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영 흥미롭지가 않다. 왜 열에 여덟아홉은 약간 느끼한 아저씨들이 온 영혼을 모아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짓고 있는 인상일까. 우리가 그나마 특색이 있는 정치인들을 기억해서 그렇지, 국회의원 하나하나를 개별 캐릭터로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비평준화 시절 지역 명문고를 졸업하고 서울로 와서 명문 대학을 졸업한 남성, 착한 자녀들과 내조 잘하는 아내로 이루어진 겉으로는 화목한 가정, 법조인 아니면 관료·의사· 기업인·기자·당직자 출신, 586 세대이거나 그 선배급. 차별성이 있다면 영남 출신인지 호남 출신인지, 혹은 DJ(김대중)가 발탁했는지 YS(김영삼)가 발탁했는지, 그도 아니면 30년 전에 사회운동을 했는지, 바로 고시나 전문직 시험을 준비했는지의 차이뿐인 사람들로 여의도는 가득하다.

헤게모니 밖의 유권자들은 엑스트라로 전락

ⓒ정켈

선거는 어떤 정치인들을 남길 것인가 결정하는 과정이다. 선거를 통해 어떤 정치인을 선출하느냐는 단순히 투표일의 기표 과정에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누가 국민의 대변인이 되는가는 공화정의 모든 시간에 걸쳐 결정된다. 누구에게 정치인의 꿈을 허락하는가, 누가 자원과 인력을 모아 실제로 선거를 준비할 수 있는가, 당선 가능성을 최우선 변수로 보는 각 정당의 경선 과정에서 누가 통과할 수 있는가, 누가 실패해도 패가망신하지 않고 재도전할 수 있는가가 모두 ‘누가 국민의 대변자가 되느냐’와 연결된 문제다. 당연히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이 어떤 제도하에서도 선거를 치르기 유리하지만, 선거에 대한 꿈·자원·가능성은 선거제도에 따라 달라진다.

지역구 중심의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어쨌든 1등을 해야 하는 제도다. 2등 후보는 몇 표를 얻었건 낙선한다. 이 때문에 비례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이런 제도 아래서 정당과 후보자는 ‘흠잡을 데 없는 후보’를 만드는 데만 신경 쓰게 된다. 정당은 사회적으로 인정된 고만고만한 엘리트를 공천하고, 후보들은 자신의 특수함보다는 보편성을 강조하는 선거 전략을 세운다.

지역구 선거제도 아래에서는 매번 대표되는 헤게모니 집단만 매 선거에서 반복 대표된다. 이성애 정상가족, 성 역할에 충실한 남성과 여성, 한국계 핏줄, 사회적으로 인정된 엘리트 집단 등 대한민국의 헤게모니에, 해당 지역 및 지역 명문고 출신, 가계와 성씨, 특정 교회 신자 등 지역사회의 헤게모니가 뒤섞인 정치인들이 살아남는다. 비례성이 떨어지는 지역구 선거는 누가 특정 헤게모니 집단의 승인을 받느냐의 문제로 전락하기 일쑤고, 헤게모니 밖의 유권자들은 별다른 선택지도 없는 엑스트라가 된다.

노회찬·심상정·진선미·남인순·장하나·김광진·이자스민·단병호 등 재미없는 한국 정치에 그나마 흥미로운 캐릭터를 만들어온 정치인 중 많은 이가 비례대표 출신인 건 우연이 아니다. 한국의 비례대표제는 많은 한계를 갖고 있지만 그나마 노동자·농민·여성·이주민·장애인·청년 등 다양한 유권자들을 대변하는 구실을 해왔다. 문제는 너무 수가 적고 공천 과정이 불투명하다 보니, 획일적인 한국 정치에 ‘다양성 알리바이’를 부여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의 비례성이 떨어진다’는 말은 매우 중립적이고 얌전하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득표에 비해 의석을 못 갖는 건 그 정당에선 억울하겠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어차피 국민의 삶 속에는 더 억울한 문제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지역구 중심의 선거제도가 ‘비례성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건 1인1표의 원칙을 깨고 누군가 다른 국민의 대표성을 갈취하고 있다는 뜻이다. 빼앗기는 쪽은 여성·성소수자·비정규직·빈민· 이주민 등 헤게모니 밖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어야 할 진짜 이유다.

기자명 황도윤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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