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무슬림 소년이 50세 정통파 유대인 남성을 칼로 찌른 취리히 시내 음식점 앞 거리. 스위스에서 흔치 않은 잔혹범죄가 토요일 저녁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벌어진 데에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김진경 제공
15세 무슬림 소년이 50세 정통파 유대인 남성을 칼로 찌른 취리히 시내 음식점 앞 거리. 스위스에서 흔치 않은 잔혹범죄가 토요일 저녁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벌어진 데에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김진경 제공

지난 3월2일 토요일 밤, 스위스 취리히 시내 젤나우 지역. 사거리 모퉁이에 자리잡은 ‘츠바이테 악트(2. Akt)’, 즉 ‘제2막’이라는 이름의 음식점은 여느 때처럼 손님들로 붐볐다. 벽에 걸린 커다란 스크린 7개에서 스포츠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맥주잔을 손에 든 이들이 저마다 자기 팀을 응원했다. 넓은 창문이 건물을 둘러싸고 있었지만, 스크린에 눈을 고정한 사람들은 닫힌 창문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밤 9시35분을 막 지나던 시각, 음식점 안에서 창문 쪽으로 고개만 돌리면 훤히 보이는 인도에서 15세 소년이 지나가던 50세 남성을 칼로 열다섯 차례 찔렀다. 누군가의 신고로 구급차가 도착했고 남성은 병원으로 옮겨져 긴급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위급한 상황을 넘기고 회복 중이다. 용의자 소년은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위 내용은 이 사건에 대한 여러 언론 보도 및 사건 후 현장을 방문해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당시 일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 살인미수 사건의 후폭풍은 거셌다. 사건 자체도 끔찍하지만 공격의 원인 때문이다. 피해자는 오소독스(orthodox), 즉 정통파 유대인이고 용의자는 무슬림이었다. 언론은 이 소년이 튀니지 출신으로 2011년에 스위스 국적을 획득했다는 점을 명기했다. 목격자에 따르면 소년은 남성을 찌른 후 “모든 유대인에게 죽음을! 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사건 다음 날인 일요일 오후, 경찰 당국은 취리히 내 유대교 관련 기관들의 보안 조치를 격상한다고 밝혔다. 주요 시나고그(유대교 회당) 앞에는 기관총을 소지한 경찰관들이 배치됐다. 이처럼 발빠른 대처가 나온 것은 이 사건의 배경이 최근 스위스에 급격히 퍼지고 있는 반유대주의라는 판단 때문이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죄였고 유사한 사건이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게 범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유럽의 반유대주의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의 상황은 또 다르다.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뒤이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보복 전쟁을 벌인 이후 유럽 유대인들은 불안한 상황에 놓여 있다. 무슬림들은 물론이고 종교와 관계 없는 보통 사람들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벌이는 잔혹한 전쟁에 대한 반감을 주변 유대인들에게 돌리고 있어서다. 유대교 안에도 여러 분파가 있고 이스라엘의 유대인과 스위스의 유대인은 정치적 견해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반유대주의는 일일이 그런 구분을 하지 않는다. ‘유대인=전쟁 살인마’이므로 이들이 혐오받아 마땅하다고 보는 게 이 시점의 반유대주의다. 그뿐 아니라 잠재하던 내면의 유대인 혐오를 현재 상황을 핑계로 발산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대인이 싫어도 티를 내지 못했는데 전쟁이라는 구실이 생겼으니 거리낌이 없어진 것이다. ‘인종차별 및 반유대주의 반대 재단(GRA)‘과 ‘주스위스 이스라엘 커뮤니티 연합(SIG)’이 함께 발행한 반유대주의 보고서(2023년)에 따르면, 평소 스위스에서 유대인에게 강한 부정적 편견을 가진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 정도다. 그런데 어떤 도화선이 생길 경우 이 수치는 급증한다고 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하마스 전쟁(이-팔 전쟁)이 그 도화선에 해당한다.

