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서 검사 단면 드러낸 ‘김학의 대포폰’
  • 김은지· 나경희 기자
  • 호수 620
  • 승인 2019.08.0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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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대포폰 사용 행태를 보면 ‘스폰서 검사’의 단면이 보인다. <시사IN>은 김학의 전 차관의 공소장에 담기지 않은 구체적인 스폰(접대) 행태를 확인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대포폰(차명 휴대전화)을 썼다. 지난 3월22일 심야 출국을 시도할 때도 자신의 사무실 직원 명의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공항에 나갔다. 대포폰 개설·판매·사용은 불법이다. 전기통신사업법에 저촉돼 처벌받는다. 징역형이 선고되는 경우도 있다. 범죄자들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대포폰을 사용한다. 범행을 감추기 위해서다. 김 전 차관도 그렇게 했다.
다만 김학의 전 차관이 대포폰을 사용하는 방식은 다른 범죄자들보다 은밀하고 치밀했다. 그의 대포폰 사용법은 ‘스폰서 검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남의 명의로 휴대전화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요금도 자기 돈으로 내지 않았다. 술접대와 성접대를 받을 때도 대포폰을 사용했는데, 그 대포폰조차도 ‘스폰(접대)’의 일환으로 받은 것이었다.


ⓒ시사IN 이명익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오른쪽)이 5월9일 서울 동부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시사IN>은 김학의 전 차관의 공소장에 담기지 않은, 검경의 수사 기록 등을 통해 그의 주변에 있던 스폰서의 구체적인 행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 전 차관은 뇌물 등의 혐의로 지난 6월4일 구속 기소됐다(33쪽 상자 기사 참조). 같은 날 함께 구속 기소된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1억3000만원 상당의 금품과 성접대를 받았다는 내용 등이다.
윤씨 외에도 김학의 전 차관의 스폰서로 지목된 이가 또 있다. 사건이 처음 불거진 지 6년 만에 다시 꾸려진 2019년 검찰 특별수사단(단장 여환섭 청주지검장)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은 또 다른 건설업자 최 아무개씨로부터도 3950만원을 뇌물로 받았다. 최씨 회사의 법인카드 한 장을 아예 김 전 차관이 들고 다녔다. 그는 카드를 한 번 긁을 때마다 최저 22만원부터 최고 123만9000원까지의 금액을 서울 강남의 술집과 경기도 용인의 골프장 등에서 썼다. 수십만원 규모의 술값을 내달라고 여러 차례 최씨를 불러내기도 했다. 명절 ‘떡값’으로는 700만원을 따로 받았다.

건설업자 최씨가 김 전 차관에게 건넨 돈 중에는 휴대전화 대납 비용 450여만원도 포함된다. 최씨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김 전 차관에게 대포폰을 제공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로 재직 중이던 김 전 차관이 대포폰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해 시작된 일이라고, 최씨는 검찰에서 진술했다. 대포폰 개통도 ‘관리’의 일종이었다. 최씨에게 김 전 차관에 대한 관리는 ‘당장의 급한 일을 해결하기보다는 사업하는 사람에게 닥칠 수 있는 긴급상황 대비용’이라고 알려졌다.

최씨는 자신의 회사 직원 박 아무개씨에게 휴대전화 개통을 시켰다. 아는 선배에게 준다는 명목이었다. 전화번호를 조합하는 데도 신경을 썼다. 최씨는 공무원들이 번호 마지막 네 자리가 오름차순인 것을 선호한다고 여겼다. 그런 번호의 대포폰을 만들라고 부하 직원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부하 직원 박씨가 사장 최씨에게 넘긴 자기 명의의 휴대전화 번호는 011-××××-6060(2003년 8월부터 2008년 4월까지 사용), 010-××××-1248(2008년 5월부터 2010년 5월까지 사용) 등이었다. 매달 박씨가 요금을 냈다. 영수증을 회사에 제출하면 경비로 처리받을 수 있었다.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번호를 해약하고 폰을 폐기한 다음 새로운 대포폰을 만들었다.

검찰, 2011년 김학의 대포폰 번호 확인

건설업자 최씨는 2011년에도 지인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해 김학의 전 차관에게 건넸다. 이번에도 통화요금은 최씨가 냈다. 그런 최씨의 주변 인물들은 대다수가 휴대전화를 2개 이상 썼다고 한다. 그는 검찰·국정원 등 권력기관 공무원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가질 정도로 발이 넓었다(최씨는 공소시효가 완성돼 이번 ‘김학의 사건’에서는 기소되지 않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포폰으로 김학의 전 차관은 윤중천씨 및 피해 여성 등과 연락했다. 피해 여성들에 따르면, 윤씨는 김 전 차관에 대해 ‘법조계에서 엄청 힘이 센 검사이니 잘 모셔야 한다’라고 말하며 수차례 성관계를 강요했다. 흔히 알려져 있는 ‘원주 별장 동영상’ 등이 그것이다. 피해 여성들 중 일부는 김학의 전 차관과 윤중천씨가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2013년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피해 여성과 윤중천씨의 휴대전화에는 각각 김학의 전 차관의 대포폰 번호가 ‘학의형’ ‘김학의형’ 등의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윤중천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김 전 차관의 전화번호는 2013년 경찰 수사 당시 중요 단서였다. ‘윤중천씨가 누군지도 모른다’는 김 전 차관의 이름이 윤씨 등의 휴대전화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경찰이 해당 전화번호의 명의를 조회하자, 김 전 차관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이름이 나왔다. 수사 결과, 건설업자 최씨의 부하 직원 박씨로 밝혀졌다.

