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서 군자를 만나다 심보선 (시인·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김수영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큰일”에는 분개하지 못하면서 “작은 일”에는 법석을 떠는 소시민성에 대한 풍자이다.그런데 나는 이 시를 달리 해석하려 한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그럴 만하니까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작은 일에서 “공정하지 못함” “합리적이지 못함” “인간답지 못함”을 발견한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작은 일들의 연쇄와 누적을 통해 자신이 예술, 모든 이들을 위한 공공재 심보선 (시인·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최근 문화정책 키워드는 ‘문화민주주의’이다. 문화민주주의의 목표는 예술에 대한 접근성과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사회학적 연구들은 입장료를 낮추고 ‘소외지역과 계층’에 예술을 보급하는 것만으로 예술에 대한 거리감을 해소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예술은 나와 무관한 것이다. 그것은 어차피 나와 다른 사람들, 경제적 여유와 시간이 있고 어릴 때부터 예술에 친숙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다. 내게 돈과 시간이 주어진다면 예술이 아니라 다른 데 투여할 것이다.문화민주주의는 예술을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자아의 자전거를 좋아한다는 것 심보선 (시인·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중년에 접어든 지 오래, 이제 설렘은 없다. 인생은 빤하고 일은 하루하루 늘어나고 시절은 하 수상하다. 내겐 글이라는 설렘의 화수분이 있으나 그것이 업이 된 지금 기쁨과 좌절의 균형추도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 안타깝지만 나쁜 쪽으로.설렘의 원천이 하나 있다. 바로 자전거이다. 창고에 오래 처박혀 있던, 돌아가신 아버지의 자전거를 꺼내 정비를 하고 그 위에 올라타 페달을 밟기 시작한 지 어느덧 5년이다. 처음에는 30분만 타도 힘들고 지루했다. 조금씩 주행거리를 늘리면서 주변 풍광을 즐기는 여유도 생겼다.예전에는 홀로였지만 이제 함께 더 이상 민원을 넣을 수 없었다 심보선 (시인·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태어나서 민원을 넣은 적이 없다. 참여한 예술 행사가 민원의 대상이 되어본 적은 있다. 시민들이 거리에서 춤을 추며 행진을 하는 행사였다. 행복한 표정을 짓는 참여 시민들과 팔짱을 끼고 곱지 않은 표정으로 춤추는 무리를 바라보는 지역 주민들의 대비가 뚜렷했던 기억이 난다. 행사를 관리하는 단체의 직원들은 주민들에게 곧 정리가 되니 조금만 더 양해를 해달라며 연신 사과를 했고, 시민들에게는 진행 요원들의 지시를 따라 정해진 루트를 이탈하지 말아달라고 연신 부탁을 했다.나는 당시 생각했다. 이 도시에는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몸을 움직 기억을 위한 장소 심보선 (시인·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2015년부터 봄이 되면 나를 포함한 일군의 예술가들은 ‘안산순례길’이라는 이름의 공연을 안산에서 이어왔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진실을 규명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공연이다. 우리는 매년 새로운 순례길을 개척했다. 어떤 해는 주택가를, 어떤 해는 공단을, 어떤 해는 바닷가를 걸었다. 해마다 방문하던 곳이 있었으니 바로 분향소가 있던 화랑유원지였다.화랑유원지가 생명안전공원 부지로 결정되면서 분향소 방문은 민감한 문제가 되었다. 지난해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 지원을 받은 안산순례길은 공연 6일 전 축제사무국을 통해 분향소 방문 계획을 철 여론의 기술자 ‘독소서퍼’ 심보선 (시인·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오래전 캠퍼스에서 목격한 일이다. 중년으로 보이는 오토바이 배달기사 한 분이 주행 중에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런 것들이 무슨 교수고 지식인이야!” 마구잡이로 세워둔 자동차들 사이를 지그재그로 빠져나가다 짜증이 치민 기사가 무심결에 외친 것이다.배달기사의 교수·지식인 비난을 듣고 생각했다. 성장 기계로 전락한 대학에서 성찰적 지식의 생산은 난망해지는데, 아직도 지식인에 대한 기대를 대학에 투영하는구나. 사실 대학교수들이 지식인으로 활동하고 인정받는 영역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교수들이 지식인으로 간주된다는 것이 놀라울 새 동료가 필요한 전문가들 심보선 (시인·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한 지인이 어느 날 드디어 해결책을 구했다며 내게 말했다. “내가 하는 일이 나의 영혼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영혼과 노동의 괴리는 자본주의 태동기부터 지속되어 왔다. 