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하고 나서부터 진짜 싸움이 시작된다”
  • 임지영 기자
  • 호수 532
  • 승인 2017.11.2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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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겸 사장이 퇴출되면서 MBC 노조는 파업을 멈췄다. 반면 KBS 새노조는 여전히 파업 중이다. 김민식 MBC PD와 김빛이라 KBS 기자가 못다 한 파업 이야기를 풀어냈다.
포항에서 규모 5.4 지진이 났던 11월15일 김빛이라 KBS 기자는 회사에서 보낸 문자를 받았다. 재난 방송을 위해 즉각 복귀하라는 내용이었다. 지난 9월3일 북한 6차 핵실험 때도 비슷한 문자를 받았다. 같은 날 김민식 MBC PD는 72일 만에 회사에 출근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11월13일 방송문화진흥회가 김장겸 사장 해임안을 가결한 지 이틀 만에 업무에 복귀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KBS 새노조)는 고대영 KBS 사장 퇴진을 목표로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고 사장은 방송법이 개정되면 사퇴하겠다며 사실상 ‘버티기’ 중이다.

총 9차례, ‘파업 일기’를 매주 번갈아 연재했던 김민식 MBC PD와 김빛이라 KBS 기자를 만났다. 한쪽은 파업을 끝냈고 한쪽은 끝내지 못했다. 김 PD는 김 기자에게 이근행 MBC PD가 자주 하던 말을 들려주었다. “적설의 시간은 길지만 해빙은 순간이다.” 두 사람에게 파업 뒷얘기를 물었다. 방담을 끝으로 파업 일기 연재를 마무리한다.



ⓒ김흥구〈시사IN〉에 ‘파업 일기’를 연재했던 김빛이라 KBS 기자(왼쪽)와 김민식 MBC PD.
각각 1996년(김민식), 2011년(김빛이라)에 입사했다. 차이가 좀 있다.

김민식:이번 싸움에서 2011년 2012년에 입사한 친구들이 열심히 싸웠다. 우리는 좋은 시절을 봤고 추억의 힘으로 싸우는데 그런 경험을 못한 세대가 이번 싸움을 열심히 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김빛이라:2012년 100일 파업을 할 때 막내였는데 MBC 막내들도 함께였다. MBC는 2012년까지만 신입 공채가 들어왔다. 우린 좋은 시절을 못 누렸지만 후배들이 들어오면서 함께 간다는 마음이 있는데, MBC는 같이 파업했던 친구들이 마지막 공채 기수였다.

김민식:신입 공채를 뽑으면 다 같이 노조에 들어가니까 경력으로만 사람을 뽑았다. 5년간 신입 안 뽑는다는 게 말이 되나. 사실 방송사는 똘똘한 사람들을 모을 수 있기 때문에 먹고사는 거다. 김재철·안광한·김장겸은 자기 회사 경쟁력을 망가뜨리는 일을 했다. 그래서 더욱 용서할 수 없다.

“김장겸은 물러나라”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이 MBC 파업의 시작이었다.

김민식:내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보다 막내 기자들의 반성문 동영상이 이번 파업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까지 했는데 밖에서 아무도 반응을 안 했다. 유튜브 영상 밑엔 ‘몇 년간 잘 있다가 왜 이제 와서 그러느냐’는 가슴 아픈 댓글들이 많았다. 그거 보고 이건 진짜 아니지 않은가, 이들이 이 안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나는 몇 년간 봐왔는데. 그래서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사IN 신선영11월14일 김장겸 MBC 사장 해임안이 주주총회에서 최종 확정되면서 언론노조 MBC본부는 ‘총파업 정리집회’를 열고 다음 날 파업을 종료했다.
김빛이라
:KBS 막내 기수들이 세월호 참사 때 ‘기레기로 살고 싶지 않다’는 내용의 글을 사내 통신망에 올렸고 당시 길환영 사장을 쫓아냈다. 지금 생각하면 막내였으니까 가능했던 것 같다. 뭔가 잘못됐는데 기자로서 할 일을 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김민식:길환영 사장 내쫓았을 때 KBS 새노조가 부러웠다. 그러고 나면 효능감이 생긴다. 우리가 싸워서 내보냈구나 하는. 암울하던 시절 그 일로 새노조의 전투력을 끌어 모았다. 다행히 우리도 이번에 사장 해임을 이끌어내서 그나마 트라우마를 씻었다.

