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들이 3월1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공무원 악성 민원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들이 3월1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공무원 악성 민원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3월5일 경기도 김포시청 9급 공무원 ㄱ씨가 자동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ㄱ씨는 자신이 맡은 도로관리 및 보수업무로 이른바 ‘좌표 찍기’를 당한 뒤 목숨을 끊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고인의 자택 컴퓨터에는 ‘악성 민원 때문에 힘들다’는 내용이 담긴 메모장 글이 다수 발견됐다.

ㄱ씨는 2월29일 밤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1시까지 김포한강로 강화 방면에서 포트홀(땅꺼짐) 긴급보수 현장에서 일했다. 김포시에 따르면, 지난 1월 말부터 이어지던 포트홀 보수 요청과 차량 파손 민원이 평소보다 급증했다. ㄱ씨는 욕설과 비난이 섞인 민원을 감당해야 했다. 3월 첫째 주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 착수한 보수공사는 차량 통행량이 많은 낮 시간을 피해 늦은 밤에 진행됐다. 하지만 편도 3차로 중 2개 차선을 통제한 공사인 만큼 도로 정체가 불가피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김포시 부동산 카페 이용자들이 ㄱ씨의 실명, 소속 부서, 직통 전화번호를 약 14만명이 가입한 해당 카페에 공유하며 ‘좌표 찍기’를 이어갔다.

늦은 밤 접수되는 민원 전화는 시청 당직실로 연결된다. 이날 밤, 김포시청 당직실에는 60여 건이 넘는 민원이 들어왔고, 현장에 있던 ㄱ씨에게도 수시로 민원 사항이 전달됐다. 항의 민원은 이날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인 3월4일 출근한 ㄱ씨의 직통 번호로 수십 건에 이르는 민원 전화가 걸려와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그날 ㄱ씨는 해당 카페에 올라온 인신공격성 글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튿날 3월5일,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공무원이 된 지 1년 6개월. 일반 기업에서 근무하다 퇴직하고 뒤늦게 신입 공무원이 된 그는 왜 목숨을 끊었을까. 해당 부동산 카페에 올라온 ‘좌표 찍기’ 게시물은 모두 자진 삭제됐고, 현재는 ㄱ씨가 사망한 다음 날 카페 운영진이 올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제목의 글만 남아 있다. 댓글에는 이전에도 카페 내에서 집단 민원을 종용하며 담당 공무원을 괴롭히는 ‘좌표 찍기’가 이어져왔다는 지적과, 카페 차원에서 반복적인 악성 민원을 조장하지 못하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른바 ‘좌표 찍기’는 대표적 악성 민원 유형이다. 악성 민원에 대한 법률적 정의는 없으나 2022년 7월 행정안전부가 개정·배포한 ‘공무원 민원 응대 매뉴얼’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행위를 특이 민원으로 분류한다. △폭언(욕설·협박·성희롱 등) △폭행 및 신변 위협 △장시간 통화 및 반복 전화 등이다. 2021년 악성 민원은 5만1833건에 이르는데, 2018년(3만4484건)에 비해 약 1.5배 증가한 수치다.

주로 인허가, 각종 불법영업 단속, 주정차 위반 단속, 복지지원금 선별 등의 업무를 맡는 부서에 악성 민원이 몰린다. 과태료 혹은 지원금 같은 재산상 이해관계가 얽힌 업무를 다루기 때문에 격앙된 민원인을 상대해야 하는 대표적 ‘감정노동’ 부서다. 여성과 연차가 낮은 청년 공무원이 많이 배치되는 부서이기도 하다.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친절하고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법적 의무(국가공무원법 제59조)를 지닌 공무원들은 민원인들의 고소·고발·불친절 민원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지난 1월, 경기 파주시 소통 담당 공무원은 환경 관련 민원을 1000건 이상 제기해온 민원인에게 자초지종을 듣고자 자택을 방문했다가 쇠망치로 머리를 수차례 가격당했다. 지난해 4월 경기 구리시에서는 수습 기간이 끝난 지 사흘밖에 안 된 신입 공무원이 민원인을 응대한 뒤 인근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한 달 뒤 부산 중구의 행정복지센터에서는 한 민원인이 복지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여성 공무원의 얼굴과 머리를 수차례 폭행해 기절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같은 달, 고용노동부 신입 근로관은 민원 처리 과정에 불만을 품은 민원인과 송사 문제가 벌어지면서 심적 부담 끝에 목숨을 끊었다. 3개월 후에는 경기도 화성세무서 민원팀장이 고성을 지르며 불만을 표출하던 민원인을 상대하던 중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2021년에는 한 민원인이 건축허가가 지연됐다는 이유로 손도끼로 공무원을 위협하거나, 시의 정책에 불만을 품은 민원인이 해당 부서 책임자에게 염산을 뿌린 사건도 있었다.

