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내 말이 그 말이에요〉를 펴낸 김제동씨와 반려견 ‘탄이’.ⓒ시사IN 조남진
신간 〈내 말이 그 말이에요〉를 펴낸 김제동씨와 반려견 ‘탄이’.ⓒ시사IN 조남진

김제동씨(50)가 신간 〈내 말이 그 말이에요〉를 펴냈다. 개그맨·방송인인 그는 책 여섯 권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김제동씨는 사회참여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만나고, 경북 성주에서 사드 배치를 논했다. 2016년 촛불집회 때는 연단에 올라 헌법을 이야기했다. 전작인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2018)는 ‘김제동의 헌법 독후감’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의 이런 행보에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다.

3월13일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 후 여러 보도가 나왔다. 김제동씨가 ‘사회적 발언을 하지 않겠다’ ‘과거 한 말이 후회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내 말이 그 말이에요〉에는 사회문제에 대한 소신이 거의 들어 있지 않다. 일상의 소소한 일화가 주를 이룬다. 반려견 ‘탄이’와 함께 온 김제동씨를 만났다. ‘사이다’ 발언으로 유명한 그는 인터뷰에서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웃음을 주는 데에 장벽이 되는 요소를 걷어내고 사람들에게 편하게 말 걸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떤 언행을 하거나 하지 않을지, 미리 정할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책을 많이 냈다. 글 쓰는 걸 좋아하나?
나는 쓴다기보다 보통 말을 한다. 말을 바탕으로 쓴다. 쓰다 보니까 조금씩 늘더라. 보통의 방식으로는 글을 못 써서, 독특하다면 독특한 방향으로 진화한 것 같다. 출판사에서 ‘책처럼’ 고치자고 제안할 때가 있는데 나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러면 책에서 목소리가 안 들리고 ‘말의 누수’가 생긴다. 그건 나다운 게 아니니까. 단락 중간중간에 ‘(웃음)’을 넣는 게 제일 중요한 작업이다. 무대에서 이야기할 때는 내 표정, 말투, 앞뒤 맥락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확 웃는데 책은 받아들이기에 따라 완전히 다르니까. 이 과정이 힘들지만 재미있다.

‘누수’를 줄이려면 책보다 유튜브 같은 영상매체가 낫지 않나?
문득 드는 생각은 책은 댓글을 못 달잖나? ‘일방향’을 선호한다(웃음). 책은 좀 더 느려서 서로에게 여유가 있어서 좋다. 아직도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는 분들이 있다. 속도나 효율 면에서는 말도 안 되게 떨어지는데도. 유튜브를 하는 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나는 책 쪽이 훨씬 맛있더라. 그 숙성하는 시간이 좋다. 온전히 혼자 쓸 수 있고 ‘전체’가 남아 있는 것도 좋다. 오해의 소지가 두려운 건지도 모르겠다. 카페에 앉아서 친구하고 이야기하는데 이걸 부분 부분으로 잘라서 편집하면 이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책은 ‘쇼츠’가 없다. 통으로, 둘이 이야기하는 느낌이라 정이 간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안 시끄럽게 살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전체 맥락은 이렇다. 나는 사람들을 웃기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예전에는 어떤 TV 프로그램을 하든 아이들부터 어르신까지 전부 만나서 서로 웃고 정말 친하게 지냈는데, 어느 순간엔가 내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사람들이 생긴 것 같다. 이제 이런 장벽 없이 사람들과 그냥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뜻이었다. 우리 가족부터 (정치) 성향이 전부 다르다. (기호) 1번부터 끝까지 전부 다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웃음). 사람이 친해지고 나면 못할 이야기 없다. ‘이놈은 이런 놈이다’라고 먼저 벽 세우지 말고 공통된 주제로 이야기하면서 웃어보면, 사실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큼 날이 서 있지 않다. 무언가 틀을 씌우려는 사람들은 내가 그냥 한쪽에 머물기를 바랐던 것 같다. ‘얘는 더 이상 당신들과 친한 사람이 아니고, 당신들이 알던 사람이 아니다’라는…. 흔히 말하는 논란이 있기 전까지 나는 사람들하고 되게 친했던 사람인데 그게 무섭고 두려웠다. 그렇게 시끄러워지는 게 좋지 않았다.

