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량진 지역의 편의점들은 상품 진열대를 제외한 테이블 공간이 넓다. 이 공간은 인근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의 주요 식사 장소이다. 지난 3월15일 오후 6시, 노량진역 인근 한 편의점에 놓인 테이블 일곱 개가 가득 찼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모인 수험생들은 삼각김밥·왕뚜껑·크래미·치즈볶이·불닭볶음면 따위를 손에 들고 각자 테이블을 하나씩 잡았다. 줄을 서서 계산하고, 또 줄을 서서 뜨거운 물을 받거나 전자레인지를 돌리고, 빈 테이블이 나올 때까지 차례를 기다렸다가 각자의 끼니거리로 저녁 식사를 마치기까지, 아무도 15분을 넘기지 않았다.

흙수저 청년들의 부실한 식사 ‘흙밥’을 결정하는 요인은 메뉴·장소·시간이다. 20~30대 청년층을 포함한 1인 가구가 혼자 식사를 할 때 가장 많이 선택하는 메뉴는 라면이다(아래 〈그림 3〉 참조). 밥과 반찬으로 구성된 백반에 이어 빵·김밥·샌드위치도 순위권을 차지했다. 이런 1인 가구의 ‘혼식’ 메뉴 순위는 백반-고기류-찌개-해산물 요리-중식으로 이어지는 ‘가족 식사’ 메뉴 순위와 크게 비교된다(〈1인가구 증가 양상 및 혼자 식사의 영양·식행태 분석〉 오유진, 2016).


청년들이 이런 간편 메뉴들로 배를 채우는 대표적인 장소는 편의점이다. 2011년 서울시 청년명예부시장팀 ‘청년암행어사’가 19~40세 청년 347명을 대상으로 한 〈먹을거리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40%가 ‘일주일에 1회 이상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한다’고 답했다(위 〈그림 1〉 참조). 물론 편의점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편의점 음식을 먹어도 천천히, 즐겁게 먹는다면 좋은 식사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편의점 식사는 ‘번갯불 식사’를 상징한다. 청년들이 편의점 식사를 하는 주요 이유가 바로 ‘밥 먹을 시간이 부족해서’(29.6%, 위 〈그림 2〉 참조)이다. 노량진 지역 한 편의점 점주는 “인근 수험생들이 공부하다가 쉬는 시간 10분 정도 짬을 내서 후다닥 라면·도시락 등으로 홀로 끼니를 해결하고 간다. 식당처럼 테이블과 의자가 갖춰져 있지만 천천히 식사를 하고 가는 손님은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바쁜 청년들은 밥을 거르기도 일쑤다. 질병관리본부의 〈2015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 연령대 가운데 19~29세의 아침 식사 결식률이 가장 높았다(아래 〈그림 4〉 참조). 20대 남자와 여자 모두 절반 가까이(남자 51.1%, 여자 46.9%) 아침을 굶으며 미래를 준비한다.

청년은 아침을 굶으며 미래를 준비한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청년들의 흙밥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은 역시 ‘돈’이다. 청년들이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결정적 이유 역시 ‘가격이 저렴해서’(46.9%, 위 〈그림 2〉 참조)이다. 주머니 사정과 부실한 식사의 관계는 지난 2월 청년유니온이 발표한 〈2016 구직자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4년제 대학 4학년 및 졸업유예 혹은 졸업 이후 취업을 준비 중인 만 29세 이하 청년 483명에게 부모의 지원 금액에 따른 항목별 생활비를 물었다. 교통비·통신비·학습공간비 등에 비해 주거비·식비가 유독 계층별 차이가 컸다. 부모에게 한 달 90만원 이상의 용돈을 받는 청년은 한 달 식비로 33만4000원을 쓰지만 30만원 미만의 용돈을 받는 청년은 20만7000원만 식비로 할당했다(아래 〈그림 6〉 참조). 청년들이 경제적 여유가 부족할 때 가장 먼저 줄이는 지출 가운데 하나도 식비(85%)인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유니온은 “청년 구직자의 압도적 다수가 식비를 먼저 줄인다고 답했다는 점에서, 청년 구직자의 경제적 빈곤이 영양과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청년들 밥상에는 특히 과일과 채소가 부족하다. 질병관리본부의 〈2014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19~29세 청년 가운데 과일 및 채소를 하루 500g 이상 섭취하는 인구 비율은 25%로, 모든 연령대 가운데 가장 낮다(위 〈그림 5〉 왼쪽 그래프). 과일·채소는 소득수준에 따라 그 섭취 비율이 뚜렷이 차이나기도 한다(위 〈그림 5〉 오른쪽 그래프). 잘살수록 더 많이, 못살수록 더 적게 먹는다.