공무원의 자살산재율(산업재해로 인정된 자살 비율)은 일반 산재보험에 기록된 자살산재율의 2배에 이른다. 용혜인 더불어민주연합 의원실에서 인사혁신처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을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재보험에 가입된 일반인들의 2020년 1만명당 자살산재율이 0.03명인 데 비해 공무원(군인과 선출직 공무원은 통계에서 제외)은 1만명당 0.06명이다. 자살 순직의 원인이 모두 악성 민원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2020년 통계만 보더라도, 순직 공무원 65명 가운데 업무를 수행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살 순직자는 7명(10.8%)에 이를 만큼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동료 직원을 추모하는 노제가 3월8일 새벽 김포시청 공무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본관 앞에서 열렸다. ⓒ김포시청 제공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동료 직원을 추모하는 노제가 3월8일 새벽 김포시청 공무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본관 앞에서 열렸다. ⓒ김포시청 제공

“악성 민원 3세대까지 왔다”

3월18일 〈시사IN〉이 만난 3년 차 9급 공무원 신현철씨(가명)는 지난 2년간 서울시 한 구청 내 주차행정과에서 불법 주정차 단속 업무를 맡아왔다. 해당 업무를 맡는 동안 지속적인 악성 민원에 시달린 그는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했다. 당시 신씨를 가장 힘들게 한 민원은 새로 생긴 아파트 입주민과 기존 거주민 사이의 주차 분쟁이었다. 양측은 하루에도 수십 건씩 단속을 요구하는 민원과 단속에 항의하는 민원을 반복 제기했다. 원하는 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신현철 주무관을 감사해달라’고 실명을 적시하며 다시 민원을 넣었다. “현장에 수시로 나가야 하는 건 물론이고, 항의 전화가 하루에 20~30건씩 걸려왔다. 길게는 1시간씩 통화를 했다. 혼잣말이라며 욕설을 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불친절한 태도가 문제라며 시비를 걸고 약을 올렸다.”

공영주차장 확충 같은 시 차원의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신씨는 “분풀이 대상이 되는 기분”을 끝없이 느껴야 했다. “공무원은 민원이 들어오면 무조건 처리해야 한다. 악성 민원인들은 하루이틀 민원을 넣고 그만두지 않는다. 2년 내내 시달린 민원도 있다. 내가 근본적 해결책을 내놓을 수도 없고, 그 민원을 거절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절대로 더 나은 상황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좌절감만 커졌다.” 신씨에 앞서 같은 업무를 담당한 선배 공무원은 2021년, 민원에 시달리다 한강에 투신해 사망했다.

지난해 6월부터 민원 처리 담당자를 보호하기 위한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시행됐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해당 시행령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안전장치 설치 및 안전요원 등 배치 △폭언·폭행이 발생할 경우 민원인 퇴거 조치 혹은 민원 처리 담당자의 업무 일시 중단 △신체적·정신적 피해의 치료 및 상담 지원 △고소·고발 또는 손해배상 청구가 발생할 경우 민원 처리 담당자 지원 등이다. 전국공무원노조는 이런 조치들이 사후적 지원이지 악성 민원을 줄일 수 있는 근본 대책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민원 응대 부서 공무원이 목걸이형 카메라인 ‘웨어러블 캠’을 착용하고 업무를 보는 모습. ⓒ홍성군청 제공 크레딧
민원 응대 부서 공무원이 목걸이형 카메라인 ‘웨어러블 캠’을 착용하고 업무를 보는 모습. ⓒ홍성군청 제공 크레딧

