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때마다 다른 게 보이네 [설날 방구석 콘텐츠 추천 ①] 시사IN 편집국 팬데믹 3년 차, 가족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비교적 조용하게 보내는 명절에 익숙해진 것 같다. 그럼에도 주말 낀 명절 연휴 5일은 무척 긴 시간이다. 그 시간을 달래줄 ‘방구석 콘텐츠’를 소개한다. 대중문화, 음악, 게임 분야 평론가들과 〈시사IN〉 문화팀이 한국과 미국의 드라마를 비롯해 자연·음악 다큐멘터리, 영화, 웹툰, 게임 등 다양한 취향의 즐길 거리를 준비했다.볼 때마다 다른 게 보이네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나의 아저씨〉 〈인간실격〉드라마를 두 번 이상 보는 일이 거의 없다. 직업이 드라마를 보고 글을 쓰는 것이다 보니 [그림의 영토] 종로구 행촌동의 작은 집, 3·1 독립선언서가 숨겨져있던 곳 김지혜 (그림책서점 ‘소소밀밀’ 대표) 기억은 잘 나뉜 방에 칸칸이 들어앉아 켜켜이 쌓인 벽지처럼 내밀한 곳까지 닿기도 하고, 침묵의 벽처럼 묻히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기억은 옅어지기 마련인데, 다시금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기억들은 모두 내가 살았던 ‘집’과 관계가 있다. 집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며 모든 시간을 공유한다. 그렇기에 집은 시간을 되돌리는 힘이 있다.서울 종로구 행촌동 1번지에 시간을 되돌린 집이 있다. ‘딜쿠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이며 1923년 서양인 부부가 지었다. 집주인 앨버트 테일러는 사업가이자 미국 해외통신원이다. 그 [그림의 영토] ‘살찌니까 그만 먹으라’고 한 적이 있나요? 김지혜 (그림책서점 ‘소소밀밀’ 대표) 한국 사회는 ‘날씬한 몸매’에 대한 선망이 깊숙이 배어 있다. 어려서부터 디즈니 공주 시리즈를 보며 품었던 환상 때문일까? 깡마른 바비 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시작된 관념 때문일까? 그 시작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기에도 벅차다.오랜 시간 굳어진 획일화된 미를 고집하며 스스로에게는 강박을, 타인에게는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아이에게 ‘살찌니까 그만 먹으라’는 말을 여러 번 한 적이 있다. 아이는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당황스러울 만큼 살이 올랐고, ‘날씬하고 예쁜’ 친구들과 수시로 비교하며 자꾸만 의기소침해졌다. 아 [그림의 영토]쓸모없으면 어때? 행복하면 그만이지 - 〈XOX와 OXO〉 김지혜 (그림책서점 ‘소소밀밀’ 대표) 아이의 예술성이 가장 반짝였을 때는 대여섯 살 무렵이었다. 집에는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도 없었고, 함께 놀이를 할 또래도 없었다. 아이는 마치 ‘상상의 집’을 짓고 있는 듯 상상 속에 깊이 빠져 있었다.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접고 오렸으며, 빈 상자나 작은 화분 같은 주변 사물들로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집 안은 미술관처럼 아이가 만든 작품들로 가득했다. 그렇게 아이의 예술성은 심심함과 자유로움 속에서 스스로 성장했다.머나먼 우주 행성Ö에 무료함을 관통하고 있는 외계인 XOX와 OXO가 있다. 그들은 쌍둥이처럼 닮았으 [그림의 영토]내비게이션을 끄고 길을 떠나보는 용기 - 〈두 갈래 길〉 김지혜 (그림책 서점 ‘소소밀밀’ 대표) 가끔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설정해놓고도 다른 길을 갈 때가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엔 한적한 길을 찾아 달리기도 하고, 아차 싶은 순간에는 엉뚱한 길로 빠지기도 했다. 괜히 조바심이 나는 날에는 좀 더 빠른 길을 찾아 헤매다 애초에 설정해둔 목적지로 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로 인해 조금씩 달라지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일상의 일이었으며 삶의 기쁨과 슬픔, 우연과 필연의 조각들이었다.