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앞에 선 한승태 작가(36·필명)가 환히 웃었다. 어색할 때 잘 웃는다는 그가 입을 벌릴 때마다 고른 치아가 드러났다. 이어진 인터뷰에서도 자주 치아가 보이는 걸 보면 습관 같기도 했다. 그의 책에서 마주한 사육 농장의 현실이 떠올랐다. 도망치고 싶은 극한상황에서도 피식 웃음을 주는 문체와 닮았다. 그는 지난 4년간 아홉 군데 농장에서 일했다. 닭·돼지·개 등 ‘식용 고기’를 ‘기르는’ 곳이었다.

한승태 작가는 대학을 졸업한 후 꽃게잡이 배, 자동차 부품 공장, 주유소 등 전국 각지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2013년 첫 책 〈인간의 조건〉을 냈다. 젊은 작가의 위트 넘치는 ‘워킹푸어 잔혹사’로 주목을 끌었지만 그의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개인적인 일까지 잘 안 풀리면서 서울을 떠나고 싶었다. 돈도 벌고 글로 쓸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몇 년 새 직업소개소 풍경도 달라져 있었다. 과거에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사랑방 느낌이 날 정도로 북적였는데 이번에는 사장 혼자였다. 일거리도 줄었다. 강원도의 옥수수 농장과 충남 금산의 양계장 중 골라야 했다. 후자를 택했다. 덜 지루할 것 같아서다.

ⓒ시사IN 조남진
애초 닭, 돼지, 소, 개, 물고기 사육 농장을 가보자고 생각했지만 닭과 돼지를 기르는 농장만 해도 종류가 여럿이었다. 돼지는 생후 3개월 이하의 돼지를 키우는 자돈 농장과 돼지를 키워 도축장으로 보내는 비육 농장 등으로 나뉘었고, 닭은 알을 낳는 산란계 농장, 병아리로 부화시키는 부화장, 닭고기를 생산하는 육계 농장으로 세분화되었다. 닭, 돼지, 개로 범위가 좁아졌다.

처음에 간 양계장에서 그는 ‘산 채로 썩어간다는 말’을 이해했다. 가로·세로 50㎝, 높이 30㎝ 닭장 안에 닭 네 마리가 들어갔다. 살집을 구기고 날개를 찌그러뜨려야 들어갈 수 있는 크기다. 깃털이 거의 없었고 우둘투둘한 피부가 드러났다. 말로 들으면 동정심이 일었을 테지만 눈앞에 있었기 때문에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것 말고는 다른 태도를 취할 수 없었다’.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닭이 무서워서 그만두고 싶었다. 종란(부화를 위한 알)을 낳는 닭에 대한 대우는 달랐다. 케이지당 한 마리였다.

일하는 한편으로 농장의 이야기를 매일 꼼꼼히 기록했다. 함께 일하는 ‘아저씨’들은 그가 다른 데 취직하기 위해 시험공부를 하는 줄 알았다.  젊은 한국 사람이 드물어서 눈길이 가긴 했지만 대체로 타인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지난 4년간의 기록이 담긴 〈고기로 태어나서〉에서 그는 ‘육즙이 흐르는 삼겹살 한 점을 집어 들었을 때 당신(독자)과 고기 사이에 어떠한 환상도 남아 있지 않게’ 하기 위해 책을 썼다고 포부를 밝혔다. 식용 동물의 처지에 대해 무작정 동정하지 않는다. 동물을 함부로 다루는 인간을 무턱대고 비판하지도 않는다. ‘공범자’의 심정으로 썼다. 지금의 구조 안에서 누구도 악마가 아니라는 점이 위안을 주지만 그래서 바뀌기 어렵다는 갑갑한 깨달음도 동시에 준다.