신선한 식재료 대신 편의점 등에서 허겁지겁 저렴한 인스턴트와 가공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생활은 청년들의 건강을 위태롭게 만든다. 학술논문 〈비만도에 따른 대학생의 혼자 식사 및 함께하는 식사 시의 식행동 비교〉(이영미 외, 2012)에 따르면 혼자 식사하는 20대 비만인은 정상 또는 저체중군에 비해 빨리, 더 많이 먹고 배가 불러도 음식이 남으면 더 먹는다. 〈한국 성인에서 식사 속도와 심혈관대사 위험요인과의 관련성〉(김도훈, 2012)에 따르면 식사를 빨리 할수록 비만도와 혈중 중성지방 수치가 높게 보고된다.

이런 연구 결과는 실제 국민건강 통계로 나타난다. 2014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 20대 남성과 30대 여성의 초고도비만율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또 그 증가율도 청년층이 가장 높았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20~30대 청년층의 초고도비만율은 최대 6배 이상 급증했다(아래 〈그림 7〉 참조).

혈기왕성할 것 같은 청년들도 이제 많이 아프다. 2015년부터 전주시에서는 2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청년 건강검진을 실시했는데, 검진을 받은 청년 10명 가운데 3명이 ‘유소견자’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수검자 기준으로 ‘고중성지방’과 ‘간기능 수치 이상’ 판정을 받은 청년이 수검자 가운데 10%를 넘었다. ‘고콜레스테롤’ ‘신장기능 수치 이상’ ‘요당·요단백 검출’ 소견을 보인 이도 많았다(아래 〈그림 8〉 참조).

하지만 이것도 그나마 건강검진을 받아야 이상 증상을 확인하고 치료할 수 있다. 많은 청년들은 아파도 그냥 버틴다. 연령별 병의원 미충족 의료율을 나타낸 아래 〈그림 9〉를 보자. 병의원 미충족 의료율이란, 병의원에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한 비율을 말한다. 〈2015 국민건강통계〉 결과 20대 13.8%, 30대 15.5%가 가고 싶을 때 병원에 가지 못했다. 다른 연령대보다 수치가 높다. 청년들은 ‘시간이 없어서’ ‘증상이 가벼워서’ ‘경제적인 이유로’ 아파도 참았다(아래 〈그림 10〉 참조).

취업 준비생 박성식씨(가명·26)는 시험공부를 하거나 자기소개서를 쓸 때 잠을 깨기 위해 커피와 핫식스·레드불과 같은 고카페인 음료를 많이 마셨다. 그래서인지 취업 준비를 하면서부터 늘 위염과 편두통에 시달려왔다. 하지만 병원 가기를 몇 년째 미루다가 최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속이 아파서 내과에 갔다. 내시경 검사로 확인한 위에는 물집이 잔뜩 잡혀 있었다. 의사는 “위에 구멍이 뚫릴 지경이다. 당장 커피를 끊으라”고 했다. 그러나 박씨는 밤새 자기소개서를 쓰며 ‘깨어 있기 위해’ 다시 커피를 마셔버렸다. 그는 “나 말고 다른 친구들도 다 그렇게 사니까…. 취업 준비에 신경 쓸게 많은데 건강 생각까지 하며 살 겨를이 없다”라고 말했다.

