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돼지 한 마리가 논 3000평 만큼 번다
  • 이오성 기자
  • 호수 539
  • 승인 2018.01.16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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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육종 대표 박화춘 박사는 백색 요크셔 일색인 한국 양돈업계에 새로운 대안을 내놓았다. 그는 지방 소멸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농촌의 관성에 머무르지 말라고 말한다.

남편은 돼지를 키운다. 아내는 그 돼지고기로 스페인의 하몽 같은 발효 생햄을 만든다. 조카는 농장에서 나오는 분뇨를 거둬들여 액체 비료로 탈바꿈시킨다. 디자인을 공부하던 첫째는 전공을 축산학으로 바꿨고, 둘째 역시 양돈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나섰다. 이쯤 되면 돼지로 먹고사는, 아니 돼지가 먹여 살리는 가족이다.

박화춘씨(다산육종 대표)는 축산업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 박 사장, 박 대표보다는 ‘박 박사’로 불린다. 가축육종학으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농촌진흥청 연구원, 축협중앙회 유전자원실장으로 근무하다 마흔 무렵 돌연 고향인 전북 남원시 운봉읍으로 돌아왔다. 밀레니엄과 IT 산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떴던 21세기 초반이었다. 그는 도시를 떠나 지방, 그것도 시골에서 인생 2막을 열기로 작정했다.

‘가치’와 ‘프라이드’를 생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돼지였다. 특별한 돼지를 길러 팔아 농업인으로서 긍지를 세우고자 마음먹었다. 백색 요크셔 일색인 한국 양돈업계에 새로운 대안을 내놓기로 했다. 미국에서 까만 몸통에 네 다리와 머리, 꼬리가 흰 버크셔 돼지를 들여왔다. 비행기 값만 한 마리당 67만원이었다. ‘부드럽고 촉촉한’ 돼지고기를 만드는 걸 목표로 삼았다. 근섬유 비율, PH 농도 등 고기 맛을 좌우하는 요소를 두고 연구를 거듭했다. 매년 엄청난 돈이 연구비로 쓰였다.

ⓒ시사IN 조남진박화춘 박사(오른쪽)는 ‘버크셔 K’를 키우고, 아내 오인숙씨는 그 돼지고기로 발효 생햄을 만든다.

그렇게 여러 해를 맨땅에 헤딩한 끝에 ‘버크셔 K’라는 돼지고기가 탄생했다. ‘K’는 Korea로, 한국형 버크셔 돼지를 뜻한다. 이 돼지고기는 부드러우면서도 유별나게 고소하다. 2010년 이후 일부 미식가들 사이에서 돼지고기의 신세계를 맛봤다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부위별로 다르지만 삼겹살의 경우 시중 가격보다 두 배가량 비싼 편인데도 주가는 올라갔다. 

아내 오인숙씨가 버크셔 K 뒷다리로 만드는 ‘지리산생햄’도 덩달아 주목받았다. 버크셔 K라면 스페인의 최고급 하몽에 견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다. 지리산생햄 공장 옆에는 공간도 마련했다. 생햄과 함께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지역 생산물로 음식을 가공하고, 이를 체험관광으로까지 연결하는 ‘6차 산업(1, 2, 3차 산업을 복합해 농가에 높은 부가가치를 발생시키는 산업)’을 현실화한 셈이다. 그러고 보니 버크셔 K를 키우는 농장 이름이 다산육종(茶山育種)이다. 다산(多産)이 아니다. 정약용의 호인 다산(茶山)에서 빌렸다. 실사구시로 농촌을 일으켜보겠다는 뜻이 담겼다.

애초 박화춘 박사의 목표는 남원 전체를 고품질 버크셔의 메카로 만드는 것이었다. 남원시와 함께 흑돼지 클러스터 사업에 매진했다. 쉽지 않았다. 버크셔종은 일반 돼지에 비해 자라는 속도가 더뎠다. 생산성보다는 품질을 우선으로 둬야 했다. 몇몇 농가는 생각이 달랐다. 빨리 키우겠다며 몰래 다른 돼지와 교배시키는 농가가 나타났다. 버크셔의 다리와 머리에 난 흰 털은 열성유전이다. 잡종 교배하면 보통 흑돼지처럼 온몸이 새까매진다. 물론 품질도 달라진다. 품질이 균일하지 않은 상품을 내놓을 수는 없었다. 안타깝지만 농가들과 거리를 뒀다.

