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폭스 탤벗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사진 초기의 발명가로서 다게르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진을 발명하는 데 성공한 영국 사람이다. 다게르가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아라고를 통해 사진술을 공표한 게 1839년 1월7일, 폭스 탤벗이 종이를 이용한 사진술을 공표한 게 같은 해 1월31일이었다. 다게르보다 늦은 것과 불운이 겹쳐 다게르와 같은 성가(聲價)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그가 발명한 칼로 타입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필름 사진의 원형이다. 그리스어 칼로는 아름답다는 뜻인데, 중요한 것은 네거티브 원화를 만들어 그것을 포지티브로 인화해 무한 복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후 그는 자신의 방법을 적극 활용해 1843년 인류 최초의 사진 출판사를 차리고 사진집을 만들었다.
첫 사진집은 〈자연의 연필(Pencil of nature)〉이다. 당시는 사진 인쇄 기술이 없던 시절이니 〈자연의 연필〉은 그가 스스로 찍고 현상하고 인화한 사진을 묶은 것이었다. ‘자연의 연필’이라는 이름은, 사진이 자연의 원리에 따라, 자연의 힘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라는 뜻이다. 자연이라는 말, 즉 인공적이 아니라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사진이라고 번역된 ‘포토그래피’도 빛과 그림의 합성어다. 빛을 뜻하는 그리스어 ‘포스’와 그림을 뜻하는 ‘그라포스’의 결합이다. 1833년 에르퀼 플로랑스라는 인물이 처음 썼고 영국인 허셀을 거쳐 널리 사용된 이 단어는 1850년대가 되어서야 사진을 의미하는 총칭어가 되었다. 포토그래피라는 말이 대세로 굳어지기 전에는 사진을 지칭하던 많은 용어가 있었다. 다게르의 동업자이자 선배인 니엡스는 자신의 결과물을 헬리오그래피라 불렀고, 폭스 탤벗은 사진 실험 단계에서는 포토제닉 드로잉이라 불렀다. 그 밖에도 태양의 문서, 자연 자체에 따른 그림, 자연에 의해 자연에 형상을 부여하는 방식 등등 이름이 많았다.
‘사진’이라는 단어 이전에 쓰인 말들
이 모든 이름은 인간이 손으로 그려 만들지 않았다는 것, 자연 스스로의 원리에 따라 이미지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럴 만도 하다. 자연이 이미지를 스스로 비추고 그것을 정착시키는 것도 자연에 있는 원리를 찾아낸 것이니까. 그리고 그 이후 사진은 누군가의 말처럼 피사체인 물질을 인간의 눈이 아닌 렌즈라는 물질로 들여다보기 때문에 객관성이 있다고 여겨져왔다. 객관성, 과학성, 중성적 성격 등의 사진을 둘러싼 오랜 전설은 이러한 점들이 근간이 된다. 재미있게도 사진기를 만들고 움직이고 찍고 고르고 하는 인간의 노력과 시야는 의도적으로 배제해버린 것이다.
탤벗의 사진 출판사는 1847년 문을 닫는다. 사진을 직접 인화해 만드는 책은 공정이 너무 복잡했고 사진의 보존성이 부족한 데다 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물론 핵심적 문제는 책이 아니라 이름이다. 포토그래피라는 말은 중성적이지만, 진실을 기록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진이라는 번역어는 아무래도 다른 말로 대체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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