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불로소득 자본주의 시대브렛 크리스토퍼스 지음, 이병천 외 옮김, 여문책 펴냄“불로소득주의는 신자유주의 정체성의 핵심이다.”경제학에서 ‘지대(rent)’는, 정상적 경쟁 조건에서라면 예컨대 10만원을 받을 사람이 실제로는 100만원을 벌 때 그 초과분인 90만원을 일컫는 용어다. ‘불로소득’이라 표현할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불로소득(지대)의 공간을 토지, 금융, 자연자원, 지식재산, 플랫폼, 외주화 계약, 인프라 등 일곱 부문으로 나눠 설명하며 현대 자본주의의 본질로 육박해 들어간다. 그에 따르면, 불로소득 자본주의의 핵심적 도덕적 주체가 사라진 세계에서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러시아어와 영어로 작품을 쓴 이중언어 작가다. 그가 두 개 언어로 작품을 쓰게 된 이유는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면서 부모를 따라 망명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콘스탄티노플, 런던, 베를린, 파리를 떠돌아다녔던 그는 ‘V. 시린’이라는 필명으로 시, 희곡, 소설, 평론을 발표하면서 ‘러시아 에미그레 사회’(러시아 망명객 사회)에서 유명해졌다. 파리 생활을 끝으로 1940년 5월 미국에 정착한 그는 여러 유명 대학에서 러시아·유럽 문학을 강의하면서 영어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58년 간신히 출간된 〈롤리타 지금 읽어야 할 튀르키예 소설가의 걸작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쥴퓌 리바넬리는 이십 대 중반이던 1971년, 군사 쿠데타에 반대해 세 차례나 구속되어 군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다음, 해외에서 11년간 망명 생활을 했다. 그동안 그는 꾸준히 음반을 발표하고 영화음악을 맡았다. 일마즈 귀니의 198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욜〉이 그가 음악을 맡은 영화다. 자작곡 약 300곡과 30편의 영화음악을 만든 음악가인 그는 영화 시나리오를 여러 편 쓰고 연출도 했다.1978년부터 단편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 그는 시·만화·사회평론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그 가운데 야사르 케말에 대한 연 자존감을 키우면 내 삶이 나아질까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자존감이 성공의 문을 열 수 있을까. 내게 닥친 어떤 일이든 더 낫게 설명하려는 긍정의 심리로 무장하면 내 삶이 개선될 수 있을까.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덤벼드는 ‘그릿(grit, 한국식으로는 ‘노오력’)’을 함양하면 학업 성적이 오를까. 자존심도 긍정적 사고방식도 그릿도 귀찮다면 ‘파워 포즈(power pose)’를 길러보는 것은 또 어떨까. 이 이론(보다는 상식)에 따르면, 구부정한 자세보다 척추를 세우고 어깨를 활짝 편 자세는 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열어준다. 제시 싱걸은 ‘자기계발 심리학은 왜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기자의 추천 책] 김동인 기자 세 사람이 등장한다. 어릴 적 피아노 영재였지만 교통사고 후 삶의 의미를 잃은 한국계 이주민 여성 피비,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신학대생이었지만 믿음을 잃은 뒤 새로운 길을 찾는 윌, 그리고 ‘제자’라는 극단주의 기독교 종교집단을 이끄는 존 릴. 세 사람의 시선을 교차하면서 작가는 존재론적 허무에 빠져 있던 피비가 존 릴을 만나 점차 광신도의 길로 빠져드는 과정을 보여준다.피비의 남자친구이자, ‘제자’라는 집단에 의구심을 갖는 윌의 존재가 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든다. 