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명 이상의 이용자를 거느린 페이스북은 온라인 세계의 ‘검은 제국’인가. 2016년 미국 대선 직후부터 온갖 대형 스캔들의 진원지로 지목받은 페이스북이,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맞물려 여론의 호된 뭇매를 맞고 있다. 러시아 정부의 사주를 받은 해커와 트롤이 페이스북을 이용한 여론 조작으로 대선의 판도를 뒤집었다는 주장이 점점 더 신빙성을 더해가는 가운데, 데이터 분석 및 정치 컨설팅 업체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가 페이스북으로부터 미국 이용자 5000만명의 정보를 빼내 2016년 대선에 활용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이 업체와 연결된 캐나다의 데이터 분석 업체가 역시 페이스북의 데이터를 빼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여론을 부추겼다는 내부 고발도 나왔다.

데이터 유출과 악용, 조작 사태가 불거질 때마다 페이스북은 ‘우리는 플랫폼일 뿐 미디어 기업이 아니다’라는 논리로 책임을 해당 기업이나 기관에 떠넘겨왔다. 하지만 이에 수긍하는 여론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연방 차원에서 프라이버시 문제를 전담해온 미국 연방무역위원회 (FTC)를 비롯해 매사추세츠 주 법무부가 수사를 시작했다. 미국 의회는 4월 중 페이스북 설립자인 마크 저커버그를 불러 청문회를 열 예정이다. EU를 비롯해 영국·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뉴질랜드 등의 프라이버시 규제 기관들도 동시다발로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관리 행태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가장 엄격한 프라이버시 법을 시행한다고 평가되는 캘리포니아 주도 뒷짐만 쥐고 있을 리 만무하다. 더욱이 페이스북은 2015년에 데이터 유출과 유린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것으로 드러나, 보안 사고 신고를 의무화한 캘리포니아의 프라이버시 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저커버그는 뒤늦게 언론 인터뷰에 응하고, 신문에 사과 광고를 싣는 등 사태 해결에 나섰다. 그러나 언론 보도가 나간 뒤 닷새 동안이나 무대응으로 일관해 여론의 불신을 자초했다. 특히 페이스북을 오랫동안 지켜본 IT 전문기자나 칼럼니스트, 업계 관계자들은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의 수장으로 있는 한 진정한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거의 해마다 터진 크고 작은 프라이버시 관련 사건들이 그 증거로 제시되거니와, 무엇보다 저커버그 자신의 발언이 그런 불신의 근거다.

ⓒAFP PHOTO3월25일 한 영국 시민이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유출 사과 광고가 실린 〈옵서버〉를 읽고 있다.

페이스북 초창기인 2009년만 해도 개인정보에 대한 저커버그의 공식 견해는 바람직해 보였다. 당시 그는 BBC와 인터뷰하면서 “페이스북의 콘텐츠는 그것을 올린 이용자들 소유다”라고 말했다. BBC 기자가 ‘페이스북의 어떤 정보도 팔거나 공유하지 않을 것인가’라고 묻자,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약관에도 나와 있듯이, 우리는 사람들의 정보를, 그들이 공유하겠다고 명시한 사람들 외에는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겠다”라고 확답했다. 

그러나 2010년 저커버그는 사뭇 다른 주장을 펼쳤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지 않으며, 더 많은 정보를 더 많은 이들과 더 열린 방식으로 공유하는 데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프라이버시는 더 이상 현대사회의 규범이 아니다.” 한 잡지 인터뷰에서 밝힌 그의 이런 시각은 프라이버시 옹호 단체와 여러 언론의 우려를 자아냈다. 이 무렵 페이스북을 심층 취재하던 〈뉴욕타임스〉 기자는 직원 중 한 사람과 오프더레코드로 나눈 대화를 트위터에 올리면서 그런 우려를 더욱 부채질했다.

나(닉 빌턴):저크는 프라이버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저크는 마크 저커버그의 약칭)
직원(웃으면서):그 친구는 그런 거 안 믿어.

페이스북과 마크 저커버그의 문제는 미국의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이 한 인터뷰가 가장 날카롭게 드러냈다. NPR은 지난 3월21일 페이스북의 초기 투자자로 참여했던 로저 맥너미를 인터뷰했다. 계기는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그리고 최근의 데이터 유출 사고였다. 벤처 투자사 ‘엘리베이션 파트너스’의 상무이사인 맥너미는 한때 마크 저커버그의 개인 멘토를 맡기도 했다. 맥너미 인터뷰에는 이번 사태와 관련한 본질적인 문제가 담겨 있다. 당시 주요 인터뷰 내용은 아래와 같다.

“무슨 일을 하든 우리는 책임이 없다”

ⓒAP Photo3월26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아래)는 페이스북 이용자 개인정보가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에 불법 유출됐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언제고 (데이터 유출 사고가) 터질 줄 알았다. 내가 놀란 건 유출 규모다. 2011년 페이스북은 프라이버시 규제 기관인 연방거래위원회(FTC)에 약속을 했다. 어떤 개인정보도 본인의 명시적인 동의 없이는 다른 목적에 유용하지 않겠다고 공식 합의를 한 것이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4년에 사건이 터졌다. 영국의 한 연구자가 페이스북 이용자를 연구한다는 명목으로 퀴즈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했는데 27만명이 지원했다. 문제는 그 연구자가 자원자들과 연계된 다른 사람의 연락처와 정보까지 모두 긁어서, 무려 5000만명의 데이터를 수집했다는 점이다. 그 모두는 (연구에 참여하겠다고 자원한 27만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아무런 동의나 허락도 해준 바가 없었다. 페이스북은 그런 사실을, 그리고 그렇게 수집된 정보가 부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1년쯤 뒤 2015년에 알았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은폐했다. FTC와 맺은 합의문을 정면으로 위반한 셈이다.” 

맥너미는 이미 2016년에 저커버그에게 직접 이런 문제가 터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맥너미는 NPR과 한 인터뷰에서 그 내용도 폭로했다. “(2016년에) 저커버그와 셰릴 샌드버그 최고운영책임자(COO) 모두 즉각 반응을 보였다. 나는 그 친구들에게, 정확한 진상은 아직 모르지만 페이스북의 알고리즘과 비즈니스 모델에 무엇인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고, 그 때문에 악의적인 외부 세력이 이용자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저커버그와 샌드버그는 ‘시스템 문제가 아니다. 페이스북은 플랫폼이지 미디어 회사가 아니다. 제3자가 우리 플랫폼에 무슨 일을 하든 우리는 책임이 없다’라고 답했다.”

페이스북의 잇단 스캔들은 ‘페이스북 탈퇴’를 외치는 ‘#DeleteFacebook’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해시태그 달기 운동의 주 무대가 다름 아닌 페이스북이라는 점은 퍽 시사적이다. 그만큼 소셜 미디어의 지형에서 차지하는 페이스북의 위상이 막대하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한국에서도 만만찮은 인기를 자랑한다. 2017년 기준 가입자가 1450만명에 이른다. 그에 따른 네트워크 효과와 소통 정보를 고려할 때, 페이스북 탈퇴라는 극한 처방은 소셜 미디어에서 완전히 발을 빼지 않는 한 그리 현실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보다는 페이스북이 제공하는 프라이버시 보호 기능을 적극 활용하면서, 포스팅하려는 내용에 자신의 개인정보가 담겼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는 편이 더 온당해 보인다.

기자명 밴쿠버·김상현 (〈디지털 프라이버시〉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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