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일괄 폐지 가능한 일인가
  • 이상원 기자
  • 호수 620
  • 승인 2019.08.0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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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모든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정부가
받을 확률은 희박하다. 국가교육위원회를 신설해 공론화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자율형 사립고의 존폐 문제를 공론화 방식으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7월17일 기자회견에서 조 교육감은 “교육부가 법령 개정의 의지가 없다면 담대하게 자사고·외고의 제도적 폐지 여부에 대한 국민적 공론화를 국가교육회의에서 진행”하자고 말했다. ‘제도적 폐지’란 사실상 일괄 폐지를 말한다. 교육청이 자사고를 평가한 뒤 교육부 동의를 받아 지정 취소하는 현재의 개별적 폐지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2017년 11월 교육부는 ‘고교 체제 개편 로드맵’에서 이 과정을 3단계에 걸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1단계는 ‘자사고와 일반고의 고입 전형 동시실시’, 2단계는 ‘운영성과 평가기준 미달 학교 일반고 전환’, 3단계는 ‘국가교육회의가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정부가 국가교육회의와 협의’다. ‘국가교육회의’는 문재인 정부가 2017년 9월 신설한 대통령 직속의 교육 자문기구다.
최근 전국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재지정 심사는 2단계에 해당한다. 각 지역 교육청이 구성하는 지정·운영위원회가 5년마다 자사고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2014~2015년 심사와 달리 이번에는 전주 상산고, 안산 동산고, 부산 해운대고 등 각 지역 유명 자사고들이 연거푸 지정 취소되면서 파장이 커졌다(<시사IN> 제617호 “자사고 ‘스카이 캐슬’에 휘날리는 칼바람” 기사 참조). 서울교육청은 7월9일 13개 자사고 중 경희고·배재고·세화고 등 8곳을 지정 취소했다.

ⓒ연합뉴스7월21일 서울시 자사고학부모연합회 주최로 열린 ‘청소년 가족문화 축제 한마당’ 참석자들이 자사고 폐지 정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교육청은 특정 자사고에 대한 지정 취소를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가 ‘부동의’하면 이 결정은 효력을 갖지 못한다. 교육감들에게 재지정 평가는 최종 결정권도 없으면서 비난만 감수해야 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6월27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교육부 장관 동의 절차를 없애고 교육감에게 최종 결정권한을 돌려달라”는 성명서를 냈다.

조희연 교육감의 이번 제안은 그 반대에 가깝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대통령 공약 사항이기에, 정부가 주도적으로 법령을 바꾸거나 국가교육회의에 공론화를 위탁하라는 것이다. 2017년 국제중·자사고·외고 5곳을 재지정하면서 그는 “현행법상 시도 교육감 권한으로는 실제적인 (고교) 체제 개편이 어렵다고 판단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교육감협의회가 ‘정부가 권한을 남용한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조 교육감의 인식은 ‘정부가 의무를 해태(해야 할 일에 책임을 다하지 않는 태도)한다’에 가깝다.

