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20일 오전 9시55분 김은지 기자는 메일을 받았다. 200자 원고지 91장 분량이었다. 장문의 메일에 딸린 첨부 파일만 9개였다. 메일과 첨부 파일 모두 논문에 가까웠다. 김 기자가 내게 보고했다. 발신인은 한 지방법원 현직 판사. 이름이 낯설었다. 보내온 글을 살펴봤다. 그는 상고법원 설치보다 하급심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법원 벤더 재판장이 만들어 1960년대 중반부터 시행된 ‘독일의 집중심리 모델’을 근거로 들었다. 독일 연수 경험이 있다는 그는 〈시사IN〉에 연재를 원했다. 법원 내에서 ‘학구파’ ‘모범생’으로 알려진 차성안 판사였다. 그런 인연이 닿아 차 판사는 2015년 9월 제416호부터 제423호까지 6차례 연재를 했다.
대법원 추가조사보고위원회가 밝힌 양승태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사찰 보고서에 〈시사IN〉과 차성안 판사가 등장한다. 법원행정처 판사들은 차 판사의 〈시사IN〉 기고문을 참 꼼꼼히도 보았다. 사찰 보고서에는 빨간색 글자로 ‘시사인 편집팀의 편향적인 편집 의도가 보이는 부분’이라고 적혀 있다. 근거는 ‘편집자 설명’과 ‘사진 설명’에서 ‘편향적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고 썼다. 또 ‘차 판사의 열정을 시사인 편집팀이 악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 사찰 보고서를 쓴 법관들이야말로 그들의 용어를 빌리면 멋대로 ‘추단(推斷)’해 〈시사IN〉의 명예를 훼손했다.
이 법관들이 뒷목을 잡을 진실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차성안 판사는 〈시사IN〉에 실릴 원고 최종 편집본을 마지막까지 본인 손으로 확인했다. 제목, 편집자 설명(발문), 사진 설명 모두 그가 검토했다. 법원에 꼬투리를 안 잡히려고 원고료도 안 받았다. ‘김영란법’ 시행 이전이었다.
법원행정처는 엘리트 판사 37명이 모인 곳이다. 출세 코스다. 이곳을 거치면 고등법원 판사로 승진하고 대법관이 된다. 사찰 보고서에 관여한 법관들은 이처럼 법원에서 잘나가는 이들이다. 심지어 진보적으로 평가받는 우리법연구회 출신 일부 법관들도 관여했다. 명령에 기계적으로 순응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지금도 ‘통상 업무’라며 자기최면을 걸고 있다. 헛소리다. 정보기관 노릇을 하며 불법을 저질렀다.
차 판사의 기고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법대로 처리할 길이 얼마든지 열려 있었다. 언론중재위원회를 거치면 된다. 그동안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은 판사 출신들이 맡았다. 자신들에게 유리할 수 있는데도 법대로 하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도 불법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번 사찰 보고서 작성을 지시하고, 작성하고, 실행한 자 모두 법비(法匪)이다. 이 정의가 당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나를 고소하라. 당신들의 홈그라운드에서 다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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