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에 나타나지 않았다.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두환씨가 8월27일 열린 첫 공판에 불출석했다. 8월23일까지만 해도 변호인을 통해 출석 의사를 밝혔는데 재판 전날 번복했다. 부인 이순자씨는 변호인을 통해 발표한 입장문에서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이후 지금까지 의료진이 처방한 약을 복용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미 두 차례 미룬 공판이었다. 지난 두 번은 변호인이 “증거자료가 방대해 검토를 다 마치지 못했다”라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8월27일에는 피고인 측에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지도, 재판부가 불출석을 허락하지도 않았다. 형사재판 첫 공판은 간단한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피고인이 재판을 계속 받을 수 있을지 재판부가 판단한다. 알츠하이머 투병이 사실이라 해도 이 자리에 참석해 진단서를 제출하고, 재판부에 양해를 구해야 한다. 절차를 무시한 채 단순히 입장문만 발표한다고 해서 미룰 수 있는 공판이 아니었다.

ⓒ연합뉴스2016년 4월13일 전두환씨가 제20대 총선 투표를 하기 위해 서울 연희동 투표소에 나타났다.
전두환씨가 다시 형사재판에 불려나온 건 회고록 때문이다. 2017년 4월3일 전씨는 〈전두환 회고록〉을 출간했다. 펴낸 곳은 ‘자작나무숲’. 아들인 전재국씨가 소유했던(현재는 매각) 출판사 ‘시공사’의 임프린트(산하 브랜드)다. 총 3권 가운데 1979년 12·12 사태부터 1980년 대통령 취임까지를 다룬 1권에서, 전씨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라 부르며 헬기 사격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헬기 사격을 증언한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했다. 마찬가지로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아널드 피터슨 목사에 대해서는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비난했다.

5·18 기념재단과 5·18 민주화운동 3단체(민주유공자유족회·민주화운동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 등 ‘5월 단체’는 즉각 반박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2017년 4월27일, 조비오 신부의 조카인 조영대 신부와 ‘5월 단체’는 전씨가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검찰에 고소했다. 광주지방검찰청은 지난 5월3일 전두환씨를 불구속 기소하며 “헬기 사격 목격자 진술,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주한 미국 대사관 비밀전문 등 객관적 자료를 통해 헬기 사격 사실을 확인했다. 헬기 사격에 부합하는 자료가 다수 존재하였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고 조비오 신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라고 발표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 헬기 사격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계엄군이 우발적으로 불가피하게 광주 시민을 진압한 것이 아니라, 신군부의 엄밀한 사전계획에 따라 잔혹한 방식으로 강제 진압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헬기 사격을 봤다는 목격자 진술 외에도 최근 핵심 증거가 하나둘 발견되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증거는 옛 전남도청 앞 전일빌딩 총탄 흔적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017년 4월, 전일빌딩 10층 총탄 흔적의 각도를 분석한 결과 당시 헬기에서 사격했을 가능성이 유력하다고 발표했다. 1980년 당시 주변에 전일빌딩보다 높은 건물이 없었음에도 10층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부챗살 모양으로 사격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연합뉴스2017년 3월20일 전일빌딩 총탄 흔적을 살펴보는 당시 문재인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지난 2월7일에는 국방부가 꾸린 ‘5·18 민주화운동 헬기 사격 및 전투기 출격대기 관련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도 5·18 당시 군 헬기의 사격을 공식 인정했다. 특조위 발표에 따르면 당시 광주에 출동한 헬기 40여 대 가운데 일부 헬기가 1980년 5월21일과 5월27일 시민을 향해 사격했으며, 계엄사령부가 문서 또는 구두로 수차례 헬기 사격을 지시했다. 군도 인정하는 사실을 전두환씨가 부인한 셈이다.

회고록에서 전씨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자신은 아무런 책임이 없으며 “씻김굿의 제물”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5월 단체들은 헬기 사격 외에도 〈전두환 회고록〉에 담긴 내용 가운데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반란이자 폭동이라거나, 자신이 5·18 발단부터 종결까지 전혀 관여하지 않았으며, 1980년 5월21일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직전 시위대 장갑차에 계엄군이 치여 사망했다는 내용,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에게 발포하지 않았다는 주장 등이 허위 사실이라고 지목했다.

전씨 측근 “회고록 내가 쓴 책” 주장하지만

민사소송도 병행 중이다. 5월 단체는 2017년 6월, 〈전두환 회고록〉 손해배상 및 출판금지 소송과 함께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은 2017년 8월4일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하지만 출판사는 법원이 삭제 명령한 부분을 검은 음영으로 가린 뒤 재출간했다. 재출간본에 대해서도 법원은 지난 5월 출판·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현재 〈전두환 회고록〉 1권은 서점가에서 모두 회수된 상태다. 본안 소송인 손해배상·출판금지 소송은 현재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형사재판 불출석으로 논란이 일자, 전두환씨 측에서 새로운 주장을 내세웠다. 전씨의 측극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이 공개적으로 “〈전두환 회고록〉은 내가 쓴 책”이라고 주장해 파장이 일었다. 민 전 비서관은 8월28일 언론 인터뷰에서 “초고 이후로는 내가 전적으로 맡아서 책임지고 원고를 완성했다. (조비오 신부에 대한) 표현 자체는 내가 쓴 거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민 전 비서관의 이런 증언에 대해 5월 단체는 ‘재판을 미루기 위한 물타기’라고 반박한다. 이번 민·형사 고소 법률대리를 맡은 김정호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장)는 민 전 비서관의 주장이 이미 민사소송에서 제기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손해배상·출판금지 재판에서 피고 측(전두환 측) 변호인이 민정기씨를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우리는 민정기씨한테 따로 고소를 진행할 생각이 없다. 이미 재판부나 검찰이 받아들이지 않은 주장이다. 정치적으로 계산된 행동이라고 본다. (아무리 대필을 하더라도) 저자의 의사를 구술받아서 쓰는 게 회고록이다”라고 말했다. 이름을 걸고 책을 낸, 스스로 ‘저자’라고 밝힌 전두환씨는 책임을 비켜날 수 없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 투병도 논란이 되고 있다. 전두환씨는 2013년부터 알츠하이머 투병을 했다고 주장하는데, 2016년 총선이나 2017년 대선 투표장에서 ‘건강한’ 모습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또 2016년 6월, 〈신동아〉와 한 인터뷰에서도 전두환씨는 10·26 직후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수사한 일에 대해 “우리 젊은 장군들이 볼 때 (정승화가) 김재규를 앞세워 정권을 잡으려 했기 때문에 잡아넣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두환씨 다음 공판은 10월1일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소환장을 보냈고, 다음 공판에도 불참할 경우 법정 구속까지도 감수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현재까지 환수가 완료된 전두환씨 추징금은 총 2205억원 가운데 1150여억원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검찰은 〈전두환 회고록〉을 발간한 출판사에 대해 전씨가 가지는 인세 채권에 대해 법원에 압류 및 추심명령을 신청해 인용받았다. 검찰은 시공사로부터 3억5000만원을 추징한 바 있다. 전씨에 대한 법 집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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