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백색테러' 배후는 친중파 향사?
  • 홍콩·관춘호이(關鎮海)(전 <빈과일보> <명보주간> 기자
  • 호수 620
  • 승인 2019.08.0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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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는 홍콩 시위대에게 백색테러가 가해지고 있다. 경찰은 이들의 폭력을 방치하고 있다. 테러의 배후에는 친중파 조직의 구성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만명 이상의 대규모 시위를 불러온 ‘도주범 조례(逃犯條例·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운동이 장기화되고 있다. 법안 철회는 물론이고 공권력의 과잉 진압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위원회 구성 등을 골자로 한 시민들의 ‘5대 요구’ 역시 묵살되었다. 시위대를 향한 ‘백색테러’까지 벌어졌다. 경과는 다음과 같다.
7월21일 열린 ‘도주범 조례 반대’ 집회에는 43만명(주최 측 추산)이 운집했다. 시위대는 오후 8시쯤에는 애드미럴티, 센트럴, 셩완 등으로 나누어 진출했다. 중국 정부의 ‘홍콩 연락판공실(중련판)’로 통하는 코넛로드 서쪽과 데뵈로드 서쪽이 시위대에 의해 봉쇄되었다. 오후 10시쯤, 셩완 페리터미널에서 시위대와 대치하던 진압경찰은 대량의 최루탄과 고무 총탄을 발사했다. 구체적인 발사 수는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같은 시간, 흰옷을 맞춰 입은 800여 명이 신계(뉴테리토리)의 윤롱(위안랑)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손에는 등나무 혹은 쇠몽둥이를 든 채였다. 이들은 ‘윤롱을 지킨다(保衛)’는 명분으로 지하철역은 물론 객차 안으로 밀고 들어가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때렸다. 타깃은 검은 옷이었다. 도주범 조례 반대 시위대가 주로 검은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었다.


ⓒThe Stand News via AP video7월21일 홍콩 윤롱역에서 흰옷에 마스크를 쓴 이들에게 폭행을 당한 시위대.
이후 약 3시간 가까이 윤롱은 공권력이 없는 ‘진공상태’였다. 윤롱 지역 주민들이 줄곧 경찰에 신고를 시도했지만, 전화는 먹통이었다. 경찰서 문도 거의 닫혀 있었다. 한 시민은 “오후 11시에 문이 열려 있는 경찰서로 들어가 신고했는데 약 15분간 설명을 듣더니 ‘신고받을 의향이 없다’ ‘사건을 수리하지 않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경찰이 현장을 점검하기는 했다. 윤롱 지역 경찰서 보조 지휘관은 “10시47분에 신고를 받고 왔는데 무기를 가진 사람은 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약 1시간30분 뒤인 자정쯤,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다시 윤롱역에 나타났다. 닫힌 철문을 강제로 열고 돌진한 이들은 공권력 공백 상태에서 공공연히 시민들을 구타했다. 현장을 중계하고 있던 <입장신문>의 여성 기자 역시 구타당했다. 이날 시민 45명이 부상당했는데 그중 한 명은 위독한 상태다. ‘9분 내에 도착하겠다’던 철도경찰은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스테판 로 홍콩 경무처장은 “경찰들이 대거 홍콩섬 시위 현장에 배치되기 때문에 인력이 없었다”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무장경찰이 테러단의 어깨 토닥이기도

실제 현장에서 깡패와 경찰은 마치 공모 관계에 있는 것처럼 굴었다. 7월22일 새벽 2시, 기자가 윤롱 지역으로 들어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무장경찰들이 흰옷을 입은 무리 사이에 섞여 서로 어깨를 토닥이며 귓속말을 하고 있었다. 사건의 파장이 커진 다음 날(7월23일), 경찰은 비로소 윤롱 지역의 마을 촌장을 포함해 11명의 ‘흰옷’을 ‘불법집결’ 혐의로 체포한다고 밝혔다.

경찰이 ‘흰옷’들의 폭력을 방조하고 심지어 격려하는 것처럼 보인 모습들은 모두 우연히 벌어진 일일까? 혹시 정부 고위층이 연관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른바 ‘깡경(깡패와 경찰) 유착’ 논란이 이미 2013년에도 벌어진 바 있기 때문에, 홍콩 정부에 대한 의혹이 강하게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번 백색테러의 배후로 지목되는 크리스 탕 경무처 부처장은 2013년에 윤롱 경비구역 지휘관을 맡고 있었다. 당시 렁춘잉 홍콩 행정장관이 그 지역을 방문하자, 민주파 정당인 사회민주연맹의 구성원들이 시위를 벌였다. 그때도 깡패들이 출몰했는데 언론사 카메라 앞에서 공공연히 시위대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현장에 있던 경찰은 폭력 사태를 수수방관했다.

