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짧고도 길었던 사랑 이야기 [역사 속으로] 김형민 (SBS Biz PD) 사랑은 곧잘 비극적이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이룰 수 없는 사랑, 이뤄져서는 안 될 사랑 등등. 사랑의 작대기들은 맞아떨어지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비극의 크기 또한 각양각색이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만 남긴 채 가물가물 추억 속에만 걸쳐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평생에 지울 수 없는 화인(火印)으로 마음속을 갈라 흐르는 은하수로,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으로 또박또박 새겨지는 사랑도 많다. 1944년 3월13일 해방을 한 해 앞두고 숨져간 여성 독립운동가 김마리아(1892~1944)와 조 ‘3·7 완전작전’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주는 교훈 [김형민PD의 역사 속으로] 김형민 (SBS Biz PD) 파국적이라는 표현이 걸맞을 인구절벽 문제로, 전쟁 이후 유지해온 ‘60만 대군’ 한국군의 편제도 바뀌는 중이다. 오랜 전통을 지닌 ‘메이커 사단’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술자리에서 기묘하게도 사라지는 부대 출신들이 많아 한동안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가 안줏거리로 올랐다. 그때 “우리 부대는 절대 안 없어진다”라며 기염(?)을 토하는 이가 있었다. 3사단 출신이었다. 이른바 백골부대.어느 사단인들 피맺힌 사연 한 자락 없을까마는 3사단 역시 우리 현대사, 6·25 전쟁사와 깊고도 짙게 엇갈리는 역사를 지니고 있 바위를 굴리려면 있는 힘껏 함께 김형민(SBS Biz PD) 〈시사IN〉에서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를 처음 시작한 게 2015년 1월이었으니 거의 8년을 채운 셈이고, 이 글은 이 난을 통해서는 마지막으로 전하는 387번째 역사 이야기가 된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찰나 같을 ‘겨우’ 8년이지만 8년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우리 눈앞에서 역사가 되어갔는지는 너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을 거야.오늘은 마지막으로 네게 무슨 얘기를 해줄까 곰곰이 생각했다. 8년간의 역사 이야기를 어떻게 맺어야 할까 머리를 긁적이며 궁싯거리다가 문득 이 글을 쓰는 일요일 아침이 크리스마스라는 데 생각이 미 그 일본인 경찰서장은 왜 ‘조센징’을 지켰을까 김형민(SBS Biz PD) 2023년은 매우 끔찍한 역사적 사건의 100주기다. 일본의 관동(간토) 대지진과 조선인 대학살이 벌어진 해가 1923년이었거든. 1923년 9월1일 오전 11시58분 일본의 관동 지역을 거대한 지진파가 휩쓸고 지나갔다. 마침 점심시간으로 가정집이나 식당에서 밥을 짓고 요리를 할 때였기에 건물이 무너지면서 거대한 불길이 타올랐다. 지진 전 상륙했던 태풍의 여파로 강풍마저 불어대는 바람에 대화재가 도쿄 시내를 비롯한 관동 지역을 삼켰다. 사망자 10만여 명 가운데 불타 죽은 사람이 태반이었다고 하니 그 참상을 짐작할 수 있을 거야.당 그 주지사는 왜 파업 진압을 거부했을까 김형민 (SBS Biz PD) 1886년 5월1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8시간 노동제’를 외치며 노동자들 수만 명이 총파업에 나섰다. 5월3일 총파업 진행 도중 어느 공장에서 경찰이 쏜 총에 사상자가 발생하자 격분한 노동자들은 이튿날인 5월4일 헤이마켓 광장에서 대규모 항의시위를 벌였어. 시위는 일단 평화적으로 전개되어 밤 10시까지도 이렇다 할 충돌은 없었지. 하지만 광장에 남아 있던 소수의 노동자들을 향해 경찰이 곤봉을 휘두르기 시작하면서 사태는 비극으로 치닫게 돼. 아수라장 속에서 별안간 누가 던졌는지 알 수 없는 사제폭탄이 경찰들을 쓰러뜨린 거야. 