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당시 시신 수습에 나선 황병주 잠수사씨의 팔. 이틀에 한 번 4시간씩 혈액투석으로 혈관이 울퉁불퉁해졌다. ⓒ시사IN 이명익
세월호 참사 당시 시신 수습에 나선 황병주 잠수사씨의 팔. 이틀에 한 번 4시간씩 혈액투석으로 혈관이 울퉁불퉁해졌다. ⓒ시사IN 이명익

10년이다. 감히 그 앞에 수식어를 붙일 수가 없다. ‘벌써’ ‘아직’과 같은 부사 그 어느 것도 2014년 4월16일을 지나온 우리의 시간을 형언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그날이 기어코 오고 있다. 2024년 4월16일, 세월호 10주기를 앞두고 있다.

〈시사IN〉 사진팀 조남진·이명익·신선영·박미소 기자가 지난 1월7일부터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 시리즈 온라인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4월16일을 역산해 그날까지 ‘세월호 사람들’ 100명을 만나는 기획이다. 단원고 희생자 가족만이 아니라, 일반인 희생자·생존자 가족과 잠수사·활동가·언론인 등이 기억하는 세월호 참사를 기록했다.

유독 눈이 가는 사진이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시신 수습에 나선 잠수사의 팔이다. 황병주씨는 2014년 4월20일부터 7월7일까지 현장을 지켰다. 나흘째 잠수병이 왔다. 일주일 정도 쉬어야 하는데 다음 날 또 잠수를 했다. 몸을 돌볼 때가 아니라고 여겨서다.

그 대가가 팔에 고스란히 남았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황씨는 이틀에 한 번 4시간씩 혈액 투석을 한다. 해경을 상대로 낸 산재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가는 여전히 보이질 않고, ‘가만히 있지 않았던’ 시민의 몫만 남았다.

마음에 남는 말도 있다. “이태원 참사를 보며 유가족들에게 미안했어요. 그런 참사를 만들지 않겠다고 싸워왔는데 결국 또 희생자가 나왔잖아요.” 세월호 생존자 장애진씨의 아빠 장동원씨의 얘기다. 왜 미안함은 세월호 사건 후 생업을 작파하고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활동에 뛰어든 이의 몫인가.

그래서 ‘지난 10년 사이 한국 사회는 얼마나 나아갔느냐’고 따져 묻고 싶은 기분이 자꾸 든다. 그러다가도 또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살아남은 자들의 몫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크게 심호흡을 한 다음 배에 힘을 주고, 앞으로 내딛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겠다 싶어진다.

“10년이 지났는데, 저는 몇 년밖에 안 지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현재 우리는 진행형이잖아요. 10주기를 계기로 많은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진짜 간절해요. 근데 또 한편으로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지만 멈추면 안 될 것 같아요(세월호 생존자 장애진씨 엄마 김순덕씨).”

곧 4월이다. 2014년 4월16일 그날의 하루를 기억하는 분이라면, 〈시사IN〉이 기록한 100명의 이야기를 끝까지 모두 읽어주시길 부탁드린다. 그리고 널리 알려주시면 좋겠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무게는, 함께 나눠 질 수 있는 나와 우리의 몫이라 믿는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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