 몰두하게 된 데는 운명적인 사연이 있다. 중국 선양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김씨는 1992년 어느 날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다. 거기서 한국 가요 배경화면으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묘역이 클로즈업되었는데, ‘김진성’이라는 묘비가 잡혔다. 순간 ‘아, 저거 우리 아버지 묘소네. 아버지 유해는 중국에 있는데 어떻게 서울 현충원에 묘지가 있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당시 중국군 군의관 영상의학과장으로 근무하던 김씨는 사무실 팩스를 이용해 국가보훈처 선양과에 질의서를 보냈다. ‘서울 현충원 김진성 묘가 저희 아버지 묘인지 확인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얼마 뒤 보훈처에서 ‘동명이인’이라는 짤막한 답변이 왔다.

“아버지의 독립운동 공적 자료를 찾아내 현충원 김진성의 공적과 비교해보니 똑같았다. 보훈처에 찾아가 자초지종을 확인했더니 1968년 누군가 아버지(김진성) 공적으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고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시신까지 안치했더라. 또 1945년 7월20일 출생했다는 김진성의 딸이라는 사람이 1983년까지 보훈연금을 받아간 기록이 나왔다. 일제 때 무기징역형을 살던 아버지는 1945년 9월14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옥했는데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시사IN 신선영
ⓒ시사IN 신선영김세걸씨가 독립지사 관련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위). 김씨 자택 거실에는 김진성 선생의
국가유공자 증서와 옥살이 당시 기록물 등이 걸려 있다(맨 위).

김씨가 보훈처에 항의하자 담당 직원은 ‘동명이인’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그는 가짜 김진성이 아버지 공적을 그대로 베껴 국립현충원에 안장되고, 아버지로 행세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제야 보훈처에서는 독립운동가 김진성이 김세걸씨 부친이란 사실을 인정했다. 이를 토대로 김영삼 정부 들어서는 진짜 김진성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새로 수여했다.

하지만 1968년 박정희 정부가 가짜 김진성 유족에게 수여한 건국훈장 애국장은 건드리지 않았다. 국립현충원에 묻힌 가짜 김진성 묘지도 그대로였다. 김세걸씨는 반발했다. “현충원의 가짜 김진성 묘지를 없애고, 관련자의 범죄행위를 처벌하라고 요구하자 보훈처에서는 권한이 없어서 곤란하다고 거절했다. 오히려 ‘당신 가족을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인정하고 한국으로 귀화시켰으면 됐지 더 이상 뭘 바라느냐’고 힐난하더라.”

김씨는 가짜 김진성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결국 1998년 7월 김대중 정부 때 가짜 김진성 묘가 이장되었다. 대신 중국에 묻힌 진짜 김진성 선생 유해를 봉환해 그 자리에 안장했다. “아버지가 스물두 살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다른 수감자와 달리 부모도 만주에 있으니 아무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 그때 아버지 심정이 어땠겠는가 생각하면 한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게 쌓여서 가짜 독립유공자에 대해 분노가 생겼고, 그것이 내가 계속 가짜를 파헤치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

진짜 유공자는 4등급, 가짜 유공자는 3등급 

김세걸씨의 노력으로 국립현충원에는 아버지 김진성 외에도 다른 독립운동가를 대신한 가짜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그가 의심스러워 관리인에게 물었더니 ‘한집안에서 찾아와 애국지사 묘지에 제사를 지낸다’고 말했다. 김씨는 먼저 가짜 김진성 묘역 옆에 위치한 김정수 묘에 대해 조사했다. 그 묘비 뒤편에 아버지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묘지도 진짜는 독립운동가 김정범 선생인데 그 공적을 가로챈 거였다. 가짜가 건국훈장 애국장 3등급을 받아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후손들이 연금을 받아가고 있었다. 범죄도 그런 범죄가 없었다.”

김세걸씨는 동작동 현충원에 묻힌 가짜 독립유공자 명단을 들고 보훈처에 문제를 제기했다. 보훈처는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박근혜 정부 때 진짜 김정범 선생에게 뒤늦게 훈장을 추서했다. 박정희 정부 때 가짜에게 준 훈장은 유관순 열사와 동급인 3등급이었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진짜에게는 4등급을 줬다. 가짜 독립유공자 묘지도 그대로 두었다.

김세걸씨는 2014년부터 이 문제를 팟캐스트 등을 통해 공론화했다. “현충원에 가면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과 군인들이 와서 가짜 독립유공자 묘소 앞에 헌화하고 경배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혈세가 가짜한테 나간다는 것을 알고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2014년 들어 김세걸씨는 독립운동 유관단체와 힘을 합쳐 가짜 독립유공자 서훈을 박탈하고, 지급된 보훈연금은 국고에 환수하라고 요구했다. “그랬더니 2015년부터 가짜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매달 지급하던 보훈연금을 정지하더라.”

김세걸씨의 20여 년에 걸친 노력은 최근 들어 작은 결실로 이어졌다. 2018년 8월15일 문재인 대통령은 김씨가 파헤친 가짜 독립유공자 4명에 대해 서훈을 취소하는 서류에 사인했다. 현충원 묘지 관리를 맡은 국방부는 유족에게 가짜 묘지를 이장하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이들 유족은 불복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자기네들이 가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는데 더 잘됐다. 법정에서 확실한 증거로 결판을 내줄 것이니까. 김정범 선생의 공적을 가로챈 이들은 평양에서 옥고를 치렀다고 주장하는데, 김정범 선생은 아버지하고 서대문 감옥에서 같은 시기에 옥고를 치렀다. 두 분 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
김세걸씨는 가짜 독립유공자 서훈자 전수조사 촉구 운동이 잘못된 현대사를 바로잡는 시작이라고 말한다. 국립현충원에는 진짜의 공적을 가로챈 가짜 독립유공자 외에도 좀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오랜 세월 국립현충원을 드나들면서 친일파들도 안장돼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만주에서 저희 아버지와 같은 독립운동가를 토벌하고 박해하던 친일파들이 대한민국에서 아버지랑 같은 훈장을 받았다. 김창룡 같은 친일 행위자한테 훈장을 추서하고 현충원에 안장했다.”

친일파 63명, 서울·대전 현충원에 안장돼 

12월20일 자택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마친 김세걸씨는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애국지사 묘역, 30년간 가짜 김진성이 묻혔던 아버지 묘 옆에는 아직도 가짜들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 신병 훈련을 마친 군인 일행이 간부 인솔자의 안내로 그 앞에서 헌화하고 묵념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와 함께 찾은 ‘장군 제1묘역’에는 김백일의 묘가 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그는 일제강점기 간도특설대에서 7년간 복무하며 독립운동 탄압에 앞장섰다. 간도특설대는 1930년대 가장 악랄하게 항일운동가를 탄압한 3대 조직 중 하나로 꼽힌다. 김백일은 광복 후 군에 들어갔고 1951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육군 중장으로 추서됐고,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임정 요인 묘역에 안장된 지청천 장군의 묘지 위쪽으로는 이응준의 묘가 있다. 이응준은 2005년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설립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식 지목한 인사다. 일본 육사 출신으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탄압했다. 이응준 역시 이승만 정부에서 군에 입문해 육군 중장으로 예편했다.
국가보훈처의 ‘친일반민족행위자 국립묘지 안장자 현황’에 따르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파 가운데 63명이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에 묻혀 있다. 이들은 모두 보훈처와 국방부의 소극적 자세로 이장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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