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서점 알라딘 독자가 선정한 ‘올해의 책’ 면면은 오프라인 서점 순위와는 미묘하게 달랐다. 물론 올해 인문서 사상 처음으로 오프라인 서점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정의란 무엇인가〉가 알라딘에서도 1위(19.6%)에 오른 점은 같았다.

하지만 2위는 지난해 알라딘 선정 올해의 책 1위에 올랐던 〈1Q84〉 3권이 차지했다. 18.9%를 얻어 〈정의란 무엇인가〉와 박빙의 승부를 벌였다. 젊은 층이 비교적 많이 이용하는 온라인 서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기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11월 출간하자마자 각종 베스트셀러 1위 목록을 휩쓴 장하준 교수(케임브리지 대학)의 신작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3위에 올랐다. 출판계 관계자들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의 판매 기록을 뛰어넘을 것인지가 2011년 상반기 출판계의 커다란 관심거리 중 하나라고 말한다.

온라인 독자들, 주류 언론이 외면한 이슈에 관심

박하영 알라딘 도서팀장은 “정치적 상황 때문인지 최근 몇 년 동안 사회과학적 이슈를 다룬 책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출판사에서도 예상치 못한 〈정의란 무엇인가〉의 대박으로 마이클 샌델의 책이 국내에 연이어 출간되었으나, 〈정의란 무엇인가〉만큼 호응을 받지 못했다. 이는 독자들이 ‘정의’라는 키워드에 반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정의’라는 키워드의 연장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삼성을 생각한다〉가 5위에 오른 점이다. “어느 신문에서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지 못한 〈삼성을 생각한다〉가 독자 투표 100%인 인터넷 서점 투표에서는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것이 흥미롭다”라는 박하영 팀장의 말처럼 올해 온라인 서점을 애용하는 독서광들에게 ‘삼성’은 깊은 사유의 대상이었다.

12월20일 발표한 교보문고의 ‘2010 연간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삼성을 생각한다〉가 20위에 겨우 턱걸이한 점을 감안하면 알라딘 독자들이 이 책을 5위에 ‘올려놓은 건’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온라인 서점 독자들이 주류 언론이 조명하지 않은 정치·사회적 이슈에도 민감하게 관심을 기울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 비운의 삶을 살다간 덕혜옹주의 일생을 다룬 소설 〈덕혜옹주〉가 4위에 올랐다.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이라는 시기적 특성이 맞아떨어진 데다 여성 독자의 감수성을 자극했다는 평가다. 소설 가운데 유일하게 5위 안에 들었다. 〈개밥바라기 별〉 〈1Q84〉 등 지난 2년 동안 모두 소설이 1위를 차지한 것과는 달랐다.

2009년 알라딘 올해의 책은 소설, 그리고 노무현 열풍이었다고 볼 수 있다. 1위 〈1Q84〉(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해 4위에 〈도가니〉(공지영), 10위에 〈신〉(베르나르 베르베르)이 오르는 등 세 권의 소설이 10위권에 들었다. 〈성공과 좌절〉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후불제 민주주의〉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루거나, 그 정신을 되새기려는 책들이 10위권에 들었다.

올해에도 소설의 인기가 크게 시들지는 않았다. 〈덕혜옹주〉(4위) 〈허수아비춤〉(9위)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10위) 등 소설 네 권이 10위권에 들었다. 하지만 순위는 지난해에 미치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 관련 서적으로는 〈운명이다〉가 6위에 올랐다. ‘노무현의 적자’라 불리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노 전 대통령의 생애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다. 지난해에 비해 바람의 세기는 잠잠해졌지만, 서거한 지 1년이 훨씬 지나도록 그의 생애를 되짚어보는 책이 주목을 끈다는 점에서 온라인 서점의 ‘노무현 바람’은 여전하다. 교보문고 연간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운명이다〉가 20위권 밖으로 한참 밀려난 것과는 대조적이다.

노무현 바람은 ‘올해의 저자’ 부문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알라딘 선정 올해의 저자 부문에서는 뜻밖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1위(10.9%)를 차지했다. 무라카미 하루키(2위), 장하준(3위), 마이클 샌델(4위)을 모두 제쳤다.

알라딘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해에 이어 2010년에도 올해의 저자 1위로 그가 뽑혔다. 김대중 대통령도 올해의 저자 8위에 오르는 등 지난해 서거한 두 대통령에 대한 독자들의 호응이 시들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5위에 법정 스님이 오른 것을 제외하면, 올해의 책 10권과 올해의 저자 10명은 거의 일치했다.

‘톱 10’에 들지 못한 나머지 20여 권의 면면도 흥미롭다. 허영만의 음식 만화 〈식객 27권〉이 아깝게 11위를 차지했고, 철학자 강유원이 쓴 〈인문고전강의〉가 12위였다. 박완서의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13위), 축구 선수 박지성의 자서전 〈나를 버리다〉(14위), 법정 스님의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15위)이 뒤를 이었다. 그 밖에 “신이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라는 주장으로 화제가 된 세계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위대한 설계〉가 16위를, 최규석의 만화 〈울기엔 좀 애매한〉이 20위를 차지했다.

자기 계발서와 경제·실용서의 인기는 눈에 띄게 시들했다. 기업가 정신을 역설한 〈스무 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19위), 전 세계 다국적기업의 CEO와 경제 석학을 인터뷰한 〈혼·창·통〉(30위) 따위가 10위권 밖에서나마 명맥을 유지했다. 

‘알라딘 독자 선정 2010 올해의 책’ 투표는 11월24일부터 12월20일까지 이루어졌다. 11월24일부터 12월12일까지 1차 투표를 통해 30권을 선정했고, 이를 놓고 12월20일까지 투표를 진행해 ‘올해의 책’ 10권을 뽑았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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