사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의 ‘교육감이 최종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이 있다. 이미 교육부의 ‘고교 체제 개편 로드맵’ 3단계가 1단계(자사고·일반고 동시 선발)부터 제동이 걸린 상태이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 정부가 내놓은 시행령의 핵심 조항은 자사고에 지원하는 학생은 일반고에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는 ‘중복지원 금지’였다. ‘학생 선점권’이라는 자사고 특혜를 약화시킨다는 복안. 그런데 지난 4월 헌법재판소가 시행령의 이 조항에 대해 ‘자사고 지원자에게 과도한 불이익을 준다’며 위헌 결정을 내려버렸다. 정부의 1단계 계획에서 힘이 빠지면 2단계인 ‘교육청 평가를 통한 전환’의 의미 역시 퇴색된다. 교육청이 아무리 엄격한 기준을 세워 자사고들을 심사해도, 일부 자사고는 살아남을 것이다. 중복지원이 허용(=‘자사고의 선발권 유지’)되는 가운데 자사고의 전체 학생 정원이 줄어든다면(일부 자사고는 폐지될 것이므로), 재지정된 자사고는 더욱 ‘일류’ 고교로 군림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로드맵 3단계는, 일정 수준 이하의 자사고를 솎아내는 기능을 할 뿐, 대통령 및 교육감 공약의 취지와 동떨어진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조희연 교육감은 정부가 시행령을 고쳐 자사고를 일괄 폐지하는 방안이 최선이라고 본다. 자사고 존립 근거는 2011년 이명박 정부가 졸속으로 개정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므로, 이 시행령을 바꾸면 자사고를 모두 일반고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학부모와 자사고의 행정소송 제기를 무릅쓰고 이 길을 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유은혜 교육부총리는 6월24일 기자간담회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필요하다면 (교육청의 자사고 재지정) 평가가 끝나는 2020년 이후 추진할 수 있겠지만 교육부가 일괄 폐지하는 것은 맞지 않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자사고 폐지를 주장하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차선책으로 ‘국가교육회의에 공론화를 위탁하는’ 방식은 어떨까? 지난해 실시된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 공론화를 되짚어보면 마냥 낙관하기는 어렵다. 당시 국가교육회의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시민참여단 숙의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나, 그 논의 과정과 결론에 대해 뒷말이 많았다(<시사IN> 제572호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 기사 참조). 결과 발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김상곤 당시 교육부총리는 옷을 벗었다.

이에 대해 공론화 방식 자체보다 안건의 특수성 탓이 크다는 의견도 있다.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은 고입을 앞둔 중학교 3학년 학생부터 적용되기에 선택의 폭이 제한적이었고 시간에 쫓겼다. 반면 자사고 문제는 공론화 결론이 어떻게 나든 그 적용까지 최소한 5년이 걸린다. 올해와 내년에 교육청의 재지정 심사를 통과한 자사고는 2024~2025년까지 지위가 보장된다. 선택의 폭을 열어놓고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이다.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교육평론가 이범씨는 만약 공론화를 한다면, 의제는 ‘자사고 일괄 폐지’로 정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일괄 폐지가 논제가 되는 순간 ‘그럼 일반고는 어떻게 할 건데?’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생산적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회,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논의조차 못해


하지만 정부가 공론화 방식을 택할지는 미지수다. 공론화를 거치더라도 최종 결정은 정부 몫이다. 7월19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51.0%는 자사고 폐지 찬성, 37.4%는 폐지 반대 의견을 밝혔다. 총선을 앞둔 정부로서는 어떤 결정을 내리든 부담스러운 여론 지형이다. 게다가 비판을 감수하고 공론화 방식을 택해 어떤 결정을 내놓더라도 5년 뒤에 출범할 다음 정부가 뒤집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이에 따라 상당수 전문가들은, ‘독립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를 신설한 뒤 이 조직에 자사고 문제를 일임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야 자사고라는 예민한 사안이 정치 논리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대선 때 5당 후보 모두 국가교육위원회(명칭은 캠프에 따라 달랐다) 신설을 공약으로 내건 이유다. 교육계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그러나 국가교육위원회의 가동 시점은 당초 정부의 구상보다 점점 늦춰지고 있다. 올해 초 교육부는 ‘상반기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법안 제정’ ‘하반기 정식 출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관련 법안은 국회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어떻게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할지, 어느 정도의 교육부 권한을 교육위에 위임할지 등을 두고 의견이 거의 모이지 않는다. 가령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하윤수 회장은 “대통령·여당의 추천 위원수를 줄이고 학부모·사립학교 대표 참여를 늘려야 한다”라고 말한다. 성신여대 김경회 교수(교육학)는 “초정권적 교육정책이 나오려면 교육감 직선제 폐지가 전제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정부 사정에 밝은 한 교육계 관계자는 국가교육위원회 신설이 “총선 전에는 불가능할 것이다. 총선 뒤에, 언젠가 되긴 하겠지만 언제 될지는 모른다”라고 말했다. 주어를 ‘자사고 폐지’로 바꿔도 어느 정도 뜻이 통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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