소수의 직업군이 소외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웠으니 그들은 바로 전문가들이다. 전통적으로 전문가들은 고도의 추상적 지식을 통해 그들을 위한 조직과 시장을 창출하고 통제해왔다. 이는 단기적 효율성 중심으로 운영되는 관료제와 거대 시장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를 보장해주었다. 특히 전문가들은 사심 없는 직업 활동을 통해 시 쓰는 사람 심보선 (시인·경희사이버대학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문학 관련 강연을 하면 청중을 상대로 묻는 질문이 있다. “이 중에 시 쓰는 분 있으면 손 들어보시겠어요?” 문학 전공자가 아니라면 손을 드는 수는 극히 적다.가끔은 이렇게 묻기도 한다. “이 중에 시를 쓰는데 쑥스러워서 손 안 드시는 분 있으면 손 들어보시겠어요?” 이 질문에 청중들은 실소를 터뜨리지만 강연 후 몇몇 청중이 나에게 다가와 실은 시를 쓴다고 밝히는 경우도 없지 않다.나도 그랬다. 나는 문학 전공자가 아니었고 시 창작 관련 수업을 들은 적도 없었다. 주변에 시를 쓰는 친구들도 전무했다. 간혹 용기를 내어 친한 친구들에 ‘소확행’이라는 마술 심보선 (시인·경희사이버대학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한나 아렌트의 행복론이 떠올랐다.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행복에 대한 보편적 요구와 우리 사회의 광범위한 불행”은 인간이 노동의 노예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주장한다. 현대인에게 행복은 노동의 고통에서 임시적으로 도피할 수 있는 작은 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아렌트는 “보석 상자와 침대, 탁자와 의자, 개와 고양이, 그리고 꽃병 등에서” “작은 행복”을 구하는 현대인을 개탄한다. 아렌트에게 현대인의 소확행 미리 공부하는 환대 심보선 (시인·경희사이버대학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개헌안은 현행 헌법에 명기된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변경하자고 제안했다. 즉 선거권·피선거권 등을 제외한 인권과 행복추구권에 관해서는 외국인, 이주민, 난민 등에도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자는 것이다.사실 이방인 환대의 흐름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다문화주의 정책이 그 예다. 2000년대 이후 다문화주의 정책 기조에 따라 출입국 관리에 머물렀던 외국인 정책은 이주민의 정착과 적응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변화했다. 2012년 2월 아시아 최초로 제정된 난민법도 마찬가지다. 난민법에 따라 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비핵화 심보선 (시인·경희사이버대학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든 길에도 있고/ 사람들이 주고받는 모든 말에도 있고/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신고하는/ 이웃집 아저씨의 거동에도 있다(〈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분).’인용한 시인 김남주의 시는 체제 분단이 우리네 삶 구석구석에 미치는 영향을 통렬히 드러낸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다음과 같은 생각에 이르렀다. ‘분단 체제가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인간관계 자체가 분단 체제이다.’ 이것은 시적 메타포가 아니다. 불신과 불통으로 인한 인간관계의 단절은 우리가 기소 당한 절규 “장애인을 해방하라” 심보선 (시인·경희사이버대학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어떤 나라의 거리에서는 장애인들과 자주 마주친다. 이때 일종의 착각이 일어난다. “이곳은 한국보다 장애인들이 많은가?” 한국에서 장애인을 자주 마주치지 못하다 보니 장애인을 자주 마주치는 나라가 오히려 유별나게 느껴지는 것이다.한국에서 장애인을 위한 편의 시설과 복지 프로그램이 보장된다면 야외 활동을 하는 장애인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장애인이 야외 활동을 못하는 데서 오는 고충은 물리적 불편에만 그치지 않는다.폐쇄적 세계에 고립된 장애인은 사회적 교류, 생각과 감정의 공유, 삶의 질 향상 모두 불편한 이야기꾼들 심보선 (시인·경희사이버대학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대학 시절 우연히 텔레비전을 시청하다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방송의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국회에서 진행 중이던 5공 비리 및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청문회에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리던 1989년 연말의 어느 날이었다. KBS에서 심야 영화 한 편이 방송되었다.1973년 칠레 쿠데타를 다룬 영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이하 〈산티아고〉)이다. 