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82년생 김지영〉 서평 쓰기는 한바탕 전쟁 같았다. 한 줄 쓸 때마다 방송 관련 전화가 걸려오고, 방송작가 노조(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카톡방에는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왔다. 한 문단을 채 메우기도 전에 일곱 살 꼬마는 컴퓨터 밖으로 ‘엄마’를 소환했다. 그렇다. 1977년생 이미지는 방송작가이자, 지난 11월11일 출범한 방송작가 노조의 위원장, 그리고 일곱 살배기 아들의 엄마다. 소설 속 82년생 김지영은 다섯 살 많은 77년생 이미지와 놀랄 만큼 닮아 있다. 20년 선배 82학번 심재명(영화제작자)도 82년생 김지영의 삶이 본인의 이야기를 가져다 쓴 것 같은 기시감마저 든다고 했다. 82년생 이후 출생 여성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다. 82년생 김지영이 2017년 한 해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가 여기에 있다.
82년생 김지영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퇴사를 놓고 고민하다 퇴사한다. 독박 육아에 시달리며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로 전락했지만 적어도 출산 즈음까지는 출산휴가를 쓸지, 육아휴직을 쓸지, 퇴사할지 선택할 수 있는 정규직 신분이었다.
77년생 이미지는 ‘비정규직 백화점’이라 할 수 있는 방송업계에서도 대표적 비정규직인 ‘방송작가’다. 드물다는 공중파 방송사의 공채 작가 출신이지만 막내 작가 시절의 불합리한 처우와 과도한 업무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100대 1 경쟁률을 뚫고 공채 작가 시험에 합격했으나 프리랜서 혹은 비정규직의 현실을 깨닫는 데 사흘이 걸리지 않았다.
77년생 이미지는 아들 출산 날에도 원고를 썼다. 제왕절개 수술 직후 회복실에 누워 젖 오른 가슴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퉁퉁 부은 손가락을 움직였다. 산후조리원에서도 일을 멈추지 않았다. ‘착한’ 제작진의 배려로 대타 작가를 두고 쉴 수 있었지만 결국 무급 출산휴가일 뿐.
방송작가들에게 출산 복지는 다른 세상 얘기다. 법으로 보장된 ‘유급’ 출산휴가나, 장기간의 육아휴직은 언감생심이다. 무급휴가마저 감지덕지이고 퇴사가 일반적이다. 기혼 작가보다 임신·출산·육아 가능성이 없는 미혼이 우선 채용되는 일도 다반사다. 77년생 이미지 주변에는 출산은커녕 결혼도 포기한 방송작가가 즐비하다.
〈82년생 김지영〉의 저자 조남주 작가 또한 ‘방송작가 경단녀’다. 77년생 이미지와 78년생 조 작가는 시사 프로그램에서 일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의 부조리를 말할 창구는 없었다.
11월11일, 방송작가 노조가 출범했다. 관행이라는 이유로, 프리랜서라는 미명 아래 방송작가들에게 가해진 온갖 부조리를 방송작가 스스로 힘 모아 고쳐나가려 한다. ‘77년생 이미지’가 방송작가 노조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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