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목장주 오완수씨(35·충남 천안)는 잊지 못할 한 해를 보내는 중이다. 살면서 이토록 삶이 들썩인 적은 처음이다. 목장주에서 실업자로 그리고 막노동꾼으로…. 순식간에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오씨는 지금 생각해도 그게 누구 탓인지를 모르겠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발단은 구제역이었다. 2011년 새해를 구제역과 함께 맞았다. 1월1일 이웃 목장이 구제역 의심 신고를 했고, 다음 날 양성 판정을 받았다. 규정에 따라 오씨도 소 120마리를 ‘예방적 살처분’했다. 중학교 시절 목장을 차리겠다고 결심한 뒤 농고·농대를 나와 차근차근 키워온 꿈이 날아가는 데 하루면 충분했다.  


ⓒ시사IN 조남진구제역 파동 다섯 달 만에 오완수씨 목장에서 소 울음소리가 울렸다. 올해 초 구제역으로 키우던 소를 다 묻은 오씨에게 생후 15일 된 송아지는 희망의 씨앗이다.

오씨는 한 달 동안 집 안에서 텔레비전만 봤다. 그 또한 편한 일은 아니었다. 텔레비전을 틀었다 하면 〈동물농장〉과 〈긴급구조 SOS〉가 나왔다. 방송을 보고 있자니 잃은 소가 자꾸 생각났다. 남들이 보기에 다 똑같이 생겼을지 몰라도 그에게는 면면이 기억나는 120마리였다. 시에서 ‘구제역 후유증’에 대해 조사하러 나온 공무원 진단지에 따르면, 그는 ‘심각’ 상태였다. ‘일주일에 몇 번씩 소가 생각나십니까’ 따위가 적힌 설문지에 ‘심각’ 등급이 안 나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오씨는 반문했다. 병원도 다녔다. 자꾸 뒷골이 당겼다. 혹시 혈관이 터졌나 싶어 MRI까지 찍었지만 별 이상이 없었다. 계속 머리가 아파 한의원을 찾았다. 맥을 짚은 한의사가 화병이라고 진단했다. 72세 노모도 “눈만 감으면 소 생각이 난다”라면서 잠을 못 이뤄 천안 시내 신경정신과를 한 달 정도 다녔다.

오씨처럼 자식이자 재산인 소·돼지를 잃은 농가는 모두 6241가구이다(매몰 두수는 소 1만5864마리, 돼지 331만8298마리. 전체 매몰 두수는 347만9962마리이다. 염소·사슴 포함). 그들은 대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기자가 만난 구제역 피해 농민들은 하나같이 짧게는 며칠, 길게는 한 달 동안 두문불출했다고 말했다. ‘구제역 바이러스를 옮겼다는 구설에 오를까봐’ ‘우울해서’ 등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그렇게 집 안에서 한 달을 보낸 그는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해 2월부터 막노동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2학년과 두 살배기 자녀, 그리고 아내와 부모님을 부양하려면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는 데도 몸 쓰는 일이 도움이 되리라 기대했다.

경기도를 오가며 비닐하우스 철거 작업을 했다. 세상에 호락호락한 일은 없었다. 하루 10만원이라는 일급에 한 달만 부지런히 일하면 300만원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몸이 고되었고, 일도 그만큼 없었다. 두 달 일했지만 손에 쥔 돈은 200만원 남짓. 나머지 200만원은 아직 못 받았다. 그래도 오씨는 “그때의 경험으로 세상 보는 눈이 넓어졌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동탄 신도시에서 철거될 줄 알고도 비닐하우스에서 버섯을 키우는 사람들을 만났다. 재개발 보상비를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 버섯 농사를 짓는다는 도시 사람들을 보며 오씨는 ‘세상에 쉽게 돈 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동시에 구제역 보상금 문제가 떠올랐다.

절반만 받은 구제역 매몰 보상금은 축사 대출금과 사료값을 갚는 데 썼다. 나머지 돈은 언제 받을지 기약이 없다. 이제 시 공무원에게 보상금 문의전화를 하기도 민망하다. 매번 다음 달에는 지급된다고 말하는 공무원에게 마치 빚 독촉하는 기분이어서다. 그럴 때마다 오씨는 생각했다.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지난 3월26일에는 공문 한 장이 배달되어왔다. 가축 재입식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통지서를 받아들고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금을 주지도 않고 소를 들이라는 말이 기가 막혔다. 


ⓒ조우혜서로 다른 죽음이 마주보고 있다. 구제역 광풍으로 생매장당한 소·돼지 매몰지 건너편에 공동묘지가 보인다.

농림수산식품부 한 관계자에 따르면, 지금까지 전액 보상금을 받은 사람은 “말해줄 수 없을 정도로 적다”. 6월2일 현재까지 구제역 농가에 지급된 보상금은 전체의 47.2%이다(전체 보상금은 1조8617억원으로 추정된다). 보상금 지급이 늦어진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고 담당 공무원은 말했다. 구제역 기간이 길고, 매몰 농가와 두수가 많아서 실태 파악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 언론에서 보상금을 많이 받은 듯이 보도해 검찰·경찰 조사와 감사원 감사를 거치는 등 절차가 길어진 것도 한몫했다고 한다.

농기계 공장에 임시 취업해 재기 모색

날이 풀리면서 오씨는 두 달간의 막노동을 끝냈다. 집 근처 농기계 공장에 임시 취업했다. 겨우내 묵혀두었던 농기계를 정비하는 봄이 오자, 2007년에 따놓았던 농기계 정비 자격증이 효력을 발휘했다. 4월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220만원 정도를 번다.

요즘 오완수씨는 매몰지가 신경 쓰인다. 집에서 500m 정도 떨어진 매몰지 바로 앞에 논이 있다. 이웃 소유이다. 언론에서 침출수 문제가 보도될 때마다 이웃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진다. 그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오씨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 소를 묻고 싶어서 묻은 것도 아닌지라 억울하기도 하다. 지하수를 먹는 오씨도 걱정이 되긴 하지만 별일 없을 거라 믿는다.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씨는 다시 목장에 소 울음 가득할 날을 꿈꾼다. 10년에 걸쳐 키워놓은 목장이기에 그보다 더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다. 5월29일 다섯 달 만에 축사에 들어온 송아지가 그 희망의 씨앗이다. 동네 사람이 분양해준, 태어난 지 막 보름이 지난 송아지다. “아빠처럼 목장 하는 게 꿈”이라는 둘째아들은 아침마다 소를 보고 등교한다. 노모도 조금씩 웃는다. 다시 시작이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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