김 PD는 김장겸 전 사장을 따라다니며 “왜 나를 잘랐냐”라고 계속해서 묻던데 정말 궁금해서였나?

김민식
:〈뉴 논스톱〉을 연출할 때 양동근이 “딱 걸렸어 한턱 쏴”를 유행어로 밀던 때였다. 어느 날 와서 말하더라. 너무 많이 해서 사람들도 지겹고 싫증날 것 같다고. 내가 그랬다. 우린 리딩, 촬영, 편집 때 보고 방송 나갈 때도 보니 많이 보는 것 같지만 시청자는 일주일에 한두 번 본다. 이제 좀 들려서 뭔가 알 것 같은데 많이 했으니까 안 한다? 내가 정확하게 아는 건, 나를 지난 5년간 드라마국에서 쫓아낸 건 김장겸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거 하나를 계속 말했던 거다.

김 기자는 파업을 끝내고 복귀하는 MBC 노조를 지켜보는 심정이 복잡하겠다.

김빛이라
:일반 노조원으로서 매일 집회 참여하는 일 외에는 달리 힘이 될 방법이 없다. 노조 집행부 선배들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하는데 어깨에 부담이 크니까 안쓰럽다. KBS 노동조합(KBS 1노조)이 파업을 중단한다고 했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선배들은 화병 났을 것 같다(KBS 1노조는 고대영 사장이 방송법 개정 이후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11월10일 파업을 중단했다). 이후 기자회견에서 한 선배가 71일째 파업인데 1일째라는 마음으로 한다고 했는데 오히려 함께 가는 사람들이 정비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MBC가 잘 되어서 좋다.

ⓒ연합뉴스11월10일 국회에 출석한 고대영 KBS 사장에게 KBS 새노조 소속 기자가 돌발 질문을 하고 있다.
MBC와 달리 KBS 이사진은 사퇴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김빛이라
:이사회가 얼마나 중요한 구실을 하는지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다가 이번에 구성원들의 면면을 보니 이렇게 중요한 걸 결정하는 분들이 어떤 기준으로 이 자리에 있는 걸까 큰 의문이 들었다.

김민식:저는 거기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궤변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2012년 170일 파업 당시 김장겸 부장은 끝끝내 파업에 합류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괜찮은 사람들은 파업이 50일째 접어드니 미안해서라도 동참하더라. 그가 정말 이상한 사람인 거다. 오히려 괜찮은 사람이 저쪽에 있으면 더 절망적일 거다.

김빛이라:갑자기 힘이 생기는 것 같다(웃음). 이사회 면면을 시청자에게 알려줌으로써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영화 〈공범자들〉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공영방송이 이런 방식으로 굴러가고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해고하고…, 사람들이 이걸 다 알게 되었을 때 돌아가서 재건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더라. 파업 일기를 쓰면서도 비슷한 고민이었다. 그런데 시청자들이나 독자들 수준이 높아졌다. 공영방송을 지켜야 한다고 함께 분노해주었다.

김민식:김 기자의 파업 일기 글이 좋았던 게 처음부터 자기반성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김빛이라:저는 이명박 정부 때 입사했기 때문에 그걸 비판해온 처지에서 주류 언론의 기자가 된다는 자체가 혼란스러웠다. 이미 제가 만난 취재원에게 신뢰를 잃은 상태로 시작했다. 그런데 옳은 얘기 하다가 어려움을 당해도 또 같은 자리를 지키는 선배들 보면서 그 자체로 힘을 얻었다. 이용마 선배가 최근에 펴낸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를 읽었다. 책을 보니 이 선배가 어머니 팔순 때 해고 소식을 알리더라. 나라면 같은 상황일 때 담담하게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 정답을 이번 파업에서 얻은 것 같다. 같은 상황이 오면 나부터 1인 시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김 PD 같은 분이 승리하는 걸 보고.