육군참모총장 피노체트를 중심으로 한 군부세력은 전차와 전투기를 동원해 대통령궁을 공격했고 대통령 아옌데는 저항 끝에 목숨을 잃었다. 쿠데타가 우리 안의 불 심보선 (시인·경희사이버대학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노르웨이에서 대박이 난 리얼리티 쇼가 있다. 연예인들이 나와 요리를 하거나 사생활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출연자는 일반인이다. 그들은 우승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경연을 벌이지도 않는다. 그저 장작을 패서 모닥불을 지피는 게 전부다. 프로그램은 그들이 그러한 일들을 평소와 다름없이 수행하는 장면을 편집 없이 장시간 방영한다.이 프로그램의 인기 이유는 무엇일까? 바쁜 일과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멈춤과 치유의 시간을 제공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출연자들이 장작을 쌓을 때 평평한 면을 아래로 해서 똑똑한 겁쟁이들 심보선 (시인·경희사이버대학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우리는 대체로 지식을 교양이라 생각한다. 사람을 품위 있게 만들지만 삶에 필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볼 수 있다. 지식은 생존의 필수품이라고.동굴 속 인류의 조상은 밖에서 꽝꽝대는 천둥소리와 번쩍거리는 번갯불에 “저 어마어마한 빛과 소리의 정체는 무엇이냐? 너무나 무섭구나. 우리는 저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그러고는 소리와 빛의 출처를 밝히는 데 골몰했을 것이다.그들에게 불확실성이란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말 그대로 동굴 속에서 벌벌 떨며 심신이 쇠약해지는 상태였다. 그들은 살기 위해 어쩌다 아줌마, 어쩌다 사장님 심보선 (시인·경희사이버대학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최근 한 국회의원이 파업에 참여한 학교 비정규 급식 노동자들을 “그냥 밥하는 동네 아줌마”라고 일컬어 논란이 됐다.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존엄을 무시한 이 언행은 당사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아줌마’의 사전적 의미(다음 한국어 사전)는 ‘나이 든 여자를 가볍게 또는 다정하게 부르는 말’ ‘결혼한 여자를 일반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현실에서 아줌마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용법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아줌마라는 말이 생생한 의미를 갖는 것은 이런 대화에서다. “저 여자 누구야?” “누구긴. 그냥 억하심정은 누가 푸나 심보선 (시인·경희사이버대학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요사이 많은 국민이 행복감을 만끽하고 있다. 평화시위가 제도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고 부패한 대통령을 합법적 절차를 통해 권좌에서 쫓아냈다. 대한민국 국민은 세계를 향해 민주주의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줬다. 어찌 자랑스럽고 감격스럽지 않겠는가.당선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언행도 돋보였다. 특히 지난 역사와 정권 속에서 상처받은 이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각별했다. 당선 당일, 그는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 손을 맞잡았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희생자 가족에게 먼저 다가가 포옹을 했다. 소위 지도자가 그처럼 인간적인 어둠은 투표를 이길 수 없다 심보선 (시인·경희사이버대학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대통령 탄핵 과정을 지켜보면서 1987년 민주화 투쟁이 비로소 그 결실을 맺었다는 생각을 했다. 시민의 직접행동, 언론의 권력 비판, 국회의 탄핵안 결의,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은 1987년의 성과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그러므로 이번 대선 일정은 시민의 힘으로 결정된 것이다. 나는 세상을 바꾸는 힘은 권력자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실천에 잠재한다고 믿어왔다. 이 믿음은 아직도 굳건하다. 하지만 지난 정권들을 거치면서 나는 국가를 운영하는 자들의 말과 행동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폭력적 영향력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