The Stand News via AP video7월21일 홍콩 윤롱역에서 흰옷에 마스크를 쓴 이들에게 폭행을 당한 시위대가 피를 흘리고 있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 도우가론(杜嘉倫) 윤롱구 의원은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오후 4시쯤부터 집결했다. 최소 3곳 이상의 윤롱 지역 마을 깡패들이 모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당일 오후 1시부터 이미 (깡패들이) ‘검은 옷의 시위대를 때릴 것’이라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나돌았다”라고 말했다. 이 지역의 다른 관계자 역시 “윤롱 깡패들이 (집회 당일인) 7월21일에 모인다는 소문이 사흘 전부터 파다했다. 경찰 관계자가 몰랐을 가능성은 낮다”라고 말했다.

‘흰옷들의 테러’ 다음 날인 7월22일 기자는 윤롱 지역을 다시 찾았다. 고요했다. 상가들이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지역에서 만난 한 중학교 교사에 따르면, 백색테러에 참여한 사람 중에는 16세 미만 학생까지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관련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당일에 큰 형님이 소집했다’ ‘돈을 준다고 불러서 그냥 갔다’고 한다.”
윤롱구가 위치한 신계 지역은 도심인 홍콩섬이나 구룡(카오룽) 반도와 달리 농촌이다. 신계에는 도심 지역에는 없는 ‘향사위원회(鄉事委員會)’와 ‘향의국(鄉議局)’ 같은 비공식적인 지방 자문조직이 존재한다. 이런 조직들은 선거로 선출되지는 않았지만 지역의 각종 공공 업무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이권을 탐하기도 한다. 향사위원회와 향의국이 도시개발사업 등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조폭 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특히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조폭을 등에 업은 ‘향신(鄉紳:공직자는 아니지만 중국의 지방 마을에서 정치·사회·경제적 영향력을 갖고 행정에까지 개입하는 유력자를 의미하는 전통적 용어)’들이 적극적으로 구의회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구의회나 입법회 선거 때마다 친중 성향인 건제파(建制派) 후보를 지원했다. 하지만 2016년쯤부터 이들의 동맹에 균열이 발생하게 된다.

ⓒAFP PHOTO백색테러의 배후로 의심받고 있는 허쥔야오 의원은 “홍콩 독립을 주장한 사람들을 죽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친중파 지지 얻으려 테러 계획”

일부 향신들이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며 친중파의 지배를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향사위원회나 향의국 같은 향사(鄉事) 조직들이 ‘친중파’와 ‘전통 향사파’로 분열되는 양상이 벌어졌다. ‘친중파’는 점차 지역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잃어갔다.
지역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흰옷들의 테러’ 배후에는 친중파 향사 조직의 구성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혹의 핵심 인물은 건제파 입법회 의원인 허쥔야오(何君堯)다. 변호사 출신으로 신계 지역 툰먼(屯門) 출신 명문귀족 후예인 그는 “홍콩 독립을 주장한 사람들을 용서 없이 죽여야 한다”라는 발언으로 논란이 되었던 인물이다. 이번 테러 사건 발생 직전에 한 시민이 허쥔야오의 행태를 동영상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이 동영상에서 그는 흰옷을 입은 무리들과 악수하며 “수고했다”라고 위로한다. 허쥔야오와 ‘흰옷’들이 술집에서 같이 촬영한 사진도 인터넷을 통해 퍼져 나가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향사파들의 내부 역학관계로 이번 테러 사건을 분석하기도 한다. “전통 향사파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 지역에서 허쥔야오가 비주류로 배제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그래서 그가 오는 2020년 선거에서 친중파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이번 테러 사건을) 계획했다는 것이다.”

ⓒAFP PHOTO7월21일 홍콩 도심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백색테러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이른바 중국과 홍콩을 사랑하는 친중국 성향의 ‘애국애항(愛國愛港)’ 인사들이 신계에만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윤롱 지역의 한 관계자는 “애국을 명분 삼아 난국 중에 자기 역할과 이익을 되찾으려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라고 예측한다. 중국을 등에 업은 이들은 이번 7월21일처럼 사적 폭력을 통해 계엄령 없이도 계엄과 같은 효과를 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번역·양첸하오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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