윌은 한때 믿음을 가졌지만 결국 신앙을 부정하게 되었고, 덕분에 존 자본주의는 도대체 어떤 짐승인가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낸시 프레이저의 〈좌파의 길〉(서해문집, 2023)은 초석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자본주의는 정확하게 무엇인가?” 오랫동안 수없이 되풀이되어온 이 질문에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임금노동. 마르크스가 〈자본〉을 통해 이 정답을 찾기까지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은 ‘감춰진 장소’였다. 프레이저는 마르크스의 업적에 경의를 바치면서도 그것만으로는 자본주의가 무언인지 다 밝혀졌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감춰진 장소 이면에 감춰진 또 다른 장소”가 있다.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밝힌 것과 같은 ‘경제적 시스템’도 아니고 괜찮다는 말 대신, 안톤 체호프가 건네는 위로 [여여한 독서] 김이경 (작가) 아니 에르노의 〈세월〉을 펼쳤는데 맨 앞에 안톤 체호프의 문장이 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잊힐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우리에게 중요해 보이고 심각해 보이며 버거운 결과로 보이는 것들, 바로 그것들이 잊히는, 더는 중요해지지 않는 순간이 올 것이다.”종소리가 울렸다. 뎅, 뎅. 오래된 절집의 묵은 종소리가 사위로 스미듯 마음속으로 퍼져갔다. 그 아침 해야 할 일의 무게에 짓눌렸던 마음이 비로소 떨치고 일어섰다. 에르노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다시 체호프에게 돌아갔다. 긴 가출 끝에 돌아온 아이처럼 ‘몸’과 ‘삶’은 서로 다르지 않기에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나에게 새로운 언어가 생겼습니다임은주 외 지음, 글을낳는집 펴냄“그래서 나는 시설을 떠나기로 했다.”임은주씨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았다. 6남매 중 넷째였고 5남매가 학교에 다닐 때 학교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엄마는 ‘다리병신’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둘 다 장애가 있어 양가가 반대하는 결혼을 했지만 여전히 남편을 보면 설렌다. 뇌병변을 가진 국화씨는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 은혜학교를 소개받아 그곳 학생이 되었다. 사생 대회에 나가면 상을 흽쓸었고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이혼 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계속 그림을 그린다. 부제 삶이 곧 시, 시가 곧 삶이 될 때 [여여한 독서] 김이경(작가) 1991년 6월9일 고정희 시인이 세상을 떴다. 그 어름 아침 신문을 보다가 고정희 시인이 지리산 뱀사골에서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슴 철렁했던 기억이 있다. 그의 갑작스러운 부고에 울컥했는데, 슬픔보다 배반감 같은 이상한 감정이었던 것도 생생하다. 1년쯤 지나 유고 시집이 나왔고 책이 집에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읽었을 텐데 그에 대해선 딱히 기억이 없다. 부고 기사를 본 그날 아침이 시인에 대한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러고 나는 그를 잊었다.잊었던 그를 다시 떠올린 것은 국문학자 조연정의 〈여성 시학, 198 [기자의 추천 책] 아무도 잊히지 말자, 우리가 끝낼 때까지 김은지 기자 ‘셋째도 여자라서 지웠다’는 사연은 드라마에서나 듣던 얘기가 아니었다. 일시(日時) 같은 디테일은 어렴풋하지만, 우리 집에 곧잘 놀러오던 ‘지은이(가명) 엄마’가 낙태했다는 말만은 내 안에 선명하게 남았다. ‘딸-딸-딸’이라는 이유였다. 주인공 배우 심은하의 눈이 초록색으로 바뀔 때마다 무서웠던 〈M〉이 TV에 방영되던 때의 기억이다. 낙태를 소재로 다룬 1994년 MBC 드라마다. 