골리앗 발길질에 맞선 그라운드의 다윗들 김형민(SBS Biz PD) 카타르월드컵에서 이란 선수단이 경기 전 국가가 울려 퍼질 때 일제히 함구해버린 이야기를 들었을 거야. 이란에서 벌어지는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고 정부의 살인적 탄압에 반대하는 의미였지. “순교자여, 그대의 함성은 역사에 울려 퍼지리. 인내하며 이어나가는 영원한 그 이름,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여” 운운하는 이란 국가의 가사를 ‘씹으면서’ 그들은 소리 없이 외쳤던 거야. “순교자는 과연 누구인가. 공화국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 뉴스를 들은 순간부터 아빠는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 팀 다음으로 이란 팀을 열렬히 응원하기로 했다. 오늘 마피아와의 전쟁 이끈 이탈리아 열혈 검사들 김형민(SBS Biz PD) 요즘 네 엄마는 OTT 플랫폼에서 ‘추억의 명화’들을 끼고 산다. 며칠 전에는 〈대부〉 1·2·3을 정주행하더구나. 알다시피 〈대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콜레오네 가문이 대를 이어 마피아 조직을 운영해가는 이야기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정작 ‘마피아’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아. 마피아가 제작진에게 “마피아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협박했기 때문이야. 그 대안으로 나온 게 영화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패밀리(family)’라고 해.마피아는 막강하게 미국의 지하 세계를 장악한 것은 물론이고 여러 영역에서 불가사의할 재난의 희생양 된 군인 명예를 살려낸 한 소년 김형민(SBS Biz PD) 영화 〈죠스〉에 어부 퀸트가 자신의 상어 공포 체험을 털어놓는 장면이 나온다. 퀸트는 태평양전쟁에 참전했다가 승선한 배가 일본군 잠수함의 어뢰를 맞고 침몰하면서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를 헤매게 돼. 그때의 회고담. “피 냄새를 맡고 상어가 몰려왔지. 상어의 눈은 검어. 마치 인형의 눈처럼 생명이 없는 눈 같지. 그 눈으로 빤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달려들지. 상어들은 가까운 사람부터 차례로 공격했고 물린 사람은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댔지.”퀸트의 얘기는 실화였다. 그가 탄 군함은 ‘인디애나폴리스’호라는 이름의 중순양함이었어. 이 배는 비밀 결코 홀대받을 수 없는 의병과 독립의 깃발 김형민(SBS Biz PD) 나폴레옹이 유럽을 호령하던 즈음 스페인은 한심한 왕가의 지배하에 있었어. 카를로스 4세(1748~1819)는 왕비가 다른 남자와 놀아나는 것도 몰랐고, 되레 그 남자를 요직에 기용하며 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만든 멍청한 남자였다. 왕비의 정부(情夫) 고도이는 나폴레옹과 이런 거래를 하지. “대륙봉쇄령을 어기고 영국과 교역하는 포르투갈이 괘씸하시죠? 스페인이 길을 빌려 드리겠습니다. 대신 포르투갈을 나눠 가지시지요.” 이유는 간단했어. “포르투갈을 3등분하여 스페인과 프랑스가 나눠 가지고 3등분한 땅의 하나를 고도이와 그의 가족에게 공국 하얗게 생명을 불태운 성냥 공장 이야기 김형민(SBS Biz PD) 요즘은 거의 구경하기 힘든 물건이 됐지만 한때 성냥은 불을 피우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성냥은 붉은 꼭지가 달린 ‘적린(赤燐)’이야. 이 적린이 개발되기 전 세상의 성냥 공장 노동자들은 ‘백린(白燐)’ 성냥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백린 성냥은 그야말로 노동자들에게 악마 같은 존재였어. “백린 성냥은 제조 과정에서 독가스를 내뿜는 데다 피부에도 심각한 손상을 입히는 등 인체에 치명적인 위험을 지닌 것이었다(〈한겨레〉 ‘최우성의 동화경제사’).” 오늘 들려줄 이야기의 주인공은 백린에 맞선, 정확히 말하면 사 그렇게 사진 한 장은 역사의 증거로 남았다 김형민(SBS Biz PD) 알다시피 인천은 첫 개항지이고 일제강점기부터 공업단지가 조성됐던 곳이야. 