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연락도 되지 않는 삼촌이며 숙모며 하는 동네 어른들이 모여 5공 청문회를 텔레비전으로 보던 날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젊은 그들이었는데, 어린 나에게, 우글우글 둥글게 모여 텔레비전을 보던 어른들의 모습은 온통 주름살로만 기억된다. 우그러진 몸으로 기나긴 시간을 통과해 여기까지 왔다. 주름 속에 숨어 형형히 빛나던 눈빛이 있었음을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 눈빛을 아직은 눈이 부셔 바로 쳐다볼 수 없다. 삼촌이며 숙모며 하는 동네 어른들이 진짜 노인이 되어버린 지금까지도 우리는 눈빛만을 빛내며 어두운 구석에서 텔레비전을 본다. 날이 밝아오고 있는지, 애써 궁금해하면서.
-
한국인의 취미 ‘국난 극복’
한국인의 취미 ‘국난 극복’
사진 홍진훤 최형락·글 정세랑(소설가)
일 때문에 가족 때문에 한국을 떠나 살고 있는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요즘은 한국이 예전보다 괜찮아 보여” 하는 말을 거듭해서 들었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보는 게 안쪽에...
-
미지의 시간을 껴안은 아이들
미지의 시간을 껴안은 아이들
사진 이명익 김흥구·글 김애란(소설가)
화면은 얼핏 공평하게 양분된 듯 보이나 죽음의 자리가 조금 더 넓다. 어른 보폭으로 치면 반 보 혹은 한 보 정도. 오른쪽 공간의 정중한 물러섬이랄까 마땅한 양보가 눈에 띈다. 여...
-
우리 집 생존 배낭 6개
우리 집 생존 배낭 6개
사진 조남진·글 피터 김용진(신촌서당 대표)
4층 빌라가 불안해 근처 단독주택으로 피신했다. 지진이 나면 근처 중학교 운동장으로 가야 하는데 다섯 살, 한 살 아이를 데리고 그 허허벌판에 서 있을 수는 없었다. 경주에 이사 ...
-
82년생 김지영과 77년생 이미지
82년생 김지영과 77년생 이미지
이미지 (방송작가·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
소설 〈82년생 김지영〉 서평 쓰기는 한바탕 전쟁 같았다. 한 줄 쓸 때마다 방송 관련 전화가 걸려오고, 방송작가 노조(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카톡방에는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왔다....
-
이상설이 보내는 신호
이상설이 보내는 신호
이석형 (산림조합중앙회 회장·보재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 회장)
“내 조국을 찾고 싶다.” “대한국민은 대한의 광복을 죽기로 맹세한다.” 이는 107년 만에 발견된 연해주 ‘성명회(聲明會) 선언서’ 내용 중 일부이다. “나라를 잃어 나라가 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