지은에게 둘째 동생이 생겼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떠올랐다.‘백말띠’ 해 1990년은 최악의 신생아 성비(116.5)를 우리의 현재가 냉동 인간의 미래다 송병기 (인류학 연구자) 2020년 5월, 한국 첫 ‘냉동 인간’이 나왔다. 혈액암으로 사망한 80대 여성이었다. 그 아들에게 의뢰받은 러시아의 인체 냉동 보존 회사는 시신을 모스크바로 이송했다. 업체는 3단계 절차를 거쳐 시체를 냉동 보존했다. 먼저 시신의 혈액응고 및 뇌손상을 막기 위해 약물을 투여하고 인공 심폐장치를 가동했다. 그리고 혈액을 냉동 보존액으로 치환했다. 체액이 저온에서 결정화되어 세포를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시신을 영하 196℃의 액체질소 냉동 탱크에 안치했다. 이 러시아 기업은 냉동 보존된 고객들을 ‘환자’라 부른다. 그 돌봄노동 떠맡은 여성, 돌봄의 대상이 된다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김유담의 두 번째 소설집 〈돌보는 마음〉(민음사, 2022)이 나왔다. 첫 번째 소설집 〈탬버린〉(창비, 2020)의 여주인공들은 학창 시절과 직장 초년생을 거쳐 막 결혼에 골인했다. 거기에 이어지는 두 번째 소설집의 여주인공들은 결혼 뒤 2~3년 만에 이혼을 결정한다. 수록작 ‘안(安)’의 윤미와 다른 수록작 ‘경자’의 ‘나’가 그런 경우다. 후자는 사유가 불분명하지만 전자의 이혼 사유는 시댁 갈등이다. 윤미의 남편 공민수는 주말마다 시댁에 가지 않고 집에서 쉬고 싶다는 아내를 이렇게 다그친다. “지금 부모님이 사시는 잠실 아파트 “무조건 행복하라”는 암묵적 공식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현대인들은 점점 자기중심적이 되고 나르시시스트가 되어간다. 그것도 아니면 우울증과 소진(burnout)에 멍들어간다. 이들은 간혹 가해자나 피해자로 뉴스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다. 이 시대의 가장 예리하고 독창적인 사회 비평가이자 철학자인 한병철은 〈리추얼의 종말〉(김영사, 2021)에서 이런 현상을 리추얼(Ritual)이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지은이가 사용하고 있는 독일어에서 리추얼은 ‘의례’ ‘의전’ ‘의식’ ‘잔치’ ‘예식’ ‘축제’ 등의 의미를 두루 포괄하고 있는데, 영어 사전에도 리추얼은 ‘의식’ ‘제사’ ‘절차’로 자신을 ‘재발명’하기 위한 귀환 [2021 행복한 책꽂이] 오혜진 (문학평론가) ‘디디에 에리봉’을 알게 된 것은 그가 쓴 두 권의 책,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의 대담집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와 미셸 푸코 평전 〈미셸 푸코, 1926~1984〉를 통해서다. 그 책들은 주인공보다 그들에게 ‘말 거는’ 저자의 욕망이 더 표 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걸출하고도 기묘했다. 바꿔 말하면, 타자의 삶을 서술하는 ‘평전’에서조차 그는 ‘신뢰할 만한 서술자’가 되기보다는, 자기도취적이고 유머러스한 자신을 드러내는 데 더 소질 있어 보였다.그래서인지 그가 비판적인 ‘자기기술지’(autoethnography) 〈랭스로 되돌아가다〉 현대시, 도시를 산책하는 사람이 남긴 흔적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혼자의 넓이〉(창비, 2021)는 이문재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이죠. 그의 시는 점점 묵시록이 되어갑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었다/ 한때 다들 그 섬에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섬에 가본 사람이 없었다/ 애초에 섬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이 다른 것이 들어섰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스마트폰이 있었다/ 아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스마트폰이 있지 않았다/ 스마트폰과 스마트폰 사이에/ 사람이 있었다 아니/ 스마트폰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었다”(‘사람’).