청년은 이제 사실상 ‘건강 취약계층’이다. 취업을 위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부실하게 먹고 불규칙하게 자면서, 병원에 가 자신의 건강 상태를 체크할 시간적·심리적 여유도 잃어버렸다. 이들을 위한 건강관리가 필요한데도, 국가 정책상 청년 건강은 관리 사각지대에 있다. 보건복지부는 5년마다 한 번씩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을 세워 전 국민의 건강관리 로드맵을 짠다. 특히 건강 취약계층에 관해서는 ‘인구 집단 건강관리’가 들어간다. 모성건강·영유아건강·노인건강·근로자건강·군인건강·학교보건·취약가정건강·장애인건강에 관해서는 따로 세부 계획들을 세우며 건강관리 취약계층을 관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청년’은 없다. 고혈압·고콜레스테롤혈증·당뇨병 등 만성 질환에 관한 국가 통계에서도 20대는 아예 빠져 있다.

ⓒ전주시 보건소2015년부터 전주시는 2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청년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청년들에게는 건강검진 기회가 없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학교에서 학생 건강검진을 받거나 청소년 건강에 관한 여러 국가 정책으로 관리가 되고, 취업한 이후로는 직장 의료검진 등으로 자신의 건강을 돌볼 수 있지만, 그 사이 기간에는 어느 누구도 건강 상태를 물어봐주지 않는다. 건강보험 지역 가입자로 국민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시기도 만 40세부터다. 40세 이전의 취업하지 못한 청년들은 건강검진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다.

전주시 등 몇몇 지자체, 청년건강검진 지원

이 문제를 인식하고 몇몇 지방자치단체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건강검진 사업을 펼치기도 한다. 대표적인 곳이 전북 전주시다. 전주시는 2015년부터 만 19~27세 전주시민 혹은 전주 소재 대학생에게 무료 건강검진을 해주는 청년건강검진 사업을 시작했다. 검사 항목은 혈액검사 12종, 요검사 2종, 엑스레이 검사 등 총 15종이다. 반응이 좋고 대상을 더 확대해달라는 건의가 많아 지난해부터는 만 30세까지로 나이 기준을 넓혔다. 2015년과 2016년 각각 4507명, 5129명의 전주시 청년들이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보건소를 찾았다. 올해도 2월까지 벌써 1261명이 다녀갔다. 지난해 이 사업으로 건강검진을 받은 박준석씨(24)는 올해도 추가 검진을 위해 보건소에 들를 예정이다. 박씨는 “평소 중성지방과 간 수치가 높아 걱정이 됐는데 비용 부담 없이 이렇게 주기적으로 체크하면서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 안심이 된다”라고 말했다.

전주시에 이어 전라북도 무주군도 올해 청년건강검진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부터 경기도 고양시 보건소에서 시작한 ‘찾아가는 2030 청년건강지킴 사업’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출발했다. 고양시 보건소는 바쁜 청년들을 위해 도서관·대학·취업준비 기관 등을 찾아 간단한 검진을 해준다. 고양시 보건소 관계자는 “실제 유병자를 찾는 일이 많지는 않지만, 이런 사업을 통해 식습관이 나쁘고 운동량이 적은 청년들에게 평소 건강관리의 필요성을 환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혜택을 받는 대상이 한정되기는 하지만 서울시도 관련 프로그램이 있다. 서울시복지재단은 KMI한국의학연구소와 기부 협약을 맺고 저소득 근로 청년 100명에게 건강검진 기회를 줬다. 검진을 신청한 김종원씨(30)는 “만약 내 돈 내고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다면 아마 서른다섯 살은 넘은 뒤에야 검진을 생각해보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직 일부 지자체에 한정된 청년건강검진 정책을 전 청년들을 대상으로 확대하기 위한 입법안도 제안됐다. 지난해 8월 국민의당 김광수 의원은 20·30대 청년을 국가건강검진 체계에 포함하도록 하는 ‘2030 청년건강검진 지원법’을 발의했다. 20·30대가 만성 질환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인 만큼, 건강검진 사각지대에 있는 2030 세대를 국가 건강검진 대상자로 포함토록 하자는 것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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