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년간 서울의 한 지역으로 출강을 나갔다. 이른바 학부모들 사이에 ‘학군 안 좋은 곳’으로 알려진 지역이었다. 이곳에 와서 그간 내가 학부모들의 치맛바람과 아이들의 경쟁 욕심에 얼마나 익숙해졌는지 알게 됐다. 행정구역상 같은 서울인데 다른 세상처럼 보였다. 목동이나 대치동 학생들한테서 느낄 수 없는 분위기를 체감했다. 온전한 배움의 열망이 아닌 체념과 자기 비하라는 씁쓸한 분위기였다.

ⓒ김보경 그림

첫 사건은 중간고사 시험 문제에 관한 일이었다. 인근 학교 국어 시험에 인터넷에 떠도는 족보 시험 문제가 똑같이 출제되었다. 심지어 오답 문제이기도 했다. 이른바 ‘학군 좋은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그야말로 난리가 난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교사와 학교에 항의를 쏟아낸다. 학부모들은 학원 강사에게 왜 그 문제가 잘못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려달라고 요구한다. 학원 강사들은 그 문제가 오답인 이유를 서술해 아이들 손에 들려 보낸다. 시험이 끝나고 나면 학교와 학원은 늘 알력 다툼을 벌였다. 하지만 그 지역 학교는 달랐다. 학생은 용기를 내 교무실로 교사를 찾아갔지만 교사에게서 “내가 낸 문제가 아니라서 모른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어떤 학생은 부모한테 꾸중을 들었다. “이 문제를 맞힌 친구들도 있지 않느냐. 네가 공부를 덜 하고 선생님 탓을 하는 것 아니냐.” 결국 오답은 수정되지 않았다.

“여기는 대치동이 아니에요”

생소한 일은 계속 벌어졌다. 목동과 대치동 학부모들은 학생의 학교생활까지 꼼꼼히 관리해줄 수 있는 곳을 찾아 학원을 탐색한다. 이곳 학생들은 그런 부모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학생 스스로 도움을 청하는 일도 드물었다. 그나마 교내 대회에 낼 작품에 대한 교정을 요청한 학생이 단 한 명 있었다.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학생들에게 교내외 대회에 참여할 것을 권했다. “장려상이라도 받아 입시 원서에 한 줄이라도 쓸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저희가 그걸 어떻게 해요?”라고 반응했다. 이곳 학생들은 자신도 어떤 대회에 참여해 상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듯했다.

학원 강사 처지에서 보기에, 이른바 ‘학군이 좋지 않은’ 동네 학생들일수록 수능을 쳐서 정시로 대학을 가는 것보다는 학생부 종합전형을 노리는 게 유리하다. 하지만 내신 점수를 꼼꼼하게 챙겨 가는 것은 이곳 학생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학원 강사로서 몸은 편했다. 수업의 질을 보겠다며 동영상을 요구하는 부모도 없고, 자료의 양이라도 보장받겠다고 달려드는 학생도 없었다. 출강을 간 지역의 학생들은 학원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듣는 것 외에 학원에 바라는 게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학 입시에서 자유로울까? 그렇지 않다. 학생들은 누구 못지않게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를 졸라 학원에 등록하고, 꾸벅꾸벅 졸면서도 밤에 학원 책상에 앉아 ‘시간을 채웠다’는 뿌듯함을 얻었다. ‘인(in)서울’과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동경하고 ‘지잡대(지방대)’를 비웃는, 평범한 2017년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이었다. 동시에 이곳 학생들은 1등급, 인서울, SKY가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상상을 포기하고 체념하는 데에 익숙했다. 너희도 뭔가를 좀 해보자는 학원 강사의 부추김에 아이들은 늘 이렇게 말했다. “제가 할 수 있을 리가 없죠.” “우리 학교가 그렇죠, 뭐.” “선생님은 좋은 동네에서 오셔서 그러시는데… 여기는 대치동이 아니에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기자명 해달 (필명·대입 학원 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