수십 년 동안 수도 없는 사람들이 인천 바닥에 떨어져 몸뚱이가 부서져라 일하며 가족을 먹여 살리고 꿈을 키워갔지. 동일방직이라는 공장도 그랬어. 동일방직의 원래 이름은 동양방적으로 일제의 군수공장이었는데, 해방 이후 동일방직으로 이름을 바꿔 가동을 이어간다. 방직공장 성격상 이 공장 노동자의 대부분은 여성이었지.“1972년 전국섬유노조 동일방직지부 조합원은 1383명이었다. 그 가운데 1204명이 여성이었다. 그런데도 조합 간부는 회사 말 잘 듣는 기술직 남자 죽음을 무릅쓰고 사랑을 선택하다 김형민(SBS Biz PD)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고 ‘도덕 경찰’에게 체포됐다가 의문사한 이란 여성이자 쿠르드족인 마흐사 아미니(본명 지나 아미니) 사건 이후 이란에서는 항의 시위가 폭발하고 있다. 이란 여성들은 히잡을 불태우며 분노하고 있다. 강경 보수 성직자 출신인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의 행보에 반발한 이들도 시위 대열에 합세했어. 이란 전역에서 벌어진 유혈 시위에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를 들었을 거야.이슬람 혁명 이전 이란 여성들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자유와 권리를 향유했다. 학교는 남녀공학이 되었고, 여성의 사회적·정치적 진 한국전쟁에 참전한 영국군 부대의 용기 김형민(SBS Biz PD) 지난 9월8일 세상을 떠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1926년생이다. 20세기의 역사적 증인이라 할 그녀는 자동차 정비병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최후의 국가원수였고, 한국전쟁의 일부 기간에는 영국 여왕이었다. 그리고 영국은 유엔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군대를 파견한 나라였지. 그중에는 오늘 얘기할 영국군 29여단 글로스터 대대도 포함돼 있었어.1951년 초 압록강까지 진군했던 국군과 유엔군의 뒤통수를 호되게 후려치고 중공군은 거침없이 북위 38°선을 넘었다. 유엔군은 북위 37°선까지 후퇴하게 되지. 평택과 삼척을 간절함은 때로 강력함을 이긴다 김형민(SBS Biz PD) 올해는 월드컵의 해다. 축구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월드컵이나 각종 국가대항전에는 놀라울 만큼 열광적인 관심을 보일 때가 많아. 누군가는 그 이유로 축구가 전쟁과 가장 비슷한 형태의 스포츠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몸싸움이 적당히 허용되는 경기이고 기술과 체력과 전술로 상대방을 압도할 수도 있으며 나라와 나라, 클럽과 클럽 간의 경쟁심과 호승지심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스포츠라는 뜻이야. 더하여 축구는 그 나라 사람들의 기질과 문화, 때로는 역사까지 녹여내는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기도 하지. 오늘은 축구 경기에서 다윗의 승리 같은 기적 식민지 투쟁에 건넨 미셸의 붉은 스카프 김형민(SBS Biz PD) 1980년 5월 광주를 일컫는 명칭은 매우 다양하다. 오랫동안 ‘광주사태’라 불렸던 5·18은 이후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명칭을 얻었지만 ‘광주항쟁’이라는 단어도 자주 쓰이고, 어떤 이들은 한때 ‘광주 코뮌’이라는 이색적인 호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시민들에 의해 민주적·자치적으로 운영된 정치공동체 ‘코뮌’을 1980년 광주에 대입시킨 건 여러 의미가 있을 것 같구나. 시민들 스스로 질서를 지키고 서로를 일으킨 공동체로서의 광주에 더하여, ‘파리 코뮌’의 비장한 최후에서 5월 광주의 마지막 날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1871년 프랑 지역주의라는 골리앗에게 대들었던 다윗들 김형민(SBS Biz PD) 며칠 전 선배의 상가에 들렀다. 