스페인 작가 라울 니에토 구리디가 쓰고 그린 〈두 갈래 길〉은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의 발걸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스위스에서 걸인들에게 기차표와 돈을 주는 까닭 [평범한 이웃, 유럽] 취리히·김진경 (자유기고가) 스위스 북부 도시 바젤이 지난 4월부터 특이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바젤에 상주하는 걸인들에게 유럽 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기차표와 현금 20스위스프랑(약 2만5000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원하는 걸인 누구나 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단, 조건이 있다. 떠난 뒤 스위스로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동의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 만약 다시 스위스로 온 것이 발각되면 즉시 국외로 추방된다. 지금까지 바젤의 걸인 31명이 이 제안을 수용해 스위스를 떠났다. 국적별로 보면 루마니아(14명), 벨기에(7명), 독일(7명) 등 모두 스 고기를 먹는 것은 동물의 아이를 먹는 것 김지혜 (그림책서점 ‘소소밀밀’ 대표) 나는 이 책의 제목을 ‘더 이상 아이가 먹을 수 없어’라고 오해했다. 표지 그림을 보아도 아이를 카트에 태운 부모들이 먹거리를 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편식이 심한 아이와 함께 보기 좋은 그림책일 거라 생각하며 내용을 읽지 않고 그림만 보며 추측해본다.장보기를 마친 아빠는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집으로 돌아간다. 얼굴 모양의 아이스크림 파는 가게를 보지만, 가뿐히 지나간다. 다음 장을 펼치자 커다란 집에서 와르르 쏟아져 나온 아이들이 채소와 시리얼을 먹기도 하고, 춤을 추거나 연을 날리며 자유롭게 놀고 있다. 집으로 돌아온 아빠 강에서 길어 올린 소년의 언어 김지혜 (그림책서점 ‘소소밀밀’ 대표) 말을 한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 자체가 아픔이며 고통인 소년이 있다. 방 안은 아침 햇살로 가득하지만 어쩐지 소년의 물건들은 젖은 솜처럼 무거워 보인다. 빛이 소년을 어루만지기 전에, 귓속에서 맴도는 소리의 음절들이 발화되지 못한 채 소년을 깨우기 때문이다. 가늘게 눈을 뜬 소년은 소리의 음을 하나씩 되짚어본다. 소나무의 스-, 까마귀의 끄-, 희미해져가는 달의 드-, 말을 더듬는 소년은 단어를 내뱉을 수 없다. 단어의 조각들이 날이 선 파편처럼 목구멍 안에 착 달라붙는다.학교에서도 맨 뒷자리에 앉아 말할 일이 없길 이 그림책이 있어 참 다행이다 김지혜 (그림책서점 ‘소소밀밀’ 대표) 5학년 때 일이었다. 친구와 다퉈 속상했던 나는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몇몇 친구들이 내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해 주었는데도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다음 시간은 미술시간이었는데, 선생님은 대상을 찾아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 나는 보랏빛 팬지가 심겨진 화분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무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았으니 세상엔 오로지 팬지가 심겨진 화분과 나만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팬지를 구석구석 바라보았다. 그림으로 그려내려니 시들어 오므라진 꽃송이와 사그라진 잎사귀 하나까지도 특별해 보였다. 종이 위에 꽃을 다 눈의 시(時) 김지혜 (그림책서점 ‘소소밀밀’ 대표)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게 느껴졌지만 가끔씩 따뜻할 때가 있었다. 바로 눈이 내리는 순간이다. 어떤 약속도 없었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눈이 내리면 사람들은 멈추어 서서 눈을 바라보았다. 