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친일을 생각한다
  • 정희상 기자
  • 호수 620
  • 승인 2019.08.0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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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현 선배는 초년 기자 시절 현대사 발굴 취재에 심취했던 나의 ‘멘토’였다. <중앙일보> 조사자료 기자로 잔뼈가 굵은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친일파 연구자이기도 했다. 나는 1992년 민족 반역자 이완용의 후손이 수천만 평에 달하는 ‘매국 장물’에 대한 반환소송을 몰래 전개 중이라는 사실을 최초로 기사화했던 적이 있다. 관련 정보를 처음 입수했을 때 제일 먼저 만나러 갔던 사람이 정운현 선배였다. 

앞서간 친일파 연구의 대가이자 재야 사학자였던 임종국 선생을 사표로 삼은 정운현은 평생 친일파 추적에 공을 들였다. 늘 애국지사가 홀대받고 친일파가 애국자로 행세하는 나라에 대해 개탄을 금치 못했다.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거쳐 언론계를 떠난 그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을 맡아 활동했다. 그 무렵인 2012년 광복절을 기해 그가 펴낸 책이 바로 <친일·숭미에 살어리랏다>이다. 이 책은 친일 세력에 대한 구조적 해부와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우상으로 덧칠된 독재자 이승만과 박정희의 실체를 파헤쳤다. 또 뉴라이트 계열의 ‘이승만 살리기’와 ‘백선엽 영웅 만들기’ 등의 노림수를 심도 깊게 파헤쳤다.

해방 후 친일파는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아래서 청산은커녕 오히려 집권 세력으로 소생했다. 반민족 행위의 전력 때문에 그들에게 국가주권이나 민족이라는 말은 ‘경기’가 날 만큼 부담스러운 용어였다. 그들이 생존을 위해 친일 대신 붙잡은 것이 ‘반공’과 ‘미국 숭배’였다.

그들을 청산하지 않고 넘어가도 될까? 정운현은 수구 세력의 힘을 인정한다. 하지만 민주시민이 힘을 합하면 친일을 뿌리에 둔, 수구기득권 세력을 청산할 수 있다고 설파한다. 그런 정운현이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은 올해 초 이낙연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 갔다. 시대의 부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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