인간의 종말을 불러오는 것은 과학기술 산업·소비주의·방사능 문재인 정권은 파시즘? 길고 공허한 서평일 뿐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2021년 ‘올해의 책’은 로버트 O. 팩스턴의 〈파시즘〉(교양인, 2005)이다. 미국에서 출간된 지 17년이 넘은 이 책은 어느 변호사가 자신의 신간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매번 언급하는 바람에 뒤늦게 유명해졌다. 그 변호사는 팩스턴의 〈파시즘〉을 읽어보니 “대한민국의 2019년과 2020년은 1933년 독일 나치의 미니어처더라”면서, 문재인 정권이 나치를 향해 진화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런 사실을 꼭 “공론화해달라”고 강조했죠. 하지만 팩스턴의 책을 근거로 문재인 정권을 파시즘 또는 나치라고 단정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기자의 추천 책] 소설을 읽다보니 사계절이 흘렀네 임지영 기자 〈소설 보다〉는 계절에 한 권, 1년에 네 번 출간된다. 문학과지성사가 ‘계절의 리듬에 따라 젊고 개성 넘치는 한국 문학을 가장 빠르게’ 소개하기 위해 2018년부터 펴내고 있는 시리즈다. 매 호 세 편의 단편소설이 실린다. 단행본이 나오지 않은 신인 작가들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어느 날 우연히 서점에서 만난 뒤 출퇴근길에 가지고 다닐 만한 가벼운 책으로 낙점했다.2021년 가을호에 실린 소설 세 편도 인상적이다. 구소현이 쓴 〈시트론 호러〉의 주인공은 10년 차 유령 공선이다. 누군가 책을 읽을 때 그 속도에 맞춰 천천히 같이 무연고자의 죽음 앞에 존엄한 자리는 없다 송병기 (인류학 연구자) 노숙 생활을 하던 노인들은 응급실에 실려 가기 전까지 ‘갈 데 없는 삶’을 살았다. 사회 어디에도 이들을 시민으로 인정하고 환대하는 관계망이 없었다. 실업, 파산, 빈곤, 고령, 질병 등이 그 이유다. 그랬던 이들의 삶은 ‘응급 상황’에서부터 변한다. 길에서 쓰러진 이들은 누군가의 신고로 응급 환자가 되면 그때부터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의 대상이 됐다. 이 법은 응급 환자를 ‘질병, 분만, 각종 사고 및 재해로 인한 부상이나 그 밖의 위급한 상태로 인하여 즉시 필요한 응급처치를 받지 아니하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한국 근대문학에도 ‘언니들’이 있었다 [여여한 독서] 김이경(작가) 조지 오웰은 작가가 글을 쓰는 첫째 동기는 사람들의 인정과 주목을 받고 싶은 ‘순전한 이기심’이라 했다. 이기심이라니 한심하다 싶겠지만 따지고 보면 문학뿐 아니라 모든 예술이, 아니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의 성취란 것이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자부와 욕망에서 나온다 할 수 있다. 자부심에 가득한 자아는 오웰이 말했듯 “사후에도 기억되고 싶은 욕구”로 쓸 것이며, 상처 입은 자아는 “실패를 앙갚음할 수 있게 해주는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쓰리라. 자랑이든 항변이든 그들의 동기는 하나다. 존재 증명. 내가 여기 있다, 새로 나온 책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페어 플레이 프로젝트이브 로드스키 지음, 김정희 옮김, 메이븐 펴냄“언제 치약 떨어지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걸 신경 쓴 적은 있는가?”화장실 청소를 한다던 남편은 변기만 청소했다. 세면대와 바닥에 낀 물때나 수챗구멍 속 머리카락은 그대로였다. 화장실 휴지는 비어 있었다. 책의 저자는 ‘보이는 일=가치’라고 주장한다. 남편에게 가사노동 일부를 책임지게 하려면 요정처럼 몰래 화장실 휴지를 채워 넣거나 세면대와 바닥에 낀 물때를 청소해서는 안 된다. 그는 대신 게임을 개발했다. 일명 ‘페어 플레이 프로젝트’다. 가사노동을 적은 카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