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에테리움(Ethereum)이 뭘 뜻하는지 설명할 수 있다면, 아마도 해당 분야의 상당한 전문가이거나 아니면 심각한 너드(괴짜)일 것이다. 지금까지 극소수의 개발자에게만 알려져 있던 에테리움은 2015년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을지도 모른다. 〈시사IN〉이 에테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에 주목하는 이유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인 비탈릭 부테린의 이름은 한국에서 에테리움보다 더 낯설다. 하지만 지난 12월12~13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인사이드 비트코인 콘퍼런스’에 참석한 그는 단연 스타였다. 그는 암호 화폐의 미래에 관한 기조연설을 하고 패널 토론에 참가하며 행사장의 주인공으로 대접받았다. 그는 어쩌면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의 뒤를 잇는 ‘IT 혁신가’ 반열에 오를지도 모른다.

비탈릭 부테린은 2014년 11월 신기술 분야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월드 테크놀로지 어워드’의 IT 소프트웨어 수상자로 뽑혀 주목을 받았다. 이 상은 〈포브스〉 〈타임〉 등이 공동 주관했고 주요 경쟁 후보는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였다. 왜 저커버그가 밀렸을까 하며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정을 알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비트코인 인사이드 사무국 제공〈/font〉〈/div〉러시아계 캐나다인인 에테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위)은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익혔다.
ⓒ블로터 제공 러시아계 캐나다인인 에테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위)은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익혔다.

“에테리움은 뭐든지 할 수 있다. 비트코인 등 다른 가상화폐는 각각의 고유한 기능을 수행한다. 에테리움은 그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포괄적인 플랫폼이다.” 12월13일 킨텍스 전시장 옆 커피숍에서 인터뷰차 만난 그는 천진난만한 대학생 여행자 같았지만 에테리움 이야기가 나오면 진지해졌다. 셔츠에 패딩을 걸쳐 입은 그의 왼손에 찬 시계는 트랜지스터를 노출하고 있었다. 너드 혹은 천재.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에테리움은, 자바나 C++와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이기도 하고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을 구동하는 클라우딩 컴퓨터 플랫폼이지만, 뭘 어떻게 설명해도 일반인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에테리움은 서버와 클라이언트로 대변되는 지금까지의 인터넷 규약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혁명적 시도라는 점이다. 웹이든 모바일이든 현재 모든 인터넷 서비스는 ‘서버’라는 존재가 어딘가에 물리적으로 존재해서, 그 서버를 중심으로 일을 처리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하지만 에테리움 네트워크에는 서버가 없다. 그러니까 분명히 뭔가가 일어나는데 이 서비스를 정확히 누가 운영하고 있는지 꼬집어낼 수가 없다.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에테리움은 현재 테스트 버전이 공개된 상태이며 2015년 3월15일 서비스를 오픈할 예정이다.

“에테리움 네트워크는 특정한 인물이나 회사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용자가 동등한 처지에서 분권화(de-centralized)된 구조 아래 참여한다.” 에테리움의 근본 아이디어가 화폐 분야에 응용된 것이 비트코인이라고 할 수 있다(물론 비트코인은 2009년에 탄생했고 부테린은 에테리움 개념을 2013년에 주창했지만, 비트코인의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도 에테리움과 유사한 개념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테린은 “실생활에서 에테리움이 적용될 분야는 많다. (드롭박스 같은) 파일 저장 서비스, 클라우딩 컴퓨팅, 금융 분야에서 인기를 끌 것이다. 에테리움 생태계 안에서 주식을 발행하거나 각종 계약 상품(스마트 콘트랙트)을 만들어낼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비트코인 인사이드 사무국 제공〈/font〉〈/div〉지난 12월에 열린 ‘인사이드 비트코인 콘퍼런스’(위)에서 비탈릭 부테린은 단연 스타였다.
ⓒ비트코인 인사이드 사무국 제공 지난 12월에 열린 ‘인사이드 비트코인 콘퍼런스’(위)에서 비탈릭 부테린은 단연 스타였다.

 

에테리움 위해 크라우드 펀딩으로 165억원 모금
그토록 에테리움의 미래가 밝다면 이걸 발명한 부테린은 떼돈을 벌게 되는 걸까? 부테린과 그의 동료들은 지난여름 에테리움 재단을 세우고 시스템 개발을 위한 공개 모금을 했는데 무려 165억원이 모였다. 크라우드 펀딩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모금 실적이었다. “여러 번 나눠 진행된 투자가 아니라 1회 투자만 따지면 역대 최고액이었다”라고 부테린은 말했다.

“돈? 글쎄. 우리가 설립한 에테리움 재단은 비영리 기관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공개로 모은 돈은 개발자들의 월급과 사무실 운영비용 등으로 쓰고 있다. 나도 월급을 받고 일한다. 에테리움은 누구나 참여해서 기여할 수 있는 사업이다.”

이 지점에서 그는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와 이별한다. 특허를 낸다든지 아이디어를 숨기고 혼자 개발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벼락부자가 될 수는 없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서로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공유하지 않았다면 에테리움을 만들 수 없었을 거다. 굳이 큰돈을 벌 욕심은 없다.” 그는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태연히 말했다.

에테리움은 특허가 없다. 오는 3월15일 에테리움이 완전히 공개되면 그다음 날 누가 그대로 베껴 유사 서비스를 출시해도 할 말이 없다. “베껴도 상관없다. 하지만 네트워크 플랫폼은 대중이 얼마나 많이 사용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 사람들이 아마 베낀 플랫폼을 따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40명 가까운 개발자가 일하고 있는 에테리움 재단은 스위스, 베를린, 런던 등에 본부를 두고 있다. 분산 네트워크를 만드는 조직답게 본부도 분산되어 있는 셈이다. 부테린 자신은 러시아계 캐나다인으로 토론토에 살고 있지만 “캐나다보다 유럽이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도 적고 개발자 사이에 소통도 쉬워서” 본부를 유럽 중심으로 운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모스크바 인근 콜롬나 시에서 태어났지만 6개월 만에 가족 품에 안겨 캐나다로 이주했다. 텔레그램 개발자도 러시아 출신 이민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왜 요즘 러시아 출신 개발자들이 뜨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세계 프로그래밍 대회 입상자를 보면 러시아 출신이 많다”라며 어릴 때부터 프로그램을 짜는 개발자 저변이 넓다는 점을 강조했다. 부테린의 아버지도 개발자였다고 한다.

부테린은 캐나다 워털루 대학을 1년 다니다 자퇴했다. 그가 프로그래밍을 배운 건 정규 교육을 통해서가 아니다. “거의 다 독학한 것 같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사립이었는데 라틴어 같은 걸 가르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는 열일곱 살 때 비트코인에 관심을 갖게 되어 〈비트코인 매거진〉이라는 잡지를 창간했고 여러 오픈 소스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현재 토론토와 유럽 본부들을 오가며 에테리움 출시에 매진하고 있는 그는 지난 1년간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회의에 초청 강연을 다니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이제부터다. 2015년 부테린과 에테리움 재단이 과연 신세계를 펼칠지, 아니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지 전 세계 IT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기자명 신호철 (뉴스 페퍼민트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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