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을 만난 시각,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했다. 남북 정상회담특집 방송 준비로 누구보다 바쁘리라 예상했던 손 사장은 의외로 평온했다.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과 6월 북·미 정상회담 당시 각각 임진각, 싱가포르를 찾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2018 〈시사IN〉 신뢰도 조사’에서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으로 꼽힌 손석희 사장(35.5%)을 9월18일 만났다. 그가 진행하는 JTBC 〈뉴스룸〉은 지난해에 이어 ‘가장 신뢰하는 프로그램’ 1위를 차지했다. ‘가장 신뢰하는 방송 매체’와 ‘가장 신뢰하는 언론 매체’ 역시 JTBC였다. 인터뷰는 서울 상암동 JTBC 사옥에서 진행했다.

ⓒ시사IN 윤무영손석희 사장은 최근 1년 동안 가장 인상적인 보도로 ‘서지현 검사 인터뷰’를 꼽았다.

신뢰도 조사가 시작된 2007년부터 줄곧 1위다.

매우 감사한 일이다. 감회가 또 새롭다. 우리 사회가 굉장히 역동적이지 않나. 매년 사회 분위기가 바뀌는데 그런 와중에서도 택해주시는 거니까 새롭다. 뻔한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게다가 저희 채널에 대해서도 좋은 결과가 나왔다. 더할 나위 없이 감사드릴 일이다.

격차가 크긴 하지만 2위는 방송인 김어준씨(3%)이다.

훌륭하게 자기 역할을 하는 분이다. 개인적으로 잘 안다.

JTBC의 영향력이 커진 데에 손 사장이 큰 역할을 한 것 같은데?

그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건 〈뉴스룸〉도, 다른 부문의 프로그램들도 짧은 시간이지만 매우 고르게 나름대로 내공을 쌓고 탄탄하게 다지며 지금에 왔다는 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된 건 아니다. 예를 들면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 이후 JTBC가 많은 인정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 건이 갑자기 터진 것은 아니다. 그전에 쌓아왔던 것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채널 자체가 사람들한테 인정받고 있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솔직한 생각으로 나는 JTBC가 변화해가는 그 많은 변인 중에서 ‘N분의 1’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이번 조사에서 극우 논객 정규재씨(0.7%)도 처음 등장했다.

한 번도 (방송을) 본 적이 없어서 감상을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런 수요는 어느 사회든 있는 것 같다. 다만 거기서 가짜 뉴스가 많이 나온다든가 하는 것은 여론을 왜곡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가짜 뉴스에 대해 우리만큼 관대한 사회가 없는 것 같다.

올해 초 ‘미투 운동’ 국면의 중심에 있었다. ‘앵커 브리핑’ 코너를 통해 말하긴 했지만 ‘안희정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이상은 얘기를 안 하도록 하겠다.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 것은 맞다. 고민거리를 던져준 것도 맞고.

김지은씨가 처음 얼굴을 드러낸 곳이 〈뉴스룸〉이다. 서지현 검사와 엄지영 배우도 직접 인터뷰했다. 미투 운동의 확산에 기여했지만, 선정적 보도라는 비판도 있었다.

다각도의 비평이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렇다고 언론이 주눅 들면 그것도 좀 문제가 있는 것 같고, 저희들도 비평을 받아들이고 고민한다. 미투 운동이 금년 들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긴 하다. 젠더 문제이기 때문에 굉장히 오랜 역사를 가진, 논쟁적인 부분들이 있지 않나. 그 한가운데 있는 것이 굉장히 쉽지 않았다. 그 정도로만 얘기를 하겠다. 지금도 그 문제로 공격을 받고 있기도 하고, 그게 저희의 역할이었다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최근 1년 동안 가장 인상적인 보도는 무엇이었나? 당시의 기억을 들려달라.