‘이제 사회적 발언을 덜 하겠다’는 취지라고 보도한 매체도 있다.
언젠가부터 웃음과 사회적 실천 사이 무게추가 점점 사회적 실천 쪽으로 기울었다. 그런데 사회적 실천을 안 하고 살 필요는 없고 못할 이유도 없다. 그건 표현의 자유다. 민주공화국 시민의 권리다. 나는 헌법으로 사람을 웃길 수 있는 최초의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다. 여태 헌법을 소재로 웃긴 사람은 없었잖나. 지금도 정치를 소재로 개그 하면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다. ‘캐릭터’가 이미 그렇게 잡혀 있으니까(웃음). 그렇다고 정치적 이득을 받거나 한 적은 없다. 총선에서 무슨 역할을 한 적도 없고. 앞으로 ‘이건 하겠다, 이건 안 하겠다’고 스스로 규제하는 건 아니다. 내 인생 한 걸음 앞도 알 수 없는데. 다만 모든 일의 중심에는 우리 동네 주민들하고 지내는 것처럼 사람들과 좋게 좋게 가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

과거의 선택을 되돌리고픈 때가 있나? 사회적 실천보다 웃음을 택하는 쪽으로?
없다, 없다, 없다. 그 시대로 잠시 돌아가서 잠깐 곰곰이 생각해본다. 후회는 하는데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이 그 선택들을 할 거다. 그리고 또 돌아서서 다시 생각할 거고, 다시 그런 선택을 할 거다. 그게 사람들을 웃기는 일, 그게 사람들의 슬픔을 덜어내는 일이고 기쁨을 더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렇다. 마이크를 든 사람의 역할은 그랬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나는 슬픈 사람들이 마이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가고, 기쁜 사람들이 기쁨을 배가시켜 달라고 해서 간다. 지금도 그런 요청을 받으면 고민하겠지만 아마 거절하지는 않을 거다. 다만 ‘전당대회에 가서 사람들을 웃기라’는, 이런 첨예한 정치적인 일은 하지 않겠다는 거다. 사람들이 내 의도를 오해할까 봐 무섭기는 하지만 선택을 바꾸지는 않을 것 같다.

‘웃기는 일’이라는 말을 포괄적으로 쓴다.
그렇다.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다. 내게는 그것보다 더 개별적이면서 포괄적인 말은 없다. 웃기고 싶은 건 좋아한다는 거다. 내가 지금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뜻이다. 무대에 서서 나 때문에 사람들이 웃는 걸 본 적 있나? 굉장한 몰입의 순간이다. ‘좋다’는 말로 부족하다. 제주도 골목길을 올망졸망 걸어가다가 툭 틀어서 나갔는데 갑자기 유채꽃이 쫙 핀 들판이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이다. 현장에서 드는 이 감정은 이 직업을 가진 사람만 알 것이다. 이런 느낌은 방송보다 무대에서 더 받는다. 오히려 카메라가 있으면 멈칫해질 때가 많다. 아는 동생이 ‘형은 카메라 없을 때 웃겨서 큰일이야. 카메라 좀 숨겨달라고 해봐’라고 하더라.

예전보다 덜 웃긴다고 생각하나?
당연하다. 전성기를 지났다. (KBS 연예) 대상 받고, 백상예술대상(남자 예능상) 받았던 그 전성기는 갔다. ‘층’이 달라졌다. 세월이 지나면서 내가 재미있어 하고 웃는 부분이 바뀌었다. 그래도 내 능력 중 타고난 부분이 여전히 있다. 가끔 댓글에서 예전이 더 재미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에 대한 평가는 바뀔 수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지금이 더 재미있다고 하는 분도 많을 수 있으니까. 다른 권위의 인정을 갈구하는 시기가 지났고 현실적으로도 그건 어렵지만, 현장에서 마이크를 쥐었을 때의 독보적인 능력은 여전히 우주 최강이라고 생각한다. 왜 안 웃나?(웃음) 방송을 좀 덜하면 누군가는 슬럼프라고 여길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런 생각 안 했다. 내가 지금까지 무대에서 안 웃긴 적은 한 번도 없다. 내 기준에 따라 ‘오늘은 좀 덜 웃겼네’ 싶을 때는 있어도. 이건 내 결이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엄청 잘난 척한다.