눈은 낡은 지붕 위에도, 스러져가는 나무 위에도, 가느다란 잎사귀 위에도 고루고루 내렸다.여기, 눈을 만나고 싶은 흰 토끼가 있다. 토끼는 눈이 쌓인 스노볼 안을 가까이에서 바라본다. 다음 장면을 넘기자 스노볼은 비스듬히 누워 있고, 눈송이가 흩날렸다. 금세 눈의 세상으로 바뀌었다. 눈의 세상은 땅의 높낮이나 굴곡, 하늘과 땅의 경계도 없이 온 좋은 선택이 만드는 ‘괜찮은 오늘’ 김지혜 (그림책서점 ‘소소밀밀’ 대표) 아이가 차에 올라타자마자 음악을 선곡했다. 한 곡이 다 끝나갈 무렵 “엄마, 인디음악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이런 풍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아.” 아이의 목소리는 또렷하고 경쾌했다. 좋아하는 걸 선택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있을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기쁨은 또 어떻고.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아이가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졌다.‘오늘’이라는 제목 아래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오늘의 태양이 그려져 있다. “오늘은 뭐 할까?” “어디를 갈까?” “어떤 옷을 입을까?” 그림책 속 아이가 기지개를 켜고 하루 내가 만약 곰이 된다면 김지혜 (그림책서점 ‘소소밀밀’ 대표) 나에게도 치열하게 출퇴근했던 10여 년의 시간이 있었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생기 없는 모습으로 내일도 모레도 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는 작은 강아지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출근의 고통도 책임의 무게도 인생의 고달픔도 사라질 테니 단 며칠만이라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림책 속의 블레즈 씨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아마도 어느 조직의 김 대리도 박 과장도 블레즈 씨와 별다르지 않을 것 같 대견하고 위대한 나팔꽃의 일상 김지혜 (그림책서점 ‘소소밀밀’ 대표) 까만 밤하늘이 흠뻑 스며든 표지에 손톱처럼 얇은 초승달과 그 달을 바라보는 가느다란 나팔꽃 줄기, 그리고 잎사귀 위를 기어가는 개미가 있다. 그림책 〈달에 간 나팔꽃〉의 이야기를 이루는 장면이다. 달과 나팔꽃과 개미, 커다란 것을 향한 작은 것들의 움직임이 선명한 색을 이루고 있다.〈달에 간 나팔꽃〉은 동네 어귀에 무성히 자란 덩굴처럼 지나치기 쉬운 책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의 말 사이에 들어 있는 시간을 들여다보면 그 깊이는 다르다. 작가는 오랜 시간 나팔꽃을 가꾸며 그것을 자주 그렸다. 유연하게 감은 줄기를 부드러 “넌… 그래도 아름다웠어” 김지혜 (그림책서점 ‘소소밀밀’ 대표) “완벽한 것은 따스하지 않아.”이 한 문장 때문에 다음 페이지를 넘기기까지 한참 걸렸다.나는 무엇이 되기 위해 얼마나 애쓰며 살아왔던가. 완벽하게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쓰라린 순간을 견뎠던가. 버티기 힘들 만큼 괴로웠던 일 또한 결국엔 희미해져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가 나를 더 사랑해줬을 텐데.“걱정하지 마. 상처투성이라 해도 사람들은 몰라. 그러니 어서 일어나.”스스로를 무능하다고, 내 인생은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을 여러 번 맞았다. 차가운 겨울밤 외투 하나 걸치지 않고 집 밖을 나섰던 밥숟가락 위에 핀 세상에서 제일 귀한 꽃 김지혜 (그림책 서점 ‘소소밀밀’ 대표) 세상에는 예쁜 꽃이 참 많다. 예쁜 꽃 하나를 고르는 일은 무척 어렵지만, 가장 귀한 꽃이 뭐냐고 묻는다면 단연 벼꽃이다. 〈꽃밥〉은 순희라 불리던 할머니의 일기를 통해 쌀과 살아온 시대를 그린다. 낟알이 조롱조롱 맺힌 푸른 면지를 넘기면, 할머니의 일기가 귀한 상차림처럼 한 장 한 장 펼쳐진다.1964년 8월, 여름 햇살 뒤로 아이들은 메뚜기를 잡으려고 벼 사이를 뛰어다닌다. 순희는 이삭마다 핀 하얀 벼꽃을 보자, 갓 지은 쌀밥이 생각난다. ‘쌀 세 톨에 보리밥 한 톨’이라는 학교 구호가 있던 1970년대 시절을 지나, 순희는 결 기사 후~폭풍 김영화 기자 유독 논쟁이 많은 한 주였다. 