당시 수사 상황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차명폰 사용이 지금처럼 흔하게 이야기되지 않았다. 질이 낮은 양아치나 쓰던 것이라 여겼다. 공무원, 심지어 고위 공직자인 법무부 차관이 그럴 수 있다고 상상하기 힘들었다. 김학의 전 차관이 ‘윤중천도 모른다’고 진술하는 등 모든 것을 부인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만큼 그가 ‘차명폰을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 확인 자체의 함의가 컸다. 게다가 당시 발견된 전화번호가 김 전 차관이 쓰던 차명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말까지 나왔다.”

2013년 경찰에 출석한 건설업자 최 아무개씨는 대포폰을 개통하고 김학의 전 차관에게 전달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시사IN>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최씨는 물론 대포폰을 직접 개통한 부하 직원 박씨 모두 대포폰 관련 내용을 인정했다. 그뿐 아니라 ‘김학의 대포폰 사용’과 관련해서 2년 전(2011년)에 검찰 조사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차관이 2011년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씨와 대포폰으로 통화한 내용이 이미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으나 묻혔다.

ⓒ시사IN 이명익건설업자 윤중천씨는 자신의 강원도 원주 별장(위)으로 사회지도층 인사를 초대해 성접대를 했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 당시, 정관계 로비를 하다 국외로 도피했던 박태규씨가 그해 여름 공항에서 체포됐다. 당시 검찰은 박태규씨의 통화 내역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김학의 전 차관의 대포폰 번호를 확인했다. 김 전 차관의 스폰서인 건설업자 최씨의 직원 박씨가 개통한 대포폰이었다. 당시 사건을 조사하던 대검 중수부에서 최씨를 소환했다.

검경 수사 기록 등에 따르면, 건설업자 최씨는 2011년 검찰에 가기 전날 김학의 전 차관을 만났다. 김 전 차관이 전화했다. 늦은 밤 최씨의 집 앞까지 찾아왔다. 정작 그는 최씨를 만난 뒤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함께 온 낯선 이가 입을 열었다. ‘오래 돈 벌었으면 책임져야 한다. 내일 가서 잘 처리해라. 김학의 이야기는 하지 마라’는 요지였다. 김학의 대포폰에 대해 입을 다물라는 뜻이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던 당시의 김학의는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검사장이었다. 녹음을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 내 스폰서 문화의 전형”

격분한 최씨는 ‘있는 그대로 조사받으면 될 것 아니냐’고 맞받아쳤다.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돌변해 ‘꼬리 잘라내기’를 한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다음 날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간 최씨는 김학의라는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 다만 ‘그쪽 식구에게 줬다’라며, 검사에게 대포폰을 제공한 사실은 인정했다. 수사는 그것으로 끝났다. 현직 고위 검사와 로비스트(대검 중수부의 피의자) 사이의 연락은 그 자체로 스캔들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검찰은 묻어버렸다.

이 같은 정보를 입수한 2013년 경찰 수사팀은 ‘2011년 수사 자료’를 대검에 요청했다. 열흘 정도 지난 다음에야 대검이 답변했다. “그런 기록은 없다.” 결국 경찰은 최 아무개씨 관련 수사를 접고 윤중천-김학의 관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은 ‘2013년 검찰 수사팀’ 역시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검찰은 김학의 전 차관을 기소하지 않았고, 경찰에서 ‘제2의 스폰서’로 의심받은 최씨는 아예 부르지도 않았다. 김 전 차관과 함께 특수강간 혐의로 송치된 윤중천씨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대신 배임 등의 혐의로만 기소됐다. 검찰이 가벼운 죄를 적용했다는 비판이 나왔다(<시사IN> 제603호 “김학의는 박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사람” 기사 참조).

5년 넘게 봉인된 사실은 2018년부터 본격 활동한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이하 검찰 과거사위)의 재조사로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검찰 과거사위의 수사 권고로 꾸려진 검찰 특별수사단은 김학의 전 차관과 윤중천씨를 지난 6월 기소했다. 추가 사실도 드러났다. 7월24일 검찰은 법원에 공소장 변경 신청서를 제출했다. 김 전 차관이 차명 계좌(아내 이모의 계좌)를 사용해서 사업가 최씨로부터 1000만원대의 뇌물을 더 받은 사실이 드러나서다.

심지어 검찰은 해당 계좌에서 제3의 스폰서로 의심되는 김 아무개씨가 돈을 보낸 기록도 확인했다. 현재 김학의 전 차관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수사가 진척될수록 뇌물 규모가 불어나는 모양새다. 결국 이 사건은 검찰 과거사위가 지적했듯 “검찰 관계자와 건설업자 간의 유착에 기반한 검찰 내 이른바 스폰서 문화의 전형”을 드러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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