김민식:후배 아나운서들이 〈공범자들〉 상영회 사회 등을 보면서 열심히 싸워주었다. 우리의 싸움이 세대교체가 되면서 대물림되겠구나 하는 걸 느꼈다.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다음에 또 싸움을 하더라도 이 노하우를 누군가가 갖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어린 친구들이 승리의 기억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의미 있다.

지난 파업과는 뭐가 달랐나?

김민식
:사실 이번 파업은 촛불과 대선을 거쳐 묻어간 거다. 항상 말하는 게 우리는 지난 두 달이 아니라 복귀하고 나서부터 진짜 싸움이 시작된다. 5년 동안 그렇게 많은 죄를 저질렀는데도 한 번 더 기회를 준 것이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김빛이라
:직군대로 복귀했을 때 뭘 할지에 대해 워크숍을 거의 매주 한다. 뭐든지 새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많은 아이디어가 나온다. 예를 들어 막내 기자들이 〈9시 뉴스〉에 어떤 아이템이 선택되는지 편집회의를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으로 해달라고 한다. 어떤 의사 결정을 통해 아이템이 결정되는지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밀실에서 뉴스를 제작한다는 의심을 없앨 수 있으니까. 연차를 넘어 이런 얘기할 수 있다는 게 좋다. 지난 파업 땐 복귀 여부만 고민했다면 이번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파업하며 아쉬움은 없었나. KBS는 MBC에 비해 조명을 덜 받기도 했다.

김빛이라
:내가 기자인 걸 아는 이웃들은 파업 중이라고 하면 “MBC 다니셨구나” 이런다. KBS라고 하면 거기도 파업을 하고 있었느냐고 되묻는다. 이해하지만 나와 있는 사람들은 조급한 마음이 든다. 복귀하고 MBC랑 제대로 경쟁을 해야 하는데 마음이 조급한 거다. 시간이 있어서 JTBC 뉴스를 모니터링하는데 언론사 준비할 때처럼 비장해졌다. 일을 하고 싶은 열망으로 메모하고 있더라. 슬프지만, 전열을 다듬는 마음이다.

김민식
:좋은 것만 기억하려고 한다. 전철을 탔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주위를 보면 어떤 아주머니가 엄마 미소로 나를 보고 있다. 책 읽다가 다시 보면 계속 그렇게 쳐다보고 있더라. 내리면서 “응원합니다”라고 말해준다. 기분이 짠하다. 하도 말하고 다녀서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있다.

김빛이라:입사 동기가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간호사가 주사를 놓고 나더니 “파이팅! 적폐 몰아내는 날까지 들어가지 마세요” 했다더라. 누가 나한테 어디서 본 사람 같다고 하면 예전엔 기자란 말 안 했는데 요즘은 한다. 응원해주실 때 책임감을 느낀다. 파업 기사를 읽다 보면 ‘우리가 촛불로 다 이뤄놓은 것에 숟가락 하나 얹는 거 아니냐’는 댓글도 있던데, 말로 해명하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이나 뉴스로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업 일기 연재하는 동안 주변 반응은 어땠나?

김빛이라
:많은 분들이 보더라. 지면을 찍어서 보내주는 사람도 있었다. 취재를 하는 과정이 좋았다. 파업을 벌써 세 번째 하면서 돌아보니까 이런 와중에도 온라인으로 나갈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 파업 봉사단이라고 해서 파업을 준비하고 영상을 만드는 선후배들이 있었다. 막내들도 경험이 많지 않은데 한몫하고 있다. 글을 핑계로 선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좋았다.

김민식
:허항 PD가 자기가 좋아하는 〈시사IN〉에 이름이 나와서 고맙다고 하더라. 대한민국에서 많은 약자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정말 약자는 파업 노동자 같다. 거리에서 전단지를 돌리다 보면 이렇게 쉬운 상대가 없다. 노점 할머니도 손님 길 막으니까 딴 데 가라 하고 택시 기사도 빨갱이라며 욕한다. 그런 이들에게 마이크나 지면을 내주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우리가 복귀해서 사회적 약자에게 마이크 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MBC도 파업은 접었지만 보도국은 제작 거부 중이다. 남은 과제가 많다.