서지현 검사다. (미투 운동의) 시작이었으니까. 오랜 기간 기획해서 보도했던 게 아니라 서지현 검사가 온 것이었다. 서 검사는 처음에 굉장히 긴장해서 시작을 했는데 마칠 때쯤 되어서는 뭐랄까, 자기 자신을 회복해가는 과정이 짧은 뉴스 속에서 느껴졌다. 20분이 안 되는 인터뷰인데 그게 눈에 보였다. 본인이 자신을 회복해가는 과정. 그건 대부분의 미투 운동 관련 인터뷰이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미투 운동을 다루면서 스스로도 세상이 달라졌다고 느꼈을 것 같다.

내가 느끼기 이전에,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많이 배웠다.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그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객관화되는 과정을 보는 거잖나. 그래서 함께 느끼고 배우게 되었다.

첫 남북 정상회담 특집 방송은 임진각에서 진행하고 북·미 정상회담 때는 싱가포르에 직접 갔다. 이번에는 특별 스튜디오를 따로 만들지 않았는데?

4월27일 첫 회담이나 6월12일 북·미 정상회담이 이벤트 성격이 있었다면 이번엔 ‘차분하게 보자’ 싶었다. 청와대도 실무적이고 실제적인 회담을 바란다고 하니까 더 할 필요가 없다. 역사적 이벤트였다면 우리도 이벤트로 소화해야 하지만 이제부터의 남북 회담과 북·미 회담은 매우 차분하게, 실질적인 관점에서 보자는 거다.

ⓒJtbc 뉴스룸 화면 갈무리손석희 앵커는 ‘노회찬 의원(오른쪽)의 생애 마지막 텔레비전 인터뷰’를 했다.

〈뉴스룸〉은 유난히 생방송을 강조하는 것 같다.

〈뉴스룸〉 이전에 진행했던 〈뉴스 9〉도 그랬다. 계속 추구해왔던 게 라이브(생방송)다. 기자들이 거기에 적응하도록 했고 그러다 보니 다소 덜컹거리기도 했다. 라이브를 하게 되면 취재를 굉장히 많이 해야 한다. 내 질문도 ‘라이브성’이 있어서 준비를 많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본적인 목적은 시청자들한테 정보를 많이 제공한다는 데 있다. 기자들로서는 자기 재량권이 많이 들어갈 수 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데스킹할 순 없는 거니까. 기자 스스로 책임감도 생기고 취재량도 늘어나고 시청자들한테는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또 하루 종일 인터넷에서 뉴스가 나온다. 요즘에는 방송 뉴스끼리 경쟁하는 게 아니라 인터넷·SNS와 경쟁한다. 방송 뉴스가 거기서 가질 수 있는 차별점은 라이브다. 같은 얘기를 하더라도 가능하면 그렇게 하자는 거다. 다 끝난 현장이라도 가면 뭐가 나올 수 있다. 대개 특종은 남들이 다 떠난 자리에서 나온다.

레거시 미디어(전통적인 미디어)의 영향력이 줄어가고 있는데 1위의 자리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제일 큰 고민은 레거시 미디어의 철학을 디지털에서 어떻게 구현하는가이다. 디지털의 형식은 많이 다르다. 짧고 파편화되어 있다. 그런데 소위 저널리즘이라는 건 안 바뀐다. 바뀔 수도 있지만, 가령 누군가 디지털만의 저널리즘을 만들어낸다면 그것도 수용해야 하지만 저널리즘의 본질은 안 바뀐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직 안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내가 ‘꼰대’인지 생각해본다. 이것이 나의 고민 지점이다. 나는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잘못된 생각일까, 철지난 생각일까 늘 고민한다. 분명한 건 아직 안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훗날, 상당 부분 바뀔 수 있는 것이냐에 대해선 나도 예측하기 어렵다. 모르겠다.

그 고민들이 〈뉴스룸〉에도 반영되는 건가?

〈뉴스룸〉은 어떻게 보면 본의 아니게 혹은 본의로 디지털에 적합한 코너가 있다. 레거시 미디어지만 특화된 코너들(앵커 브리핑, 팩트 체크, 비하인드 뉴스 등)이 있기 때문에 유튜브든 어디든 따로 떼어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건 아닌데 잘 활용되더라. 포맷 자체가 레거시 미디어의 방법을 따르지만 동시에 디지털로 전환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 것들이 SNS에서, 유튜브 상에서 잘 활용되고 있는 것 같다.

