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호기심을 가진 이들을 많이 만난다. 해외에서 온 투자자는 물론이고 고위 관료·정치인·기자 등 다양한 분야 종사자를 만나는데, 그때마다 공통적으로 듣는 질문이 있다. “한국에는 어떤 스타트업이 있나요?” 매번 답하기가 곤혹스럽다.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스타트업이 많아서 한 번에 딱 잘라 대답하기가 어려워서다. 반면 일반인에게 이런 질문은 생소하다. 스타트업이라는 용어를 많이 들어봤지만 정확한 정의를 모르는 데다 딱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오픈서베이가 공동으로 스타트업에 관한 온라인 조사를 실시했다. 대기업 재직자 800명, 대학생 200명에게 물었는데, 안타깝게도 응답자의 80%가 스타트업 기업을 떠올리지 못했다. 응답자의 20% 가운데 대기업 재직자는 쿠팡·배달의 민족·우버·직방·김기사·요기요 등을 떠올렸고, 대학생은 쿠팡·쏘카·배달의 민족·미미박스·브이터치 순서로 응답했다. 전반적으로 스타트업에 대한 인식은 낮았지만, 쿠팡과 배달의 민족에 대한 인지도는 높았다.

일각에서는 “쿠팡처럼 큰 기업도 스타트업인가?” 하고 묻는다. 벤처 투자자에게 투자를 받아 독특한 기술이나 사업 모델로 급성장하면서 주식시장에 상장하지 않았거나 대기업에 매각되지 않은 회사를 스타트업이라고 한다. 이 기준으로 보면 기업 가치 5조원으로 평가받으며 일본 소프트뱅크에서 1조원을 투자받은 쿠팡도 스타트업에 속한다. 현재 기업 가치 70조원으로 평가받는 미국의 우버도 스타트업이다.

한눈에 한국의 주요 스타트업을 볼 수 있도록 지도를 만들어보았다. 전자상거래, 사물 인터넷, 콘텐츠 등 분야별로 10억원 이상의 투자를 받은 주요 스타트업 로고를 모아 배치한 것이다(http://startupall.kr/map). 104개사가 들어 있는 지도(아래)에서 알 수 있듯, 이전에 비해 스타트업 수가 상당히 늘었다. 아직 스타트업의 성지 격인 미국 실리콘밸리나 스타트업 시장 중국, 스타트업 강국 이스라엘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웬만한 나라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다양하고 많은 스타트업이 등장했고, 성장해가고 있다.

한국에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적은 이유

올해 초 실리콘밸리에서 330억원을 투자받은 미미박스, 명문 벤처캐피털인 세쿼이아캐피털에서 투자받은 데일리호텔 등 전자상거래 분야에 유망한 기업이 다수 포진해 있다. 공유경제 분야에는 지난해 베인캐피털에서 180억원을 투자받은 쏘카가 돋보인다.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카메라앱을 만든 다크호스 스타트업이 있는데, 이 가운데 레트리카는 전 세계에서 2억5000만이 넘는 다운로드 수를 기록한다. 필터 카메라앱 레트리카를 제작한 벤티케익은 미국 벤처캐피털로부터 70억원 투자 유치를 약속받았다. 몰디브라는 카메라앱으로 유명한 젤리버스는 전 세계에서 6000만이 넘는 다운로드 수를 기록 중이다.

한국에서 뜨는 스타트업은 기업시장(B2B)을 상대하기보다 일반 소비자(B2C)를 대상으로 하는 회사가 대부분이다. 어려운 기술력에 기반을 두지 않고 서비스를 위주로 하는 배달앱 같은 창업회사가 주를 이루다 보니, 균형 있는 발전이 더딘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에서 각광받는 하드웨어 스타트업은 적다. 충분한 기술과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제와 투자를 아끼지 않고, 대기업 종사자가 스타트업에 가서 기술을 기반으로 한 창업이 가능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기자명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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