고기가 될 운명의 동물들은 모두 ‘이른 죽음’을 향해 간다. 고기가 되기 전에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산란계 농장에서 알을 낳지 못하는 수평아리는 쓸모가 없어 산 채로 마대 자루에 던져졌다. 컨베이어벨트에 올라온 병아리 가운데 수평아리를 골라 자루에 담고 ‘발로 눌러’ 꼭대기까지 채웠다. 피가 흘러나오는 자루에선 여전히 삐악 소리가 났다. ‘컨베이어벨트에는 어떤 감정이건 그것이 얼마나 강렬했건 순식간에 무뎌지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도 동물의 감촉을 느끼며 조심조심 다뤘지만 금세 무감각해졌다. 하루도 채 안 걸렸다. “그게 충격적이고 끔찍하다고 하는데 글을 쓸 때 그런 느낌이 없었다. 농장의 일상이기도 했고 스스로 무뎌졌다.”

ⓒ한승태 제공한승태 작가는 1년3개월 동안 사육 농장에서 일하며 현장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다(위).
하자가 생긴 ‘불량품’을 일찌감치 제거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특별한 이상이 없어도 몸무게 느는 속도가 느리면 제거 대상이다. 사료 값을 아끼기 위해서다. 관리자들의 걱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료비였다. 하루 이틀 차이도 컸다. 닭 농장에서 그는 키우는 게 아니라 죽이는 일을 했다. 일 자체가 힘든 데다 스트레스가 커서 도태된 생명을 제거하는 ‘불편함’도 무뎌졌다. 살아 있는 동물도 형편이 나은 건 아니었다. 새끼 낳는 돼지는 폭이 어른 팔 길이 정도인 스톨에 갇혀 먹고 출산하는 게 생의 전부였다. 식용 돼지는 고기 맛을 좋게 한다는 이유로 거세를 당했다.

개 농장에서 보낸 한 철

작가는 특히 개 농장에서 죄책감을 많이 느꼈다. 닭과 돼지는 그에게 언제나 ‘고기’였지만 개는 음식으로 대한 적이 없었다. 개를 키운 적은 없지만 그 차이가 컸다. 사장은 처음부터 개에게 정을 주지 말라고 말했다. 충고를 무시하고 개와 놀아주거나 소시지를 챙겨 주었지만 애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개는 세 동물 중 가장 냄새가 심했다. 옥수수 가루를 먹고 사는 닭이나 돼지와 달리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서라고 짐작했다. 짖는 소리도 견디기 힘들었다. ‘공기로 얻어맞는 기분이 드는 게, 장풍이 이런가 싶었다.’ 어느 날 소리에 질려 막대기로 케이지를 후려쳤다.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 순간이 달콤했고 횟수가 반복되었다. 그 경험이 강렬했다. “내 컨트롤 아래 있는 존재, 철저한 약자를 내가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발견했다.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개와 나 사이에 케이지가 있어서 내리쳤지만 심정적으로는 개를 때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개 농장에서는 구더기가 떼 지어 움직이는 음식물 쓰레기를 갈아 개에게 먹였다. 사장은 미생물을 넣는다며 발효식품이라 우겼다. 호텔, 학교, 음식점 등에서 실어온 쓰레기의 이물질은 그가 제거해야 했다. 스타벅스의 녹색 빨대가 야채 줄기 사이에, 맥주 병뚜껑이 순대 사이에 감춰져 있었다. 닭과 돼지와의 차이는 또 있었다. 두 동물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도살당했지만 개는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변을 당했다.

그가 가장 오래 일한 곳이 병아리 부화장이다. 직원 복지가 좋았고 사람들과 정이 들어 6개월가량 머물렀다. 당일 바로 그만둔 적도 있었다. 경기도 남양주의 작은 돼지 농장에 갔을 때다. 숙소 상태가 열악했다. 돈사 옆이라 냄새도 심해 투덜거렸다. 그걸 들은 주인이 타이(태국)나 중국 사람을 기대했다면서 ‘젊은 한국 사람’이 와서 놀랐다고 했다. 원하는 수준에 맞추기 어렵다며 돌려보냈다. 농장 사진을 찍다 걸려 그 자리에서 잘리거나 사장에게 멱살이 잡혀 쫓겨난 적도 있다. 실제로 일한 기간을 다 합치면 1년3개월이다.

