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6학년 남자아이들의 뇌를 그려보면 90% 이상은 성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비슷한 어감의 단어만 나와도 얼굴 붉히고 킥킥대느라 정신이 없다. 가령, ‘석수고등학교에서 농구 시합이 있다’ ‘그것 참 기발한 아이디어구나’ ‘아, 김용기 학생 있나요’ 이 세 문장을 듣고 특별히 연상되는 게 있으신지. 아이들은 뒤집어진다. 곧바로 섹스고등학교, 발기하다, 앙기모띠(일본 야동에 나오는 ‘기분 좋아’ 쯤의 감탄사)를 떠올린다.

초등 5학년 정도면 야동 안 본 남자아이가 드물 것이다. 지금 학부모들이 어릴 때에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 시절에는 날 잡아 어른 없는 집에 모여서 하던 ‘은밀한 짓’을 지금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손바닥에서 혼자 편히 늘 접할 수 있다는 게 큰 차이다. 불법 야동뿐 아니다. 포털사이트를 열어 한 번만 화면을 옮겨도 눈뜨고 보기 민망한 사진이며 영상, 광고 문구가 넘실댄다. 과장·왜곡·반복되는 포르노적 정보이다.

ⓒ박해성 그림

다행히 성교육도 예전보다는 늘었다.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에서부터 꼬박꼬박 성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강당에 수백명을 모아놓고 화면으로 단순한 성 지식을 전달하는 식으로 때우고 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이들은 수업 환경이나 강사의 수준, 분위기 등에 따라 같은 정보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 온갖 자극에 입체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을 지나치게 단순하게만 가르치는 건 아닐까. 이는 점잖은 게 아니라 무책임하고 게으른 것일 수 있다. 

초등 6학년 남자아이가 “엄마, 남자도 생리해?”라고 물었단다. 대학생인 남자친구는 생리 때문에 여행 날짜를 바꾸자는 여자친구에게 “하루 이틀도 못 참느냐”고 원망했다 하고. 자기는 친구들보다 음경 크기가 작아 장가가기 틀렸다고 통곡한 아이, 이상한 고리 같은 것을 음경에 끼워 염증이 생긴 아이도 있다.

성교육 제대로 하자. 고추, 거시기, 똘똘이, 잠지, 속옷 안, 소중한 곳 따위의 애매한 표현은 사절이다. 여자는 음순, 남자는 음경이라고 정확한 단어를 쓰게 하는 게 필요하다. 자기 몸과 상대의 몸을 바르게 알고 부르며 차이를 존중하는 것이 성교육의 첫걸음이다. 여기서 성적 자기결정권도 발전한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더욱 젠더 감수성이 중요하다

초등 고학년이라면 축구하다 발기가 되어 어쩔 줄 몰라 하는 친구에게 시원한 물 한잔 정도 떠다 줄 줄 알고, 생리 혈이 옷에 묻어 난처해하는 짝에게 자기 점퍼 정도는 빌려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자라야 안목도 생기고 짝도 찾는다. 원만한 관계, 원만한 성생활도 할 수 있다. 제아무리 전교 1등 만점왕인들, 또래 사이에서 원만한 연애 생활을 하지 못하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닌”(초등 5학년 여자아이의 일기) 것이다.

어느 시대에도 편견이나 차별, 혐오 발언이 용인되어서는 안 되지만,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더욱 젠더 감수성이 중요하다. 과거와는 다른 기본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는 ‘Yes is Yes’이다. 윗세대는 ‘No is No’, 거절하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만 배웠다. 이제는 명백한 동의가 있어야만 할 수 있다고 인이 박여야 한다. 둘째는 피해 예방 교육 못지않은 가해 예방 교육이다. 승강기에 낯선 사람이 있으면 타지 말라고만 가르칠 게 아니라, 어린이나 여학생이 혼자 타고 있으면 되도록 다음번에 타라고 가르치자.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걷게 되면 누구랑 통화하는 척이라도 하는 게 좋다고 알려주자. 그래야 앞에 혼자 가는 사람이 안 놀란다.

참, 아무리 예쁜 제 자식이라도 쓰다듬기 전에 꼭 물어보는 게 일상의 성교육이다. Yes is Yes.

기자명 김소희 (학부모∙칼럼리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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