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9월5일 여성환경연대는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생리대 성분 조사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열었다.

‘생리대 파동’이 진실 공방으로 치닫고 있다. 시작은 지난해 10월 여성환경연대가 김만구 강원대 환경융합학부 교수에게 소비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일회용 생리대 11개의 유해성 연구를 의뢰하면서였다. 모든 제품에서 200여 종의 총휘발성유기화합물질(TVOC)이 발견됐고 이 가운데 독성화학물질 20종이 들어 있었다. 그 결과가 지난 3월 발표됐다. 당시 제품명을 밝히지 않았으나 8월 초, 김 교수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릴리안’이 포함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여성환경연대는 생리대의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전 성분 조사와 역학조사를 촉구했다. 제품명을 포함한 연구 결과 공개 여부는 정부의 판단에 맡겼다.


피해 사례 신고가 늘자 8월25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시중에 유통되는 생리대를 전수조사하기로 했다. 김 교수팀의 연구에 대해서는 8월30일 ‘과학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9월4일 김 교수팀의 연구 결과를 전격 공개했다. 업계 1위 유한킴벌리 제품에서 발암 성분이 가장 많이 검출된 것으로 나왔다. 유한킴벌리 측은 왜곡된 내용이라 반박했고 ‘릴리안’을 만든 깨끗한나라도 김 교수를 검찰에 고소했다. 당장 생리대를 써야 하는 소비자들은 불안에 휩싸였다. 좀 더 안전한 생리대를 찾아 해외 사이트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안전한 생리대는 무엇일까. 기준을 강화하면 안전해질까.

수많은 화학물질이 우리 건강에 주는 영향을 연구해온 이덕희 경북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안전한 일회용 생리대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합성화학물질에 대한 노출은 다양한 여성 질환의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환경요인이지만, 환경호르몬의 노출로 발생하는 인체 영향을 모두가 납득할 만한 결과로 증명하기란 매우 어렵다고 조언한다. 책 〈호메시스-건강과 질병의 블랙박스〉(2015)를 쓰기도 했던 그를 9월6일 경북대 의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시사IN 이명익이덕희 경북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지금같이 수많은 먹을거리와 일상 생활용품이 하나씩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이번 생리대 파동을 어떻게 지켜봤나?

나는 일회용 생리대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생리대뿐 아니라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수많은 생필품이 석유를 기반으로 한 합성화학물질로 만들어지고 있다. 유독 생리대 문제만 부각되어 그것만 해결되면 여성들의 생리불순이나 자궁 질환이 다 사라질 것처럼 몰아가고 있는 분위기가 우려스럽다.

시민단체는 전면 역학조사를 요구한다.

역학 연구에는 매우 복잡한 문제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시민단체에서는 생협 생리대를 사용한 여성과 다른 생리대를 사용한 여성을 비교하면 생리대의 유해성을 조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생협에서 나온 생리대를 쓸 정도의 여성들은 먹을거리를 포함하여 다른 생활습관도 다른 여성들과는 거의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먹을거리와 다양한 생활습관은 직간접적으로 환경호르몬의 노출 및 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요인들을 역학 연구에서 적절하게 통제하고 생리대의 영향만 찾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위해성 평가를 통해 안전 기준을 마련해달라는 요구 같은데.

위해성 평가라는 건 굉장히 높은 농도(독성 영역)에서 개별 화학물질에 대해 실험한 다음, 이를 근거로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수준의 농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걸 밝히는 과정이다. 단 하나의 화학물질을 가지고 연구하는데,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수천, 수만 개의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있다. 최근 연구를 보면 전통적인 독성 영역에서 다루지 않았던, 환경 노출 영역(일상생활에서 저농도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영역)에서 다양한 기전을 통해 화학물질이 우리 몸에 영향을 준다는 게 밝혀지고 있다. 환경호르몬도 그중 하나다.

안전한 일회용 생리대가 없다는 건 그런 의미인가?

더 얇은 생리대, 더 흡수력이 좋은 생리대가 나오고 있다. 고기능 화장품에 화학물질을 더 첨가하듯 생리대도 마찬가지다. 이번 조사에서 발견된 총휘발성유기화합물 역시 향이 나는 제품 대다수에서 상당량 검출되었다. 일상에서 생리대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일회용에 들어간 합성화학물질은 생리대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주변에 너무 많다. 10명을 무작위로 뽑아 먹고 마시고 사용하는 모든 것에 대해 화학물질을 측정해보면 초극미량의 살충제·발암물질·환경호르몬 등이 검출될 거다.

최소한의 기준은 필요할 것 같다.

독성 수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기준을 마련해 규제하는 게 가능하다. 총휘발성유기화합물 관련 기준을 추가하는 식이다. 내가 우려하는 건 그걸 마련했다고 해서 생리대가 안전해지느냐 하면 그게 아니라는 거다. 이번 사태 이전에도 생리불순이나 생리통은 흔한 부인과 질환이었다. 일회용 생리대가 정말 불안하면 증상이 없더라도 면 생리대를 써야 한다. 증상이 없으면 지금껏 사용하던 걸 그냥 써도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정도 발암물질의 검출은 먹는 음식에도 많다. 환경호르몬 문제는 자궁으로 들어가는 양보다 오히려 뇌로 들어가는 게 더 심각할 수 있다. 향수, 화장품같이 코로 들어가는 화학물질은 바로 뇌로 간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합성화학물질의 가장 핵심 노출원은 외부가 아니라 우리 인체 내부에 존재한다. 바로 지방조직이다. 합성화학물질은 지금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인체 내에 들어온다. 그중 인체가 배출을 잘 하는 것은 손쉽게 소변으로 내보낼 수 있는데 배출이 잘 안 되는 종류도 상당수다. 지용성이 높으면서 반감기가 긴 것들인데 일차로 지방조직 내에 저장된다. 유해성으로 따지자면 가장 위험한 종류라고 볼 수 있다. 지방조직 속 화학물질이 우리 장기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는가, 그게 훨씬 핵심적인 문제다.

현실적인 대책이 없나?

피할 수 없는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가장 현실성 있는 대책은 움직이는 것과 먹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인체로 들어온 화학물질이 장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수많은 화학물질 중에서 유명한 몇 가지의 노출을 피하면서 사는 것은 대부분 큰 의미가 없다. 다만 환경호르몬이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질병을 가진 경우에는 노출 피하기가 의미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생리불순이 심한 여성이 생리대를 바꾸면 증상이 호전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별 문제가 없는 여성이 이번에 발표된 생리대의 유해화학물질 농도를 비교해보며 생리대를 바꾼다고 해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본인은 어떤 생리대를 썼나?

보통 여성들이 꺼리는 탐폰을 썼다. 독성 쇼크로 유명한 부작용이 있는데, 그냥 썼다. 이유는 편리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먹고 마시고 숨 쉬고 사용하는 모든 것을 생리대 검사하는 수준으로 하면 안 나올 게 없다. 나는 환경을 통해 노출되는 아주 낮은 농도의 화학물질에 대한 만성적 노출이, 인체에서 많은 질병의 핵심 원인임을 입증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같이 수많은 먹을거리와 일상 생활용품이 하나씩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우려스럽다. 안전기준을 만든다고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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