김민식
:후배들의 고민이 깊다. ‘부역’의 기준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 애매한 문제다. 파업 초반에 교양국 후배 PD들이 하소연을 했다. “내가 저 인간(선배 PD)이 지난 몇 년간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데 파업한다니까 부장 보직 던지고 내 옆에 앉아 있는 거 못 견디겠다”는 거다. 그 후배한테 말했다. “와 부럽다. 너는 나보다 덜 간절하구나. 난 이번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누구의 손도 빌릴 수 있는데.” 이건 싸움 시작할 때의 일이다. 어떻게든 많이 끌어들여야 했으니까. 복귀 후에도 똑같은 고민을 한다. 난 영화 〈곡성〉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쉬운 답을 경계하라는 의미다. ‘외지인이 나빠. 바이러스 탓이야 독버섯 탓이야.’ 이렇게 한 가지 척도로 봐선 안 된다. 케이스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사안마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다. 우리 안의 적폐, 우리 곁의 적폐와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남았다. 다행히 지난 몇 년간 대부분은 본색이 드러나 버렸다.

복귀 후 계획은?

김민식:지난 몇 년간 MBC 드라마가 얼마나 망가졌느냐면 어린 후배들한테 이른바 ‘막장 드라마’ 제작을 주로 시켰다. 원래 막장 드라마는 나이 든 선배들이 한다. 막장 드라마는 저비용 고효율이다. 한 신을 1억원 들여서 찍지 않더라도 얼굴에 물 한번 끼얹으면 이목이 집중된다. 시청률 올리기 가장 쉬운 방법이다. 멋있으라고 한 얘기인데, ‘나는 돌아가서 폼 나는 드라마 안 하겠다. 후배들이 안 하려고 하는 거 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시청자들이 ‘저 인간은 그렇게 파업까지 해놓고 기껏 만드는 게 막장이냐’고 할까 봐 걱정은 된다(웃음). ‘로코(로맨틱코미디)’ 하나는 할 것 같다. 끝까지 코미디가 하고 싶다. 걱정은, 싸우는 과정에서 내상이 깊고 인간의 못 볼 꼴을 많이 봐서 다시 발랄하게 할 수 있을까 싶다.

김빛이라:그런 걸 상상하면 좋다. 제 또래 기자들은 자책하면서 우리 뉴스 보지 말라고 말해왔다. 돌아가면 MBC와 긴장 관계에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좋다. 서로 자학하지 않으면서 뉴스를 볼 수 있으면 한다.

김민식:나도 후배들한테 ‘너희들은 MBC 재건의 주역이니 좋겠다’고 말한다. 나는 잘나가는 조직에 들어와 망가진 세월 지켜봐온 사람인데 너희들은 입사할 때부터 바닥이었으니 이제 좋아질 일만 남았다고.

김빛이라:집회 현장에 취재 나가서 쫓겨나지 않기만 해도 가슴이 설렐 것 같다. 나는 항상 KBS 로고가 찍힌 옷 말고 등산복 입고 집회 현장을 취재했다. 노란색 옷만 봐도 뭘 던지고 그러니까. 쫓겨나지 않고, 나를 그냥 기자로만 봐줘도 좋을 것 같다.

다시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김민식
:사장 선출 제도와 관련해 이용마 기자가 말한 국민 대리인단(무작위로 선출된 국민 대표들이 사장을 뽑는 방식)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제도 정비가 필요하긴 한데,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운용하는 사람의 문제이고 그런 시대를 만든 우리 전체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딜레마는 우리가 정말 좋은 언론사가 되어서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잘 할수록 권력은 이 조직을 장악하고 싶어 할 거라는 점이다. 그런 시도가 아예 없길 바라면 안 되고, 장악하려 할 때마다 싸운다는 결기를 갖고 있어야 한다. 야성을 버리는 순간 지난 몇 년간의 비극이 다시 시작된다.

김빛이라
:대통령도 긴장하게 하는 뉴스를 만드는 언론이 이상적이다. 국민 수준도 높아졌고 우리 내부의 자정작용을 믿는다. 이제는 국민을 속일 수 없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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