유대인 남성이 칼에 찔린 사건 직후 유대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등하굣길에 경비원이 동행하는 일이 많아졌다. ⓒ김진경 제공
유대인 남성이 칼에 찔린 사건 직후 유대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등하굣길에 경비원이 동행하는 일이 많아졌다. ⓒ김진경 제공

위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오프라인과 온라인 양쪽에서 유대인 혐오 사건이 급증했다. 특히 오프라인 사건은 2022년 57건이던 것이 2023년 155건으로 약 세 배 가까이 늘어났는데 그 대부분이 이-팔 전쟁이 시작된 10월7일 이후 일어난 일이다. 여기에는 신체 폭행, 욕설, 협박, 모욕적 뜻을 담은 길거리 그래피티 등이 포함된다. 이 보고서는 피해자로부터 수집한 유대인 혐오 사건 사례를 싣고 있는데, 그중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취리히에서 10대 청소년 두 명이 ‘다윗의 별(유대인 표식)’ 목걸이를 착용한 유대인 남성을 보자 그의 발에 침을 뱉은 뒤 “팔레스타인 해방!”이라고 외쳤다. 한 유대인 가정집 외부 벽에는 “유대인에게 죽음을”이라는 스프레이 낙서가 그려졌다. 베른의 유대인 커뮤니티 앞으로 온 이메일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더러운 악취를 풍기는 유대인들의 땅을 정화하기 위해 다시 가스실을!”.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이-팔 전쟁은 유대인과 무슬림 양쪽이 관여된 것이니 혐오도 양방향이 아니겠느냐고, 유대인 혐오만큼 무슬림 혐오도 문제가 아니겠느냐고 말이다. 스위스 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인구통계를 보면, 스위스에 거주하는 유대교 신자는 전체 인구의 0.3%이고 이슬람교 신자는 5.2%다. 17배 차이다. 수적으로 소수인 그룹은 혐오 대상이 되기가 더 쉽다. 중동에서 전해지는 이스라엘 군의 잔혹 행위도 유대인 혐오 정서에 기름을 붓고 있다.

“하일 히틀러”, 표현의 자유인가?

유대인 혐오범죄는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벌어진다. 최근 스위스 일간 〈타게스안차이거〉는 중고교 내에서 반유대주의 정서가 심각하게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르가우 지역에 있는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한 유대인 학생에게 나치식 경례를 한 뒤 “너는 가스실로 보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유대인 학생은 폭행을 당한 뒤 바지가 벗겨졌다.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전쟁 관련 영상, 프로파간다, 거짓 정보 등을 공유하고 이를 혐오범죄의 근거로 이용하는 일도 있다. 한 학교에서는 열세 살 학생들이 유대인 여학생에게 하마스의 강간 영상을 보여주며 “우리도 너에게 똑같이 하겠다”라고 협박했다. 메신저 앱으로 인종차별적 뜻을 담은 상징물을 주고받는 일도 흔하다. 같은 반 학생이 모인 채팅방에서 히틀러 사진, 나치 문양인 하켄크로이츠를 공유하고 농담처럼 “아우슈비츠로 가라”와 같은 표현을 쓴다. 여학생들이 모인 한 채팅방에서는 “팔레스타인 지지 포스팅을 하지 않으면 다 창녀다”라는 말이 나왔다. 이 채팅방에는 유대인 여학생도 포함되어 있었다.

위의 사례들을 보면 의아한 부분이 있다. 나치 문양을 공유하고 나치식 경례를 하는데도 법적 제재가 없는 것인가.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런 행위는 법적 처벌 대상이다. 하지만 스위스는 사정이 다르다. 공공장소에서 하켄크로이츠를 내보여도, “하일 히틀러”를 외치며 경례를 해도 범죄가 아니다. 이를 처벌할 법적 근거로 ‘인종차별 금지법’이 있지만, 의도적 선전이나 광고에 해당할 경우에만 법이 적용된다. 자신의 개인적 신념을 나타낸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가 인종차별 금지에 우선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취리히 시내 유대인 밀집 지역의 한 건물에 “팔레스타인 해방”이라는 낙서가 그려져 있다. ⓒ김진경 제공
취리히 시내 유대인 밀집 지역의 한 건물에 “팔레스타인 해방”이라는 낙서가 그려져 있다. ⓒ김진경 제공

이와 관련해 스위스 사회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판결이 있다. 2010년 루체른에서 열린 집회에서 한 남성이 오른손을 들고 나치식 경례를 했고, 당시 집회 참가자와 경찰관, 구경하던 사람들을 포함해 150명 정도가 이 장면을 목격했다. 남성은 1심에서 인종차별 금지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최종심에서 이것이 뒤집혔다. 2014년 연방대법원은 이 남성이 다수 사람들에게 특정 이념을 선전하려 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나치 지지 신념을 표현했을 뿐’이므로 인종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다른 나라에서라면 당연히 처벌되었을 행위가 개인의 표현의 자유로 존중된 것이다.