예방책은 나오지 않고 있는데 악성 민원은 날이 갈수록 진화한다. 최한위 전국공무원노조 강동구지부장은 “폭언과 폭행이 ‘1세대 악성 민원’, 반복 전화 같은 좌표 찍기가 ‘2세대 악성 민원’이라면, 현재는 앱·메신저·홈페이지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개인이 더 쉽고 무차별적으로 민원을 넣는 ‘3세대 악성 민원’까지 양상이 진화했다”라고 말했다. 이제는 집단적 좌표 찍기를 하지 않고도 한 사람이 수시로 수백, 수천 건씩 민원을 제기해 담당자를 소진시키고 업무를 마비시킬 수 있는 ‘무한 민원의 시대’가 된 것이다. 민원을 감당할 수 있는 공무원 인력은 한정돼 있는데, 선출직 공무원들이 주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채널을 늘리기만 한 결과다.

일례로 서울 강동구에는 작년 한 해 동안 혼자서 민원 9500건을 넣은 사람이 있다. 불법 건축물·불법 광고물·불법 도로공사 신고 등 분야도 다양한데 개인의 재산권과 관련된 민원일 경우 행정 절차가 몇 달씩 걸려 다른 업무 진행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이는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다. 다른 지자체에도 혼자 수백, 수천 건씩 민원을 넣는 사람들의 리스트가 암암리에 존재할 정도다.

민원인 한 명이 종결된 민원에 대해 추가 민원을 제기하는 건수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 행정안전부 자료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17년 민원인 한 명이 종결된 민원에 대해 추가로 민원을 제기한 건수는 1.74건이었지만 2021년에는 6.61건이 발생해 약 3.8배 늘었다. 최한위 위원장은 ‘민원 폭탄’을 “공무원을 사유화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공무원은 법률에 따라 제기된 민원을 거부할 수 없다. 고의로 쉴 새 없이 제기하는 악성 민원을 해결하는 데 시간을 쓰다 보면 정말 도움이 필요한 민원 업무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악성 민원은 공적 자원을 개인의 소유물로 만들 뿐 아니라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행위다.”

3월18일 서울시 강동구청 내 노조사무실에서 최한위 전국공무원노조 강동지부장이 악성 민원 변화 양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3월18일 서울시 강동구청 내 노조사무실에서 최한위 전국공무원노조 강동지부장이 악성 민원 변화 양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악성 민원은 ‘공무원 사유화 행위’

외국에서는 공무원 상대 악성 민원에 대응하는 방안들을 실천하고 있다. 호주(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악성 민원인 경우 전화 통화 1회 10분, 면담 최대 45분 등 시간을 제한해 대처한다. 영국도 악성 민원인에게 민원 제기 방법 및 시간 등을 제한한다. 특정 요일과 특정 시간에만 전화 상담이 가능하도록 하는 식이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한 악성 민원인에 대한 재판이 주목받았는데, 그는 지자체 특정 부서에 700건 이상 전화를 걸고 1만 통 넘게 메일을 보냈다. 법원에서는 ‘해당 민원인의 전화 민원 자체를 금지할 수는 없지만 악의적으로 전화를 되풀이할 경우 민원 제기를 금지하도록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악질 민원에 끝없이 응대하는 것은 공무원의 의무가 아니며 더 나은 행정서비스를 위해서는 이를 수행하는 공무원들을 지키는 일 역시 중요하다는 의미다.

국내에서도 악성 민원을 근원적으로 막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1월에 열린 ‘공무원 악성 민원 대책 마련 국회토론회’에서 임준배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민원 대응 공무원 보호 조치에 대해 평가하면서 “기관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라고 개선 사항을 지적했다. 산업안전보건법 등에서 사업주가 고객 응대 근로자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적극 제재하듯, 민원 처리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들을 규정한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에도 민원 처리 담당자에 대한 행정기관장의 보호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을 추가하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공무원 처우 개선을 통한 안정적 인력 확보 역시 중요한 과제다. 2019년 기준, 대한민국 전체 일자리 중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9.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1.3%보다 한참 낮다. 유세연 김포시청 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은 악성 민원에 시달리던 ㄱ씨가 왜 부서 이동 등을 요청하지 않았을까 묻자 이렇게 답했다. “내가 힘들다고 나가면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똑같이 겪어야 한다. 그나마 인력이 충분했다면 융통성 있게 업무를 분배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 있었겠나? 마지막 순간에는 희망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던 게 아닐까 싶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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