JTBC가 얼마 전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방송사로서는 처음으로 주 52시간 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준비는 했지만 실전은 또 다르다. 현재 주말 팀과 주중 팀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인력이 부족하다. 경력 기자도 충원했고 〈중앙일보〉 쪽에서 14명이 왔다. 〈중앙일보〉에 굉장히 미안하다. 거기라고 사람이 남는 게 아닌데 당장 급하니까 그렇게 됐다. 〈중앙일보〉는 평일과 주말 체제가 확실하다. 훨씬 전부터 주 5일 근무가 확립되어 있었다. 우린 갑자기 주 52시간 근무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 되니 급했고, 그래서 가능하면 방송을 경험했던 〈중앙일보〉 기자들의 충원을 받았다. 타격이 있었을 거고 두 조직 간에도 아픔이 있었다. 지금도 완벽하게 지켜지지 않고 대휴(대체휴가)가 쌓이고 있다. 기자직이라는 게 그렇잖나. 오후 5시까지만 ‘뻗치기’할 테니 이후엔 다른 사람이 오라고 할 수는 없는 거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기자직에 불리한 제도이긴 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지키겠다. 기자들한테 말한다. ‘나는 휴일 없이 지낸 적도 3년 정도 있었고 주 6일 근무를 30년 한 사람이다. 야근한 날도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 때 퇴근했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꼰대다. 반전은, 그래서 내가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이다. 혼자서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가족들과 대화도 잘 못하고. 그러니까 그건 올바른 게 아니다. 꼭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켜주고 싶다. 그런데 기자들 처지에선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현재 회사에서 얘기하는 재량근무제를 노조는 받지 않고 있다. 내 입장이 곤란할 때가 많다. 임원이긴 한데 솔직히 말하면 마인드는 그렇지 못하고. 양쪽이 빨리 타협했으면 좋겠다.

JTBC가 방송에서의 외연은 확장하고 있지만 계열사인 JTBC PLUS에서는 최근 8개 잡지 중 4개를 일방적으로 폐간시켰다.

(JTBC PLUS) 대표도 잘 아는데 그 양반도 결국 자리를 물러나긴 했다. 그만큼 아픔이 있었다는 얘기다. 저하고 업무적으로 연관이 없지만 가끔씩 보던 사람들인데 눈에 선하다. 남아 있는 사람으로서는 가슴이 아프다.

최근 김민기씨 인터뷰를 할 때 떨린다고 했는데 의외였다. 아직도 만나고 싶거나 인터뷰하고 싶은 대상이 있나?

당연히 있다. 누구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오해받을 수 있어서. 김민기씨의 경우 워낙 예전부터 가려진 인물이었다. 내가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를 떠나, 그날도 표현했지만 어떤 큰 강물의 발원지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떨림이라기보다는 묘한 긴장감 같은 게 있었다.

방송 외의 공식석상에서 거의 본 적이 없다. 노회찬 의원 빈소에 들렀던 게 생각난다.

생각해보면 노회찬 의원의 첫 텔레비전 토론을 같이 했다. 2002년인가 정당정책 토론을 할 때 처음 나왔다. (내가) JTBC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이 (방송에) 잘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2013년에 왔는데 2014년 1월2일 신년 토론을 했다. 첫 토론에 노회찬 의원, 유시민 작가가 나왔다. 생애 마지막 텔레비전 인터뷰도 나와 했다. 그때 공교롭게도 특활비 얘기를 했다. 내가 했던 첫 ‘끝장 토론’에도 나왔다. 모든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한 것이다. 직접 섭외하기도 했고 (내가) 학교에 있을 때는 특강도 몇 번 왔다. 정치인 빈소는 되도록 안 가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JTBC에 온 지 5년이 넘었다.

생각보다 꽤 오래 있었다. ‘오래 있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언제가 끝일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지만 지나놓고 보니 생각보다 참 오래 있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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