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진화 덕에 뭐든지 다 먹네
  •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 호수 619
  • 승인 2019.07.3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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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200만 년 전부터 고기를 먹은 것으로 보인다. 먹거리가 정해져 있는 대다수 동물과 달리 인간은 어떤 식생활에도 적응할 수 있다. 다양한 식생활이 가능한 배경에는 다양한 유전자가 있다.
여름철이 되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더위로 입맛을 잃기 쉽습니다. 허해진 몸에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서 고기를 구워 먹으면 어떨까요? 냉면으로 마무리를 한 다음 후식은 아이스크림이 좋겠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지만 사실 이 메뉴 속에는 인류의 진화 역사가 녹아 있습니다.

영장류는 나무 위에서 기원했으며 나무 위의 생활에 적응한 동물입니다. 나뭇잎·과일·꽃 등 주로 식물성 먹거리에 의존합니다. 가끔 동물성 먹거리도 구하지만 곤충 정도입니다. 그에 비해 인류는 놀라우리만치 육식에 의존합니다. 인류가 먹는 고기는 조그마한 곤충류가 아닙니다. 큰 몸집을 자랑하는 동물을 먹습니다. 인류는 채식주의자들처럼 식물성 먹거리만 먹을 수도 있지만, 황제 다이어트를 할 정도로 고기만 먹어댈 수도 있습니다.
ⓒ시사IN 이명익열량 대부분을 고기로 섭취하는 일이 가능하게 되면서 인류의 두뇌 용량이 커졌다.

인류의 고기 사랑은 특별합니다. 인류와 가장 가까운 침팬지는 가끔 힘을 모아 사냥해서 고기를 먹습니다만, 인류의 고기 의존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류가 상당한 양의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능력은 아마도 200만 년 전에 호모속이 등장한 다음에야 본격 갖추어졌을 것입니다.

인류가 상당한 양의 고기를 먹었으리라고 추정하는 이유는 200만 년 전에 등장한 호모 에렉투스나 호모 에르가스터의 머리와 몸집이 이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비해 상당히 크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처음 등장한 이후에도 두뇌 용량이 계속 커졌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평균 두뇌 용량이 450㏄ 정도였다면 호모 하빌리스는 600㏄, 호모 에렉투스는 900㏄ 정도입니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는 1450㏄가량의 두뇌 용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머리든 몸집이든 크게 만들려면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질처럼 집약된 영양분이 필요합니다. 일단 커진 머리와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집약된 영양분이 지속적으로 필요합니다.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질에 의존하지 않고 식물성 먹거리로만 큰 몸집을 유지하려면 엄청난 양을 먹어야 합니다. 과연 몸무게가 상당히 나가는 고릴라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먹는 것으로 보냅니다. 고릴라의 두뇌 용량은 500㏄ 정도입니다. 초기 인류의 두뇌 크기를 식물성 먹거리로만 유지하려면 하루 종일 먹어도 모자랄지 모릅니다. 게다가 200만 년 전 아프리카는 건조화의 진행으로 식물성 먹거리조차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인류는 200만 년 전 커진 머리, 몸집과 함께 동물을 먹은 흔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인류의 고기 사랑은 이맘때부터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동물성 지방질과 단백질은 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소화시키기도 힘듭니다. 간에 과부하가 걸리기 쉽습니다. 인류는 아포지방단백질을 이용해서 혈관 속의 동물성 지방단백질을 치웁니다. 이 중 혈중 지방단백질을 특히 잘 낮추는 물질은 아포지방단백질 E 중에서도 엡실론 4 형태(Apo E epsilon 4)입니다. 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가 우리 몸에 등장한 시기는 약 150만 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150만 년 전은 호모 에렉투스가 주먹도끼를 만들어 동물을 사냥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합니다.

고기를 많이 먹을 수 있는 능력은 나중에 네안데르탈인이 빙하기를 견뎌내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눈과 얼음으로 덮인 유럽의 계곡을 누비면서 네안데르탈인은 큰 몸집의 동물들을 사냥했습니다. 식생활은 뼈나 이빨에 질소 동위원소로 흔적을 남깁니다. 네안데르탈인은 육식동물인 하이에나와 비슷한 정도의 질소 동위원소 프로필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은 매일 평균 현대인의 두 배 이상 열량이 필요했는데 그 대부분을 고기로 섭취했던 것입니다. 아니, 열량 대부분을 고기로 섭취하는 일이 유전자 진화를 통해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어떻게 우유를 마실 수 있게 되었나

농경 이후에 생긴 중요한 유전적 변화로 주목받는 락테이스(락타아제)는 우유나 아이스크림에 있는 유당(락토오스)을 분해하는 효소입니다. 우유를 마시거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괴로운 사람들이 있는데, 락테이스가 없기 때문입니다. 유당 불내성(lactose intolerance)이라고 하는 이 증세는 고쳐지지 않습니다. 우유를 매일 조금씩 마신다고 인성이 길러지지도 않고, 많이 마신다고 증세가 더 심해지지도 않습니다. 유당은 소젖뿐 아니라 모든 젖먹이 동물의 젖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곡선사박물관 제공호모 에렉투스(위·가상도)의 머리와 몸집은 이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비해 상당히 크다.