웃기는 일이 재미없어진 적은 없나?
없다. 항상, 항상 재미있다. 괴로운 건 나 때문이든 다른 것 때문이든 무대가 가로막혔을 때다. 막혔다는 건 다른 게 아니고, 세월이 지나면서 놔야 하는 게 있다. 20대 때 했던 그 대학교 축제, 대구의 그 야구장 무대로 지금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때가 엄청 그리울 때가 있다. 선글라스 끼고 무대에 나가고, 선글라스 벗으면 사람들 막 웃고…. 그때가 그립지만 이름이 알려지고 나서 그런 자유로움까지 만끽하겠다는 건 욕심이다. 다른 무대를 찾아 나선 결과가 책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보면서 그냥 피식피식 웃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2016년 12월10일 광주 촛불집회 행사 사회자로 무대에 오른 김제동씨.ⓒ시사IN 조남진
2016년 12월10일 광주 촛불집회 행사 사회자로 무대에 오른 김제동씨.ⓒ시사IN 조남진

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강연한 일화를 책에 많이 썼다.
애들이 점점 더 좋아진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운, 힘이 있다. 선입견 없이 본다. 그들에게는 그냥 ‘사람 김제동’이 온 거다. 장벽 없이, 아주 원초적인 인간 대 인간으로 딱 만났다. 핸드폰으로 검색해보고 질문을 하는데 아주 날것이다. ‘아저씨 왜 이렇게 욕을 많이 먹어요?’ ‘왜 우리보고 노력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요?’ 그 말에 내가 답하면 애들은 ‘욕한 사람 나빴다’고 한다. 그게 그렇게 큰 위로다. ‘일단 아저씨가 그렇게 얘기한 건 맞네요?’ ‘에이 혀가 길다’ 하는 애들도 있다(웃음). 이런 이야기들이 참 ‘살아 있다’. 놀랍게도 세대 차이를 하나도 안 느낀다. ‘아저씨 뉴진스 멤버 이름 알아요?’ 하면 ‘니들은 핑클 멤버 이름 알아?’라고 답하고(웃음). 차이는 웃음을 훨씬 풍요롭게 하고 풍성하게 만든다. 다르지 않으면 웃을 이유가 없다.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래도 웃음이 덜하잖나.

올해 쉰 살이 되었다.
‘선생님’ ‘생신’ 이런 말을 들을 때 기분 더럽다(웃음). 사실 감정 기복도 심해지고, 모든 게 너무 헷갈린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을 갖고 판단해야 할까? 아니, 완전히 새로운 일이 펼쳐지는 건데 그럼 잣대가 달라져야 할까? (생각이) 점점 밖에서 안으로 뻗는지 다른 사람 일은 아예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보다 훨씬 뿌예진 느낌이다. 뭐 하나도 선명하게 이야기를 못하겠다. 오전에는 옛날 어르신들처럼 ‘다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가, 1분 만에 ‘개뿔’ 하는 생각이 들고. 오후에는 〈나의 아저씨〉 보고 울다가 몇 시간 뒤에는 막 목 자르는 〈귀멸의 칼날〉 애니메이션 보고. 개랑 산책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이 즐겁다가도 돌아서면 또 외롭고. 어떤 일이나 사람에 대해 금세, 급하게, 선명하게 ‘이래선 안 돼’라고 못하겠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나는 투사가 아니라 광대다. 네 살 땐가, 작은 책상 위에 올라가서 춤추고 해서 할머니들한테 박수를 받은 기억이 있다. 학교에서 응원단장 하고 커서도 계속 무대에 올랐다. 어떤 무대에서든 내 일의 70~80% 이상은 사람을 웃기는 것이다. 그게 집회의 형태라도 그랬다. 어떤 사람은 ‘(김제동이) 누구하고 싸운다’고 생각했을 수 있지만 사실 대부분 경우 내 생각은 ‘사람들이 이렇게 화가 나 있을 때도, 슬픈 와중에도 웃으면서 힘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웃음의 소재가 된다면, 그 무대에 안 서겠다는 태도가 오히려 장벽이다. 평가, 편견, 배경지식 같은 모든 종류의 벽을 걷어내고 웃음에 집중하고 싶다. 그렇게 하지 못할까 봐 무섭고 오해받을 게 두렵지만 이게 내 결이고, 내가 일을 그만큼 사랑한다는 뜻을 알아주면 좋겠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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