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 직업체험 강사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잡월드에서 지시를 받으며 일하지만, 한국잡월드 직원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직업과 노동을 가르쳐주는 강사 275명은 모두 협력업체(도급) 직원이다. 한국잡월드에 ‘간접적으로 고용되어 있는’ 이들이다. 이들은 매년 12월이면 업체가 재계약이 되지 않을까 불안감에 시달린다. 표백된 세계에서 꿈꾸며 자라난 아이들이 세상에 나와 겪게 될 낙차가 두렵다. 그에게 ‘정규직 전환’이란 아이들에게 비정규직의 슬픔을 가르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고, 자회사란 간접고용의 또 다른 이름이다.

P는 한국도로공사 영업소의 요금 수납원이다. 1·2심 법원은 하청업체가 아닌 한국도로공사가 진짜 사장이니 수납원들을 직접고용하라고 판결했다. 불법파견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소송이 대법원에 걸려 있는 사이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이 발표되자, 공사는 노동자 대표와 자회사 방안을 합의해버렸다.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에 동의하지 않으면, 기간제 청소원으로 일하거나 그만두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정규직 전환이란 불법파견에 따른 직접고용 의무를 회피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P에게 정규직 전환이란 ‘없느니만 못한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그림 윤현지

A는 울산항만공사의 특수경비 노동자였다.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며 직접고용을 요구했다. 청와대 앞에서 농성하고 귀향하던 그는 기차 안에서 급성 심정지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직접고용 전환이 되면 나는 나이가 60이어서 (정년퇴직으로) 오히려 회사를 그만두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도 누구보다 직접고용을 위해 열심히 싸우던 그였다. “후손들 시대에는 비정규직이 없어야 한다”라고 했던 아버지의 말을 아들은 회고했다.

자유한국당은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이 고용 세습 통로라고 주장한다. 응분의 대가를 치르지 않은 불공정의 표상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K도, P도, A도 친인척 비리와 관련이 없다. 그들은 엄청난 걸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 소속 업체명만 바꿔가며 일해온 일터에서 어제도 일했고, 오늘도 일하고, 내일도 일할 그들은 ‘상시·지속 업무 직접고용’ ‘중간착취 근절’을 이야기하고 있다.

1998년 파견법 이후 일반적인 고용 형태로 자리 잡은 간접고용

1953년 이승만 정부 때 제정된 근로기준법과 1962년 박정희 정부 시기 제정된 직업안정법은 중간착취를 금지했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까지 일자리를 미끼로 돈을 챙기는 중간착취가 널리 퍼져서였다.

그런데 엄격히 금지된 중간착취가 IMF 위기 직후인 1998년 합법화되었다. 노사정 합의로 정리해고와 함께 파견법(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다. 파견이란 일을 시키는 사람과 고용하는 사람이 다른 간접고용의 한 형태다. 일부 업종에만 최장 2년간 제한적으로 허용되었지만, 그 후 간접고용은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고용 형태로 자리 잡았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은 바로 이런 간접고용에 대한 문제의식의 결과이기도 하다.

애초에 ‘정규직’은 좁은 길이었을까. 좁은 길로 만든 것은 누구이며, 그로 인해 응분의 대가를 치르지 않은 이들은 누구인가. 우리 사회의 기준을 바꾸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에게 ‘정규직 전환’이란 그 물음을 더듬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정년을 앞두고 농성을 하던 노동자,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살아온 그 노동자에게 정규직 전환은 무엇이었을까.

기자명 우지연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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