유당 불내성을 가지고 태어난 경우는 드뭅니다.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의 새끼는 갓 태어나면 젖만 먹고 자라나니까요. 하루 종일 젖만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이유는 락테이스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락테이스를 만드는 유전자가 활발히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이유기를 거치면서 락테이스는 점점 덜 만들어지고 결국 젖을 떼게 됩니다. 젖을 떼고 어른이 먹는 음식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질수록 락테이스는 덜 만들어지는 대신 다른 소화효소들이 많이 생깁니다. 젖을 더 이상 먹지 않고 다양한 음식을 먹고 마시는 어른이 되면 락테이스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락테이스를 만드는 유전자가 비활성화되는 것입니다.

인간 역시 보통의 젖먹이 동물처럼 어른이 되면 우유를 소화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유당 불내성’은 약으로 치료해야 하는 병이 아닌, 어른으로서 지극히 정상인 상태입니다. 전 세계에서 우유를 마실 수 있는 어른은 인구 집단별로 보통 1~10%에 불과합니다. 여기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대부분, 유럽의 상당 부분이 속합니다. 그러니까 특이한 사람들은 오히려 어른이 되어서까지 락테이스를 만드는 유전자가 활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유당 불내성’이 특이한 것이 아니라, ‘유당 지속성’이 특이한 현상인 것입니다.

이렇게 특이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역이 있습니다. 국가별로 볼 때 유럽의 스웨덴·덴마크, 아프리카의 수단, 그리고 중동의 요르단·아프가니스탄 등은 어른 중 70~90%가 락테이스를 만들어냅니다. 이들 국가는 오랜 기간 목축 낙농업에 의존해왔습니다. 이곳에서는 우유를 비롯한 유제품이 음식의 주를 이룹니다. 목축 낙농업을 하는 집단에서는 락테이스가 어른이 되어도 계속 활발하게 만들어져 유제품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락테이스에 대한 목축 낙농업 가설은 21세기 들어서야 유전학적 배경이 밝혀졌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락테이스를 계속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락테이스 유전자 주변에서 유전자를 조절하는 위치에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돌연변이는 모두 다 똑같지 않습니다. 유럽의 스웨덴에서 보이는 돌연변이는 아프리카의 수단에서 보이는 돌연변이와 서로 다른 염기서열입니다. 현재까지 락테이스 조절 유전자에서 적어도 네 종류의 돌연변이가 발견되었습니다.
ⓒEPA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남으로써 인류는 우유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돌연변이가 먼저인지 낙농업이 먼저인지도 불분명했습니다. ‘우유를 많이 마시니까 효소가 생겼겠지’라는 추측은 낙농업을 한 시기가 유전자 돌연변이가 등장한 시기보다 먼저여야 말이 됩니다. 유럽에서 낙농업은 신석기 시대 이후에 시작됐습니다. 만약 유럽의 신석기인들이 락테이스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는 돌연변이를 원래 지니고 있던 사람들이 목축업과 낙농업을 했다는 뜻이 됩니다. 반대로 돌연변이가 없었다면, 목축업과 낙농업을 하면서 돌연변이가 증가했다는 뜻이 됩니다. 2007년, 낙농업이 정착되기 이전 유럽의 신석기 시대 인골에서 DNA를 채취해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락테이스 돌연변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유럽에서 이 돌연변이가 본격적으로 증가한 시점은 낙농업이 시작된 이후인 지난 1만 년 이내라는 사실이 검증된 것입니다.

고기 못지않게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은 전분류입니다. 밥·떡·국수·빵·감자·고구마 등 전분류는 ‘탄수화물 중독’이라는 표현이 있을 만큼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습니다. 전분류를 많이 먹을 수 있으려면 유전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전분류를 소화시키는 일은 아밀레이스(아밀라아제)가 담당합니다. 일반적으로 동물은 아밀레이스를 췌장에서만 분비하지만 인간의 경우 침샘에서도 나옵니다. 침샘에서 나오는 아밀레이스는 전분류와 섞이며 단맛을 냅니다. 밥과 떡은 씹을수록 단맛이 나게 되고 우리가 계속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밀레이스를 만드는 유전자(AMY)는 여러 번 복사되기도 하여 어떤 사람은 같은 유전자를 여러 개 가지고 있습니다. 아시아처럼 전분류를 많이 섭취하는 지역에서 AMY 유전자를 여러 개 가진 사람이 많다는 연구 결과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인류의 진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 중

전분류는 아밀레이스를 거쳐 단당류로 분해되어 혈당을 높이게 됩니다. 높아진 혈당치를 적절하게 내리지 않으면 치명적으로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혈당치와 관련 있는 단백질인 클라트린(CHC22)을 만드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서 혈당치를 줄이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전분류의 섭취가 급격하게 늘어난 농경시대 이후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전분류 소화에 관련된 유전자 연구는 아직 시작 단계입니다. 앞으로의 연구가 기대됩니다.

한동안 우리는 문화와 문명이 발달하면 생물학적 진화는 멈춘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근래의 유전학 연구는 인류의 진화가 멈추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이야기해줍니다. 우리는 어떤 식단도 먹을 수 있습니다. 먹거리가 정해져 있는 대다수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어떤 식생활에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채식주의자에서부터 육식주의자까지 다양한 식생활을 해낼 수 있는 배경에는 다양한 유전자가 있습니다. 유전자들은 20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 인류의 진화 역사 곳곳에서 돌연변이와 함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식생활은 온전히 문화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전자와 문화가 어우러져서 함께 변화해온 결과입니다. 인류는 오늘도 진화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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