게으른 일반화는 모든 혐오의 출발점

스위스의 인종차별 금지법이 해석의 여지가 너무 넓은 데다 엄연히 존재하는 반유대주의를 방치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명백한 나치 상징만이라도 금지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었고, 이-팔 전쟁 이후 스위스에서 번지는 반유대주의 관련 사건들이 여기에 힘을 실었다. 마침내 지난해 12월 스위스 상원에서 나치를 연상시키는 상징, 몸짓, 혐오 발언 등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이 찬성 23표, 반대 16표, 기권 3표로 통과되었다. 법안이 하원에서 통과되면 스위스도 뒤늦게 주변국들처럼 반나치 법안을 갖게 된다. 이 법안이 다시 국민투표에 부쳐져 없던 일이 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스위스에서는 의회를 통과한 법안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반유대주의는 스위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랑스·영국·독일 등의 반유대주의 정서는 훨씬 더 심각하다. 이스라엘의 잔혹성을 이유로, 또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한다는 뜻으로 유럽의 유대인들에게 비난과 혐오가 쏟아지는 것을 보면 과연 전쟁이 진짜 이유인지 의심스럽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아시아인 전체에 가해지던 차별이 떠오르기도 한다. 비난의 근거는 전쟁범죄인가, 아니면 유대인 그 자체인가. 전쟁을 주도하고 전쟁에 참여하는 이스라엘인들은 전체 이스라엘인 중 일부다. 또 이스라엘의 유대인과 미국·유럽의 유대인은 다르다. 유대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이들을 다 같은 그룹으로 뭉뚱그려 일반화하는 것이 현재 일어나는 반유대주의 범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게으른 일반화는 모든 혐오의 출발점이다. ‘그래도 유대인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이-팔 전쟁이 아닐 것이다. 이-팔 전쟁은 유대인에 대한 근본적인 혐오감을 분출할 핑계에 불과하다.

3월3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한 집회 참가자가 반유대주의를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AP Photo
3월3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한 집회 참가자가 반유대주의를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AP Photo

유대인이라고 다 같은 입장이 아니라는 점은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이 잘 보여줬다. 유대인 영국 감독인 그는 지난 3월10일 제96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아우슈비츠의 사령관과 그 아내의 일상을 다룬 영화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로 국제영화상을 받았다. 글레이저 감독은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분쟁으로 이끈 점령, 즉 이-팔 전쟁에 홀로코스트가 이용되고 있다며 자신은 그 분쟁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또는 홀로코스트를 겪었다는 이유로 현재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의 발언은 비난과 지지를 모두 받았다. 미국 홀로코스트생존자재단(HSF)의 데이비드 섀스터 회장은 단체 홈페이지에 게시한 서한에서 “나는 당신이 오스카 시상식 연단에서 무고한 이스라엘인에 대한 하마스의 광적인 잔인성과 이에 맞선 이스라엘의 어렵지만 필수적인 정당방위를 동일시하는 것을 괴로운 마음으로 지켜봤다. 당신의 발언은 부정확하고 도덕적으로 옹호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반면 이스라엘 참전용사 단체인 ‘침묵을 깨는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에 올린 성명에서 “(글레이저는) 점령을 정당화하려고 유대교와 홀로코스트를 냉소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취했다. ”우리는 민간인의 피와 생명이 정치적 이념에 대한 정당화나 협상 카드로 쓰이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겠다. 공감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우리는 하마스를 비난하면서 팔레스타인 국민과 연대할 수 있고, 이스라엘 군의 잔혹 행위를 규탄하며 주변 유대인들의 입장에 서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혐오의 사슬을 끊어내는 것이다. 어두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기자명 취리히·김진경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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