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삶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낫기를 기대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게 만든 주범은 일자리의 악화다. 청년 실업이 일반화되고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 60%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5월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노동 유연성 문제를 올해 말까지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한다”라며, 고용 관련 법규와 관행의 개혁을 강하게 주문했다.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등장한 정권이 이런 행태만을 일삼으니 ‘고용 빙하기’에서 벗어날  조짐이 보일 리 없다.

2007년에 등장한 ‘88만원 세대’는 우리 역사상 최고로 ‘스펙’을 키운 세대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인터넷에서 놀기 시작한 그들은 글로벌화와 정보화 시대의 최첨단을 달렸다. 그들은 절대 빈곤을 겪지는 않았지만 ‘인턴 왕국’ ‘알바 천국’에서 온갖 ‘알바’를 전전하며 인간적 무시를 뼈저리게 당한 경험이 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대중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따위를 읽으며 성공을 꿈꾸었다. 하지만 그것이 쉽게 오르지 못할 산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살아남기에 급급했다. 자기가 추구하는 행복의 범위를 축소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자, 2008년에는 ‘자기 치유’의 늪에 빠져들었다.

작년에는 그나마 〈엄마를 부탁해〉 〈도가니〉 등을 읽으며 다방면의 ‘소통’을 기대했지만, 많은 개인이 어느 누구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정치권력은 소통을 입에 달고 있기는 하나 사회 정의와는 담쌓고 사실상 독주만 일삼으면서 역설적이게도 ‘공정 사회’를 부르짖었다.

이제 대중은 그런 정치권력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고 ‘스스로의 변화’에 마지막 기대를 걸기 시작했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개인과 사회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었으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안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2010년 출판시장의 키워드는 ‘자기 구원’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 구원’과 조응하는 책 인기

자기 구원을 추구하는 대중은 먼저 정의와 도덕 등 인간의 삶에 가장 근본적인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가 65만 부 이상 팔리며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것이 대표적이다. 마이클 샌델은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를 중시하는 공리주의적 시각에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좇고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정의라고 말한다.

대중은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도 강한 의구심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오랜 불황에 시달린 대중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또 성장 산업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하고 4대강이나 토목공사에 집착하는 국가 권력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부자 감세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자들의 핵심 구호 23가지에 관한 거짓과 진실을 명쾌하게 설명해준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부키)가 주어지자 그들은 곧바로 이 책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두 책의 인기는 인문사회 과학서의 부활이 아니라 무너져가는 개인들의 자존심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라 볼 수 있다. 자기 구원과 조응하는 올해의 출판 키워드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미국산 자기 계발서의 몰락:인간의 자기 계발 감성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 그러나 2000년대 내내 청년 세대의 손에서 떨어질 줄 몰랐던 자기 계발서는 완전히 몰락했다. 그들은 대신 휴대전화로 〈무한도전〉 〈남자의 자격〉 〈슈퍼스타K 2〉 〈1박2일〉 따위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해 보며 자기 계발의 감성을 대신했다. 이 같은 현실에서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밀려들 것이라고 말하는, 유머집 같은 행복론 〈행복은 혼자 오지 않는다〉(은행나무)가 거의 유일하게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이 책의 성공 이후 자기 계발서를 ‘행복’이라는 키워드로 포장하는 것이 유행했다.

20대 당사자 담론 활발:〈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김예슬 선언’이 터져나온 뒤 청춘들이 자신이 처한 현실과 세상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책이 줄줄이 나왔다. 16권짜리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시리즈, 〈고 어라운드〉(이승환) 〈요새 젊은 것들〉(단편선 외) 〈위풍당당 개청춘〉(유재인) 〈이십대 전반전〉(문수현 외) 〈청춘대학〉(이인) 등이다. 청춘들을 위로하는 어른들의 책으로 김어준의 〈건투를 빈다〉, 엄기호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이상 푸른숲), 김남훈의 〈청춘 매뉴얼 제작소〉(해냄) 등이 줄줄이 출간되어 화제가 되었다.

자서전과 평전의 인기:인간은 현실의 인물에게 만족하지 못하면 역사적 인물에게서 대리 만족을 느낀다. 법정의 입적 직후 〈아름다운 마무리〉와 〈일기일회〉(이상 문학의숲)를 비롯한 그의 책들이 한때 베스트셀러 목록을 휩쓸었다.

〈김대중 자서전〉(삼인)과 노무현 자서전인 〈운명이다〉(유시민 정리, 돌베개)에 대한 뜨거운 반응, 리영희의 작고 이후 〈리영희 평전〉(김삼웅, 책보세)과 그의 책들 인기가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에도 자서전과 평전의 문화가 고개 들기 시작했음을 알려주었다. 홀로 서고 싶은 여자이면서 조국을 잃은 한 개인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기구한지를 그린 〈덕혜옹주〉(권비영, 다산책방)와 캐릭터가 강한 네 인물의 로맨스를 그린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정은궐, 파란)의 인기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사회 비리의 고발과 증언:삼성의 본질을 통해 한국 사회의 본질을 파헤친〈삼성을 생각한다〉(김용철, 사회평론), 경제 권력의 비리와 부정을 고발한 장편소설 〈허수아비 춤〉(조정래, 문학의문학),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그린 〈4천원 인생〉(안수찬 외, 한겨레출판), 새로운 빈곤층의 등장을 알린 〈하우스 푸어〉(김재영, 더팩트), 빈곤의 원인과 천안함의 진실을 밝히는 책 등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고 증언하는 책들의 출간이 활발한 것도 올해 대중이 자기 구원에 목말랐음을 보여준 증거라 할 수 있다.

기자명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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