지방 특히 농촌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했다. 1990년대 농축산 기관 소속으로 우루과이라운드와 WTO 협정을 겪었고, 2000년 이후에는 현장에서 농촌의 현실과 마주했다. 세상은 모순덩어리였다. 사람들은 값싸면서도 질 좋은 것을 원했다. 비가 내리는 날 푸른 하늘을 보겠다는 심보나 다름없어 보였다. 반발을 막기 위해 정부는 농민에게 당근을 주며 달랬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1990년대 말 일본에서 나온 농업 변화에 대한 보고서가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다. 이 한마디가 핵심이었다. “농업의 최대 적은 작아지는 인간의 위장이다.” 과거 노동력 기반 사회와 달리 탄수화물과 채소 섭취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단백질을 중심으로 약간의 채소와 곡물을 섭취하는 오늘날 식생활 흐름에 맞아떨어지는 예측이었다. 박화춘 박사가 돼지에게 농촌의 미래가 있다고 본 까닭이기도 하다. “엄마 돼지 한 마리가 올리는 매출이 논 3000평에서 거두는 매출과 맞먹습니다. 벼농사를 산업으로 볼 수는 있겠지만, 개별 농가에게 사업은 되지 못합니다. 너무나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농업 무시하면 입에 쓰레기가 들어간다”

ⓒ박화춘 제공전북 남원 지리산 자락 해발 500m 고지에 위치한 다산육종 농장의 모습.

물론 축산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가축 분뇨로 인한 환경오염, 구제역, 요즘에는 동물복지 이슈까지. 문제는 개별적이지만, 이를 관통하는 줄기는 있다. 농업이 변하지 않고서는 늘 땜질식 처방에 머무르고 말 것이라는 점이다. 변화의 방향은 앞서 말한 가치와 긍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분뇨 문제만 해도 그래요. 그동안 이를 처리하려고만 했지, 활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조카가 분뇨를 액체 비료로 활용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상당히 주목받고 있어요. 이런 게 가치를 만드는 것 아닐까요.”

농촌 지역 소멸을 막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농촌에 가치가 있다는 걸 보여주면 된다. 박화춘 박사가 버크셔 K를 발판으로 6차 산업의 미래를 그려가는 이유다. 그를 인터뷰하는 동안 마침 농장에 실습차 매주 방문하는 전북대 축산학과 박사과정 재학생이 왔다. 그에게 물었다. 농촌 현장에 전망을 두는 학생들이 많으냐고. 그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별로 없을걸요. 아마 박사님 같은 분이 늘어나면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여기 오면 배우는 게 정말 많습니다.”

박화춘 박사는 귀농학교 같은 데서 강연할 때마다 이런 말을 한다. “젊은이처럼 힘이 센가요? 또는 3억원 정도 돈이 있나요? 그게 아니라면 도시에서 50명만 확실히 챙기세요. 그들에게 한 달에 5만원씩 받고 지역 농산물을 보내주세요. ‘꾸러미 사업’이죠. 이런 전략과 준비가 있어야 귀농도 성공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20대에 몇 년 공부해서 20~30년 먹고살았습니다. 그럼 나이 50~60대에 또 몇 년 공부해서 앞으로 먹고살 걸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농촌의 관성에 머무르지 말고 활로를 모색하자는 이야기다.

인터뷰 말미 박화춘 박사가 다소 과격한 표현인지 모르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소비자가 농업을 무시하면 입에 쓰레기가 들어간다고. 그리고 농민은 의사 같은 직업 윤리로 먹을거리를 생산해야 한다고. 실사구시로 농업의 미래를 그려가는 ‘현장 농민의 철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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