이자스민 전 의원을 인터뷰한 이상원 기자의 기사가 논쟁을 불러왔다. ‘정치인 이자스민이 불편하다는 사람들에게’ 기사에는 대체로 공감보다는 불편한 기색이 주를 이뤘다. 〈시사IN〉 페이스북 계정(facebook.com/sisain)에서는 “이주여성 정체성으로 새누리당 비례대표까지 하면서 이득을 누렸다.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이자스민 전 의원을 옹호하는 댓글도 있었다. “새로운 관점을 지닌 이자스민을 진보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거기서 이미 진보의 존재 의미가 사라진다.” 평등에 대한 강렬한 욕망 확인 임지영 기자 4개월 전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지난여름, 김지혜 강릉원주대학 교수(다문화학과)를 만났을 때 그는 첫 단독 저서인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대한 ‘뜨거운 반응’이 당황스럽다고 했다. 총 4만여 권이 나갔다. 그사이 확인한 건 사람들의 “평등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었다. 김지혜 교수가 2019년 출판인이 꼽은 ‘올해의 저자’로 선정됐다.평범한 우리 모두 ‘선량한 차별주의자’일 수 있다고 말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올해의 책으로도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지금 현재의 이슈를 잘 잡아 정곡을 찌르는 책을 쓴다면 대중도 호응한다는 점 혐오와 차별 넘치는 대한민국의 초상 임지영 기자 선정 소식을 듣고 단번에 기뻐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올해의 출판사’나 ‘올해의 루키 출판사’ 분야가 특히 그렇다. 버티느라 여념이 없고,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갸웃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시사IN〉이 출판인들에게 설문을 시작한 지 10여 년. ‘최고’를 가리기보다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 분투한 출판인들을 응원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동료들이 꼽은 올해의 책, 저자, 출판사 등을 소개한다. 올해도 아래의 출판사 관계자 74명이 응답해주었다. 설문에 응해준 출판사(가나다순)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가나출판사, 글항아리, 김영 [올해의 이주인권 판결] 이주민 앞에서 법은 어떻게 작동했나 시사IN 편집국 ■ 올해의 이주인권 디딤돌 판결국제인권기구 권고 인용한 판결(서울중앙지방법원 2018가단5125207 손해배상)이탁건 (변호사·재단법인 동천)원어민 보조교사로 일하던 뉴질랜드 국적 에이미(가명) 씨는 재계약 논의 과정에서 학교가 HIV-에이즈 검사 결과를 요구한 것은 위법이라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10월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35단독 김국식 판사는 원어민 보조교사 급여와 위자료를 포함해 3000만100원을 에이미 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뉴질랜드 국적 에이미 씨는 회화 지도(E-2) 비자를 발급받 [올해의 이주인권 판결] 누구는 희망을 얻었고 누구는 절망을 맛봤다 김영화 기자 이주인권사례연구모임이 선정한 ‘올해의 이주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은 당사자인 이주민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누군가는 판결을 통해 살아갈 희망을 얻었지만 또 누구는 판결에 걸려 주저앉았다. 이주인권 신장에 긍정적 역할을 한 ‘디딤돌 판결’과 부정적 영향을 끼친 ‘걸림돌 판결’의 구체적 사례를 소개한다. 이주민이라는 정체성이 각각의 인생에 남긴 상흔도 함께 돌아본다.■ 걸림돌 판결“거기엔 한국 학교가 없거든요.”사미아(11·가명)의 오른쪽 손목에 채워진 노란색 실리콘 팔찌가 눈에 들어왔다. 팔찌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