사육 농장에서 만난 여러 나라 사람들

그가 농장에서 만난 사람을 묘사한 대목도 흥미롭다. 타이, 베트남, 캄보디아, 이집트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났다. 횡성 비육 농장에서 만난 조선족 아저씨에게는 각별한 마음이 들었다. 쉬는 날 서울에 다녀온다고 할 때 길에서 돈 낭비하지 말라며 직접 만든 꽃빵을 싸주기도 했던 아저씨는 그가 일을 잘 못해도 군말 없이 나머지 일을 했다. 어느 여름, 한창 일이 힘들 때 그가 일을 그만두었다. 혼자 남은 조선족 아저씨가 두 사람 몫을 일했을 게 뻔해 미안했다.

그가 농장에 가면 외국인 노동자들은 항상 비교를 당했다. 한국인 관리자는 “우리끼리는 조심하지만 ‘걔네’한테는 막 대해도 된다”라고 그에게 말했다. 차별은 혐오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완성됐다. 작가에 대한 호의는 다른 사람에 대한 폭력으로 왜곡됐다. 상품에 흠집이 나면 안 된다는 이유로 돼지에게 전기충격기를 못 쓰게 하는 악독한 농장주와, 직원들이 수월하게 일할 수 있도록 전기충격기를 허용하는 선한 농장주 에피소드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밥벌이에 앞서 글쓰기를 목적으로 현장을 찾은 사람은 아무래도 달랐다. 그는 깍두기를 깨물다 문득 발견했다. 예의, 그 고른 이가 문제였다. 누군가 말했다. “승태 이 잘생겼네.” 그를 빼곤 모두 씹을 때 크고 작은 고통을 느꼈다. 다들 어릴 때부터 치아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이었다. 그때까지 작가는 그가 제일 먼저 식사를 마치는 이유가 먹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폴 매카트니가 ‘도살장이 유리로 되어 있다면 사람들은 채식주의자가 될 거다’라고 말했는데 그는 농장에서 한 번도 채식주의자를 못 봤다. 그 역시 일하는 동안 채식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험한 일을 한 뒤 사람들은 고기로 회포를 풀었다.

한승태 작가에게 르포는 ‘거리를 줄이는’ 작업이다. 예전부터 기록에 흥미를 느꼈다. 일기, 자서전, 편지 같은 글이 작가와 내밀하게 연결된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르포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보다 기록으로 된 글에 흥미를 느낀 게 먼저였다. 그의 글에는 통계가 거의 없다. 대신 단면을 ‘클로즈업’한다. 통계에 ‘표정과 피부를 더하는 작업’이다. 이번에도 뒤틀린 식용 고기 산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고기와 소비자의 간극을 줄이고 싶었다.

누군가 그에게 노동자인지 작가인지 물었다. 생계를 위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쓰기’ 위한 선택이었다. 4년간 제일 힘들었던 건 농장에서의 경험이 아니라 막연히 다음 일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이번 책을 쓸 때는 전 세계 멸종 위기 동물을 쫓아다닌 동물학자의 경험을 담은 〈마지막 기회라니?〉를 참고했다. 그렇게 때로 깔깔댈 수 있는 여행기처럼 읽히길 바랐다. 위기에 처한 동물을 찾아나서는 건 같지만 ‘가장 비싼 여행’과 그 반대라는 점에서 극과 극이다.

“잘되었다는 게 아니라”, “옳다는 게 아니라” 작가가 자주 쓴 말이다. 잘못되었지만 그 탓만 할 수 없다는 걸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답이 그려지지 않을 만큼 공고한 관행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다만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20년 살 수 있는 동물을 한 달 만에 죽이는 게, 살이 빨리 찌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이는 게, 맛을 위해 마취 없이 장기를 뜯어내는 게 필요한 일인지 말이다.

아직도 직업소개소에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전화를 받는다. 노동 에세이 3부작을 완성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요즘은 광주광역시에서 정의당 소속 한 후보의 캠프를 드나들며 지방선거 판을 취재하고 있다. 상품으로서의 정치인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어떤 공정을 거치는지 다시 한번 ‘클로즈업’해보고 싶다. 책 하나를 완성하는 데 4년이 걸렸지만 긴 사이클로 몸 쓰고 글 쓰는 일이 자신에게 맞는 것 같다고, 그가 또다시 치아를 드러내며 말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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