조의를 표하고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선배는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으로 화두를 열고 집안 사연을 늘어놓았어. 집안에 사람 하나 잘못 들어오면 어떻게 된다는 둥, 명색이 큰며느리가 아프다고 발인 날만 오는 법이 어디 있냐는 둥 얘기들을 쏟아냈지. 듣는 둥 마는 둥 고개 끄덕이고 있는데 말끝에 매달린 한마디가 벼락처럼 귓전을 쳤다. “누가 전라도 여자 아니랄까 봐.”순간 아빠는 고민했다. 단호하게 ‘그따위 말 하지 마십시오’ 오금을 박아줄까. 어차피 남의 일이니 그냥 넘어갈까. 그런데 아즈텍 제국 무너뜨린 ‘작은 손’들의 연대 김형민(SBS Biz PD) ‘세계사 속의 다윗과 골리앗’ 얘기를 들으면서 오해하지 말았으면 하는 점이 하나 있다. 역사 속에서 인간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 약자의 편에 서서 거인과 맞서 투쟁한 ‘다윗’들을 기억하되, 역사를 선악 구도로 나눠 어느 쪽이 정의롭고 어느 쪽이 불의냐를 가리려 들 필요는 없다는 거야. 오늘은 그리 정의롭지도 희생적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매우 탐욕스웠지만, 터무니없는 열세를 딛고 거대한 상대를 거꾸러뜨려 역사를 바꾼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 이름은 에르난 코르테스(1485~1547).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지 초대 경찰국장의 수상한 행각 김형민(SBS Biz PD) 학살의 주역들이 대놓고 사람들을 깔아뭉개던 1980년대의 대한민국이었지만 용감한 젊은이들의 싸움이 멈춘 적은 없었다. 권력자들이 ‘이만하면 잠잠하겠지’ 한숨을 돌리는 그 순간 데모가 터졌고, ‘이 정도면 겁먹겠지’ 하고 안심한 등 뒤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 끈질긴 저항을 분쇄하고 싶은 정권도 온갖 수법을 동원했는데 그중에는 ‘프락치 공작’도 있었지. 프락치란 상대 진영인 양 위장하여 활동하며 정보를 빼내거나 조직을 교란했던 이들이야.한국외국어대 85학번 윤석양은 대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1990년 5월 입대했다. 철원으로 열정의 꽃이 흔들리지 않도록 김형민(SBS Biz PD) 1988년 4월25일은 아빠의 기억에 매우 선명한 날이다. 아빠가 생애 처음 대놓고 불법(?)을 저지른, 즉 도로에 뛰어들어 시위에 가담한 날이거든. 가슴을 콩닥이며 거리에 서 있는데 건너편에서 노래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한 떼의 학생들이 대오를 지어 노래를 부르며 행진해오는 거야.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물가에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리지 않게.” 흑인 영가에서 비롯됐다는 이 ‘흔들리지 않게’는 세계적으로 저항가요의 성가(聖歌)처럼 불린 노래다. 영어 제목은 ‘We shall not be m 세계사 최대 ‘빌런’에 저항한 평범한 노동자 김형민(SBS Biz PD) 세계사 최대의 ‘빌런’은 누구일까. 누구도 그를 옹호할 수 없고, 그 일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조차 조심스러운. 누구나 그 악행에 치를 떨고, 상대방을 그에 빗대는 것조차 최대의 모욕으로 여겨지는 존재 말이다. 사람에 따라 많은 답이 나오겠지만 대체로 한 사람의 이름 앞에서는 군소리가 적을 것 같다.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히틀러와 그 부하들, 나치 추종자들이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는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 거야. 더하여 우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돌아봐야 하는 역사는 당시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에게 보냈던 열광적이고 압도적인 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