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각형 모양에 새파랗기만 한 표지. 매혹적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보인다. 제목도, 저자 이름도. 책을 집어 들어 각도를 달리 해보고 빛에 비추고 해야 정체가 간신히 드러난다. 〈귀신 안녕〉은 아마도 정체불명의 존재,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귀신을 표상하는 방식으로 고안한 디자인이겠지만, 꼭 이렇게 했어야 했을까 불편한 기분이 든다. 그러면서도 어떤 이끌림을 떨치지 못해 책을 들여다본다. 그러다 깨닫는다.

아, 우리가 귀신을 대하는 마음이 이렇지. 불편한 기분(정도가 아니라 공포)에 죄이면서도 떨치지 못하는 매혹에 낚이는 마음. 그래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공포영화를 보고, 호러 소설을 탁 덮어버렸다가도 다시 펼치고, 무서운 이야기 해달라고 선생님을 조르는 거겠지. 나부터도 어린 시절 가장 강력했던 기억 중의 하나가 드라큘라나 흡혈박쥐에 대한 글을 굳이 찾아 읽고, 누구누구의 한이라든가 어디어디의 공동묘지 같은 영화를 찾아보고는 몇 날 밤을 공포에 떨던 일이다.

이 책의 유일한 등장인물인 어린 여자아이가, 그러고 보니 남 같지 않다. 아이는 깜깜한 밤이 오면 꼼짝도 할 수 없다. 화장실도 못 가겠고 마실 물을 가지러 가지도 못하겠다. 매일 밤 너무너무 힘들다. 이 아이는 나보다 더 용감하다. 이불을 차 던지며 일어서는 것이다.

잠깐! 그런데 나는 왜 귀신이 무섭지? 게다가 이 아이는 정말 지혜롭다. 뾰족하고 기다란 손톱? 아이는 귀신의 손톱을 깎아준다. 풀어헤친 머리? 귀신의 머리를 빗어 양 갈래로 묶어준다. 앙증맞은 분홍색 방울이 달린 자신의 머리끈으로. 그런 뒤 과감하게 귀신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어? 아이와 똑같은 얼굴이다! 아이는 귀신을 상대로 귀신 놀이를 한다. 자기 머리를 풀어헤치고는 ‘내가 진짜 귀신이다~~~’ 하며 귀신에게 달려든다. (아이를 공포에 시달리게 하는) 제 임무가 끝난 셈이니 이제 귀신은 할 일이 없다. 사라져버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파랗기만 한 바탕에 얼굴과 옷은 하얗고 머리카락은 까만 두 아이 외에 이 그림에는 아무 배경도 장식도 없다. 두려움이란 그토록 간결하게 본질적인 것이라는 뜻일까. 부모도, 형제자매도, 반려동물도, 심지어 ‘애착 인형’도 곁에 둘 수 없이 오롯이 혼자 대면해야 하는 실존의 조건이라는 뜻일까. 네가 무서워하던 귀신은 사실 대면하고 싶지 않았던 너 자신의 일부분일 수 있으니, 똑바로 보고 함께 놀아주어야 한다는 말일까.

그러고 보면 공포물에 집착하던 어린 시절이나 성인기의 한 시절은, 성장통을 겪거나 아주 힘겨운 고비를 넘어가던 때였던 것 같다. 풀어헤쳐 드리워진 머리 때문에 앞이 안 보이고, 뾰족하게 기른 손톱은 나 자신을 찔러 아프게 했을 것이다. 그럴 때 찾았던 무서운 이야기나 영화는 아마도 그 시기를 똑바로 보면서 넘길 힘을 기르기 위한 귀신과의 놀이였을지도 모른다. 이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그림 속에서 무구한 얼굴로 귀신과 노는 여자아이를 보고 있으니 깊이 위로받는 느낌이다. 공포는 나를 단련시킨 큰 힘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기자명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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